우리는 법이 필요하다. 사회는 법에 근거한 공권력으로 질서를 확보하고, 개인은 (사회가 정한) 법과 질서 안에서 자신의 삶을 정당하게 보호받는다 믿으며,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법이 제시하는 절차와 규범은, 사업가들에게 사업 시작과 운영에 있어 상당한 예측 가능성을 선사해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했다.
< 우리는 법이 필요하다, 출처: 핀다 >
하지만, 법 역시 불완전한 인간이 만드는 불완전한 결과물이어서 우리는 평생에 걸쳐 법을 고치고, 없애고, 새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래서 법은 겉모습과 다르게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는 역동적인 결과물이다. 법이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문제가 없더라도 시간이 흐른 뒤 사회와 환경, 사람이 바뀌면 여지없이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 된다.
이에 규제개혁 이슈는 요즘 들어 뜨거운 감자다. 최근 국내 포지티브 규제 방식을 지적하는 기사가 자주 보인다. 어려운 경제 상황과 4차 산업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등장은 사람들로 하여금 도전의 필요성과 기대감을 동시에 심어줬지만 막상 국내에서 신사업을 하기에는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 금융상품 추천 플랫폼 구조도, 출처: 핀다 >
금융상품 추천 플랫폼 핀다는 미국에서 이미 3,50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 크레딧 카르마처럼 온라인 금융상품거래 시장의 아마존을 지향한다. 하지만, 현존하는 법률이 돈을 빌릴 사람과 금융회사를 연결하는 일에 대해 '1사 1인' 원칙으로 한계를 정하고 있어 사업모델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금융상품을 사고 팔려면 대면 거래를 해야 하고 금융기관 한 곳의 상품만 팔아야 하므로, 다양한 상품을 비교하고 판매하는 마켓플레이스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거래를 제안하는 기업에 여전히 오프라인 시대의 규제를 적용한 것이다. 중고차 플랫폼 사업을 하는 '헤이딜러'는 폐업 위기에 몰리기까지 했다.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이 업체를 '창조경제 우수사례'로 선정했음에도, 국회에서 오프라인 사업소와 주차장이 없는 온라인 중고차 업체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 100대 스타트업 중 57개 기업은 국내에서 사업을 시작도 못했을 거라는 최근 뉴스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모델을 사업화하기 어려운 것이 국내 현실이다.
아이디어가 혁신적이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살피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다. 법적 적합성에 관한 불확실성 존재는 아이디어 발상에서부터 창의성을 제한했다. 다만, 규제에 대한 공론화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면서, 정부도 문제를 인식함에 따라 점차 긍정적인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4차산업혁명위원회 회의에서 혁신성장을 지향점으로 삼으며 '규제 샌드박스'를 언급했다. 규제 샌드박스는 신기술과 서비스가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일정기간 기존 규제를 유예하거나 완화하고, 문제가 생길 경우에만 규제를 적용하는 제도다. 규제프리존과는 다르다. 규제프리존이 지역 단위로 규제를 풀었다면, 규제 샌드박스는 프로젝트 단위로 신청을 받고 이를 방해하는 규제의 문제점과 개선책을 논의한 뒤 규제를 완화하는 절차를 거친다.
< 샌드박스란 명칭은 아이들이 다치지 않고 마음껏 놀도록 만든 모래통에서 유래, 출처: 핀다>
샌드박스란 명칭은 아이들이 다치지 않고 마음껏 놀도록 만든 모래통에서 유래한다. 핵심은 '마음껏'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사업자들이 새로운 모델을 시험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법적 공간과 상상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 제도는 해외에서도 활발하게 논의, 토의하고, 실제 적용 중이다. 영국은 2014년 핀테크 서비스 '실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처음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했고, 싱가포르는 2016년 핀테크 분야 규제 샌드박스 시행안을 발표했다. 일본도 규제 샌드박스를 'Society 5.0(4차 산업혁명)'이란 국가전략 일부로 올해 도입했다.
영국과 싱가포르가 핀테크 분야 위주로 규제 샌드박스를 운영하는데 반해 일본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의 여러 분야를 다룬다. 우리나라도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드론 등 다양한 영역을 규제 샌드박스 내에서 육성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미국, 독일, 호주, 대만 등 새로운 산업 흐름에 적응하기 위해 규제를 재설계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혁신과 변화, 개혁이란 단어를 많이 접하는 요즘이다.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사회 구조는 더 이상 변화한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는 목소리의 발로일 것이다. 법의 가치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이로부터 사람들에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는데 있다. 법적 안정성은 그런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고 창업자들이 처한 환경도 매순간 달라진다. 이럴 때 '법이 원래 그렇습니다'란 말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개인에게도, 돌파구가 필요한 국가에게도 도움 되지 않는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규제개혁을 위한 정책적 움직임이 개인과 법인의 개성을 발전시키고, 사회적 다양성과 역동적인 생태계에 적응력을 기르는데 기여 할 것이라 기대한다.
김서광, 핀다 홍보 및 마케팅 담당 매니저
금융상품 비교추천 플랫폼 핀다(www.finda.co.kr)에서 마케팅 및 홍보 매니저 담당. 성균관대에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전공한 뒤, 동 대학원 정보통신대에서 HCI(Human-Computer Interaction)를 연구하고 있다.
글 / 핀다 김서광(seogwang@finda.co.kr)
동아닷컴 IT전문 권명관 기자 tornados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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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창업이야기] 창업자들의 놀이터 규제 샌드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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