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세우고 첫 직원채용공고를 냈다.
-육아경험이 있는 경력단절여성 우대-
곧 정리하는 것이 버거울 정도로 많은 이력서가 쏟아져 들어왔다. 어떤 마음으로 이력서를 썼을까 그 마음을 생각하니 단 하나의 이력서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꼼꼼하게 읽고 또 읽으며 채용을 진행했고, 아쉽게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지원자들에게 한명 한명 메일을 보냈다.
이렇게 까지 해야 했던 이유는, 나에게도 힘들게 다시 이력서를 쓰던 날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에디오피아에서 돌아와 다시 구직을 하며 나는 깨달았다. 애엄마 보다 더 구직하기 힘든 건 애를 낳을 지도 모르는 여자의 구직이라는 것을.. 결혼은 했지만 아직 아이는 없는 여성이었던 나는, 매번 채용문턱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간신히 마음에 드는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지만, 곧 임신이 되면서 나의 경력은 다시 멈추고 말았다.
입덧도 너무 심했고, 아이를 낳은 후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 다 예측할 수 없었기에 했던 선택이었다.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에 집중하며 아이의 성장에 기쁨과 보람을 느끼기도 했지만 마음 한 켠에는 늘 불안과 초조함이 있었다. 아직 30대 초반인데 이제 다시 사회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 나는 정말 후회하지 않을까. 오만 가지 생각이 갑자기 밀려들 때면, 육아로 가득 차 있던 단조로운 일상에 파동이 생겼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채용공고 하나, 아이를 키우면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전공과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일이었다. 계속 고민 만 하다가 '그래 이력서라도 한번 써 보지뭐'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재운 후 오랜만에 책상에 앉았다. 다시 이력서를 쓰는 일은 너무 두렵고 힘든 일이었다. 막상 지난 경력을 써내려 가다 보니 나의 시계가 멈추었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엄마로 살면서 여전히 성장하고 있어' 라고 수백번 씩 나를 다독여왔지만 더 이상 써 내려갈 수 없는 비어있는 칸들은 나의 명백한 현실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시간은 다 바쁘게 가고 있는데, 나의 시간만 멈추어 있었고 어느새 저 멀리 뒤로 밀려나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력서를 쓰는 내내, 아이는 내 마음속에서 묵직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정말 일해도 괜찮은걸까? 행복한 엄마가 아이에게도 좋다고 하지만, 일로 인해 발생하는 구멍이 아이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아직 엄마로서도 부족하고 익숙치 않은데 정말 일을 해도 괜찮은걸까? 아이라는 존재는 나에게 수많은 고민을 가져다 주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세상이 나에게 씌워놓은 많은 역할과 의무들을 완벽하게 다할 수 없는 순간들이 올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가 아프거나 전염병이라도 걸릴 땐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맞을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머리와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엄마라는 역할을 하는 여성이 다시 이력서를 쓰기 위해서는 견뎌야만 하는 수 만가지 종류의 부담감이 존재한다는 것을 제대로 느끼게 된 시간이었다.
오늘의 나는 일하는 엄마로 살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두 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엄마로서의 직업과 사회에서의 직업, 두 가지를 병행하며 살고 있다. 사실 두 개의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만족스러운 날도 있지만, 죽도록 후회스러운 날도 있다. 하지만 한가지의 직업만 선택했어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저 내가 만족과 후회를 수만번 씩 오가며 깨달은 사실은, 이 모든 선택이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닌 엄마 자신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다시 이력서를 쓰게 되기까지 필요한 것은 단순히 어떠한 일자리와의 매칭 만이 아니다. 엄마라는 역할로 살아온 시간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힘, 엄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뢰, 그리고 수많은 고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의 의지에 의해서 내려지는 결정, 그것이 현실적인 두려움을 넘어서게 한다.
엄마라는 직업으로 살았던 시간이 이력서에서 공란이 되지 않는, 아니 공란이어도 문제가 없는 그런 세상을 잠시 꿈꿔본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을 만드는 일을 우리 엄마들 안에서 하나씩 시작해보자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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