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간의 챗봇 디자인 실패기-2편

일정 구독 서비스 - 린더 의 탄생

히든트랙 / 조회수 : 2312


본문은 100일간의 챗봇 디자인 실패기 - 1편 에서 이어집니다.




각고 끝에 탄생한 린더봇의 실적은 화려했다. Microsoft에서 주최하는 기술경진대회인 ImagineCup에서 수상을 하기도 하고, 4차 산업혁명이라는 정치적(?), 시대적 흐름에 맞추어 여러 정부지원사업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는 대학생들이 몇 달간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로봇 인척 하며 개발 및 사용자 연구를 진행해왔다는 스토리텔링은 우리가 봐도 가히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베타 테스트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린더봇은 종료되었고 우리는 서비스 개발을 중단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결론이 정해진 사용성 조사


'현실왜곡장'이라는 말이 있다. 스티브잡스가 자주 사용한 기법으로 유명한데, 아무리 비현실적이거나 거짓된 내용도 그 왜곡장 안에만 있으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는 것을 말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불가능해 보인 일을 기어코 성공시키는 멋진 리더십으로 그려질 때도 있지만 대다수의 경우에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그들만의 망상에 빠져버리는 위험한 상태를 뜻한다.


앞서 1편에서 린더봇을 통한 한 달간의 일정 입력률이 전체 캘린더 데이터 입력률에 대비하여 51%까지 나왔다는, 매우 희망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하지만 한 가지 빠뜨리고 언급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 린더봇을 통한 입력의 80%가 서비스 사용 첫 3일 간 발생했다는 것이다. 나머지 3주 간 린더봇을 통한 일정 입력 횟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우리가 회피하고 있었던 현실


새로운 전자기기를 살때면 대부분 한번쯤은 경험해보았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새로 만나게 된 제품에 호기심을 가지고 이리저리 만져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새로운 경험에 대한 일시적인 현상일 뿐, 대부분의 서비스는 특정 기능에 국한된 제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러한 냉혹한 수치를 분명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제품에 대한 간절한 희망 때문에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수치를 읽어내는 실수를 저질렀다.



준비되지 않았던 플랫폼


우리는 린더봇을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카카오톡 자동응답 API를 택했다. 비록 라인, 페이스북 메신저 등 타 메신저 플랫폼들이 챗봇을 위한 다양한 기능들을 선제적으로 제공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카카오톡이 국내 메신저 점유율의 95%를 차지하는 시점에서 다른 메신저를 고려할 수가 없었다.

카카오톡 자동응답 API


결국 카톡을 선택하기는 했지만 카톡이 챗봇 써드파티 업체들을 위해 준비해놓았던 기능들을 매우 제한적이었다. 여러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선톡’을 날릴 수 없다는 점과 ‘PC카톡’에서 대화를 할 수 없다는 점은 서비스 운영에 있어 매우 치명적인 문제들이었다.


카카오에게 있어 '단체 선톡'은 매우 중요한 수익모델이다. 물론 지금도 수 만개의 기업고객에게 돈을 받고 ‘선톡을 날릴 수 있는 권리’를 팔고 있는 카카오 입장에서 굳이 소수의 개발사들을 위해 해당 기능을 무료로 제공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용자들에게 무분별한 선톡이 발생할 경우 사용성이 저하될 여지도 충분히 있다. 하지만 다수의 해외 챗봇이 '무료 선톡'을 기반으로 한 섭스크립션, 큐레이션 서비스를 확장해나가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매우 아쉬운 것은 사실이었다(특히 위챗은 매주, 또는 매일 특정 정보를 제공하는 섭스크립션/큐레이션 유형의 챗봇을 이미 하나의 카테고리로 규정하고 있다).


'자동응답 API에서 선톡을 막는 것'이 사용자 편의성과 수익성을 고려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 PC 카톡에서 자동응답 API를 통해 대화를 할 수 없었다는 점은 명백히 카톡 플랫폼 내 기술적 완성도의 부족이었다. 비록 카톡 트래픽의 대다수가 모바일에서 이루어진다고 할지언정 단순히 기술적인 이슈로 데스크탑 환경에서 자동응답 옐로아이디(현 플러스친구 통합)를 사용할 수 없었던 점은 카카오의 챗봇 환경에 대한 대응이 매우 늦었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지금도 PC에서는 자동응답 플러스친구 활용이 안되는듯하다)


비록 국내 메신저 업체가 우리와 같은 작은 써드파티를 위해 조금 더 진보되고 오픈된 API를 제공해주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지만 이 또한 업체 간의 이해관계와 시장의 속도를 현실적으로 고려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었다.



접근성, 인터페이스, 그리고 습관


우리는 막연했다. 앞서 1편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많은 사용자가 접근성 하나 때문에 메모장 대신 카톡을 선택한 것처럼, 린더봇 또한 접근성 하나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우리의 챗봇을 통해 사람들이 놓치고 지나치던 많은 일정들을 캘린더로 입력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가 그렸던 막연한 이상향


새로운 기술을 좋아하는 IT업계 사람들이 더러 그러하듯 우리 팀 또한 ‘대화형 인터페이스(CI)’라고 하는 새로운 형태의 사용자 경험에 열광했다. 2016년 한 해 미국을 강타했던 다수의 챗봇 비즈니스를 검토하며 CI가 제시하는 미래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베타 출시된 린더 봇의 실질적인 일정 입력률은 기존 캘린더 앱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린더봇을 준비하며 설문을 실시한 결과 캘린더 앱을 활발히 사용하는 유저 중 주간 캘린더 입력률이 5회가 넘는 사용자가 20%가 채 되지 않았다. 우리는 린더봇을 통해 이 수치를 크게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단순히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용자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보다 편리한 캘린더’가 아니라 아예 ‘새로운 형태의 일정 도우미’였다. 



그렇게, 지금의 일정 구독 서비스 - 린더가 탄생했다.


자동응답 API를 통해 챗봇을 제공하기 전, 한 달 동안 수동으로 모든 일정 요청을 응답할 당시 한 사용자로부터 독특한 요청을 하나 받았다. 바로 재학 중인 대학원의 1년 일정을 자신의 캘린더로 넣어달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요청을 받은 당시에는 이걸 정말 해줘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단 한 사람을 위해 20개가 넘는 연간 대학원 일정을 캘린더로 담아줘야 한다니. 하지만 실험 당시 우리는 사용자들에게 분명 일정에 관련한 모든 입력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했기에 대학원 웹사이트를 찾아 일일이 일정을 옮겨 담아주었다.



실험이 끝난 후 해당 사용자는 설문에서 린더를 사용하며 가장 편리했던 기능으로 ‘연간 일정 한 번에 추가 기능’을 꼽았다. 30명의 사용자 중 단 한 명이 요청하고, 좋아했던 이 기능으로부터 지금의 ‘일정 구독 서비스 - 린더 ( https://linder.kr/ )’가 탄생했다. 


챗봇의 성공 가능성이 희미해지고 있던 시점에서도 우리 팀은 ‘일정’이라는 요소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일정 데이터’가 앞으로 지니게 될 가치에 대해 고민한 결과 누군가는 80%의 비어있는 캘린더에 일정을 채워줄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하게 되었고, 그 ‘누군가’가 우리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으로 린더를 만들기 시작했다.




제품 개발 연혁

- 17.01 ~ 17.02 휴먼(?) 린더봇 실험

- 17.02 ~ 17.03 린더봇 베타 출시

- 17.04 린더봇 중단

- 17.03 ~ 17.05 일정 구독 서비스 - 린더 기획, 개발

- 17.06 일정 구독 서비스 - 린더 출시


2017년 11월 현재

- 엔드유저(구독자): 10만 명

- 파트너(기업): 삼성, SK, 현대 등 8개 사 스포츠, 교육 일정 등 협약

- 누적 캘린더 181개 / 누적 등록 일정 12,000개

- 평균 CTR(클릭률): 4~5%, 최대 7~8% ( 캘린더 내 일정 링크 클릭 수 / 구독자 )

- 이탈률: 1% 내외 ( 구독 취소자 / 구독자 )

- 제공 일정: 아이돌 스케줄, 화장품 세일, 대학교 학사일정, 스포츠 경기, 공연/축제 일정, 공채 일정 제공


언론

'국내 최초삼성캘린더 구독 서비스 실시린더와 제휴 – 마이데일리(17.10.13)

 안에서 확인하는 경기일정현대캐피탈 배구단 캘린더 구독 서비스 실시 – 스포츠서울(17.10.18)

스마트폰 달력 여니… 아이돌 스케줄이 주르륵 – 동아일보(1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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