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스탠포드 대학(Stanford University)으로 석사 유학을 떠났다. 왜 스탠포드여야만 했는지는 2가지 이유에서였다. 내게 디자인씽킹(design thinking)이라는 새로운 사고 방식을 알게해 준 아이데오(IDEO)의 창업자 데이빗 켈리(David Kelley)를 만나는 것과, 세계 혁신의 중심인 실리콘밸리의 창업 문화를 배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전 포스트에서 다뤘듯이 디자인씽킹의 핵심은 (1)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관찰하고 탐색해나가는 니드파인딩(needfinding), (2) 이렇게 발견된 니즈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솔루션을 반복적인 실험을 통해 검증해나가는 프로토타이핑(prototyping)이다.
정말 흥미롭게도,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창업가 스티브 블랭크(Steve Blank) 교수의 린 론치패드(Lean Launchpad) 수업에서 나는 디자인씽킹과 동일한 접근을 배웠다. 국내에서는 스티브의 제자인 에릭 리스(Eric Ries)가 2011년 발간한 린 스타트업(The Lean Startup)이라는 책이 크게 화제가 되었는데, 린 스타트업 전략의 핵심은 (1) 기존의 수십, 수백장짜리 사업 계획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사업의 핵심 구성 요소와 주요 가정들을 정의하는 비지니스 모델 캔버스(business model canvas)를 작성하고, (2) 이 가정들을 검증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잠재 고객을 만나 테스트하면서 이 캔버스를 수정하는 것이다.
디자인씽킹과 린 스타트업 방법론은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 즉 잠재 고객을 모든 프로세스의 중심에 둔다는 점에 공통점이 있다. 잠재 고객이 어떤 것을, 어떤 이유로, 어떻게 필요하는지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가정(hypothesis) 수립이 선행되어야 하고, 이를 검증하기 위한 솔루션의 반복(iteration) 실험이 수반되어야 한다. 린 스타트업에서는 이러한 반복이 비지니스 모델 캔버스에서 정의하고 있는 9가지 요소 중 하나 이상을 크게 뒤집는 경우 이를 피봇(pivot)이라 부른다. 그런데 디자인씽킹이나 린 스타트업 방법론을 실제에 적용할 때 흔히 범하는 실수 2가지가 있다.
첫째, 너무 거대한 가정을 수립하는 것이다. 가정을 최대한 정교하게 쪼개어 하나의 유닛(unit) 단위로 만들지 않으면 반복적인 실험을 함에 있어서 어떠한 이유로 본 가정의 검증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알기 어렵다. 린 스타트업 방법론에서 최소 기능 제품(minimum viable product)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정이 너무 거대하면 이 가정을 검증하기 위한 최소 기능 역시 거대해질 수 밖에 없고, 초기 실험을 위해 너무 많은 리소스가 들어갈 뿐만 아니라 검증의 결과 해석도 어려워진다.
둘째, 린 스타트업 방법론을 빠른 제품 개발과 피봇으로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린 론치패드 수업을 마치고 스탠포드를 자퇴하며 창업했던 스타일세즈에서 우리 팀이 가장 치명적으로 범했던 실수다. 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린 스타트업 방법론을 "한두달 안에 빠른 속도로 제품을 개발하고, 반응이 좋지 않으면 아이디어를 뒤집는 방법론"으로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개발할 제품의 스펙을 정의하는데 있어서 앞서 언급한 정교한 가정 수립이 선행되지 않으면, 엉뚱한 제품을 개발한 후 엉뚱한 방향으로 방향을 틀면서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들다.
디자인씽킹과 린 스타트업 방법론 모두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실증적 접근 방법이다보니 사실상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이 방법론들을 잘못 해석함으로 인해서 스타일세즈 창업 때 범했던 실수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복기해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