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세계 최대 P2P금융 컨퍼런스인 렌딧 컨퍼런스(Lendit Conference)의 창업자 제이슨 존스(Jason Jones)가 필자의 회사인 렌딧 사무실에 방문했다 (필자의 회사 렌딧은 이 컨퍼런스와는 무관하다). 아시아의 P2P금융 산업 동향을 살피기 위해 일본, 중국, 싱가폴을 방문하는 일정 중에 한국 시장 환경 파악을 위해 서울 을지로입구에 위치한 렌딧 본사에 방문한 것이다.
매년 미국과 영국, 중국에서 개최되는 렌딧 컨퍼런스에는 전세계에서 5천명 이상의 업계 전문가들이 모인다. 4차 산업혁명의 대표 주자인 P2P금융은 영국에서 시작된지 12년이 지난 지금도 아주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와 산업 동향을 가장 빨리 파악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렌딧 컨퍼런스다.
제이슨과의 대담 중, 그가 한국 P2P금융 시장 환경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한 3가지의 통찰은 다음과 같다 :
1. 자기자본 대출을 허용해야 한다.
이야기를 나누며 제이슨이 가장 놀라워 한 사실 중 하나는 한국에서 P2P금융 기업이 자기자본 대출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P2P금융 회사가 자기자본으로 대출하는 것을 금지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 P2P금융 시장에서는 대출의 30% 가량이 자기자본 대출(balancesheet lending)로 이루어진 뒤 유동화(securitization)를 통해 시장에서 소화된다.
해외의 유수 P2P금융사들이 자기자본 대출을 하는 가장 주요한 이유는 대출고객과 투자고객 모두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자본 대출이 이루어지면 대출자는 심사에 통과한 후 투자자들에 의해 대출금이 모이는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중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대출금이 모이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고금리 대출로 향하게 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투자자 역시 대출이 집행된 다수의 채권으로 이루어진 자산에 투자금을 잘게 쪼개어 분산 투자할 수 있어 투자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2010년 이후 등장한 세계적인 P2P금융 기업 중에는 100% 자기자본 대출 방식으로만 운영하고 있는 곳들이 다수 존재한다.
2. 전문 사모펀드의 대리 투자를 허용해야 한다.
각국의 P2P금융 시장에서 개인신용대출의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전세계 공통적인 현상이다. 제이슨은 한국에서만 유독 PF 대출의 비중이 높은 것은, 전문 사모펀드의 본격적인 P2P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 아직까지 개인 투자자들이 주요한 시장 참여자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전문 금융 기관에 비해 투자 위험도 분석 능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개인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 전문적인 금융기관의 대리 투자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었다.
3. 자산 특징에 맞는 세분화된 규제가 필요하다.
제이슨은 한국에서 P2P금융 산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한 지 2년 반 만에 전체 시장 참여 규모가 1조원이 넘었다는 사실을 듣고 상당히 놀라워했다. 하지만 더욱 놀라워한 사실은 이렇게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시장을 하나의 획일화 된 방식으로 규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P2P금융에서 대출 자산은 은행의 그것과 같이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은행 및 다른 금융업체들의 대출 자산과 마찬가지로 대출 자산의 특징에 따라 세분화된 규제가 필요하다. 동일한 투자 금액을 1,000개의 채권에 분산 투자할 수 있는 개인신용 대출 자산과, 10개의 채권에 분산 투자할 수 있는 법인 혹은 부동산 대출 자산을 동일한 기준으로 규제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당연히 투자자 보호의 측면에서도 취약할 수 밖에 없다.
해가 갈 수록 가계부채가 심각해 진다는 뉴스가 흘러 나오고 있다. 정부에서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힘쓰고 있다. 이와 같은 때에 P2P금융은 이미 제2금융권과 비교했을 때 약 10% 이상의 낮은 금리로 대출을 제공하며 가계부채 질적 개선의 새로운 방편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이다. 반면 매우 빠르게 발전해 시장이 비대해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P2P금융 산업에 대한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P2P금융은 여신과 중개가 융합된 새로운 금융 산업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는 P2P금융을 전통적인 금융의 시각에서 규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규제의 당위성에 앞서, 새로운 산업이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산업의 본질에 맞춤화된 세밀한 규제 도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