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비록 미세먼지가 코끝을 괴롭히지만 완연히 따뜻해진 날씨와 남쪽부터 올라오는 개화 소식이 봄이 왔음을 알려준다. 계절의 시작이 봄이라면 회사원의 봄은 신입사원 때 아닐까? 푸릇푸릇한 새싹처럼 새로운 마음가짐도, 일하며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자 하는 열정도 가득했던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시절. 그래서 준비했다! 이제 입사한 지 반년에서 1년 남짓, 한창 일 배우며 눈망울 초롱초롱한 시기를 겪고 있는 신입 사원들의 이야기를. 첫 번째 편에선 입사 전 각자의 분야에서 열정을 불태워본 경험이 있는 두 사람을 소개한다.
“돌 좀 놔드릴까요?”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흑돌과 백돌을 척척 배치하는 손길이 예사롭지 않다. 바둑 문외한의 눈에도 뭔가 규칙이 있는 듯 보였다. 예전 수를 복기하는지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 바둑에도 이른바 ‘교과서’가 있단다. 한국기원을 나선 지 10년이 흘렀지만 수없이 놓던 돌의 자리를 몸이 기억하는 모양이다. 열네 살에 아마 4단증까지 따낸 이수림(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실)씨다.
▲해맑은 미소에 안심해선 안 된다. 자칭 ‘바둑 마니아’ 선배 둘을 다면기(多面棋, 바둑에서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상대로 동시에 대국하는 일)로 이기는 실력자이니!
중학교 진학 대신 한국기원행(行)… 1년 만에 ‘컴백’
“아휴, 부끄러워요. 같이 바둑 배운 동기 중엔 프로 선수가 된 언니∙오빠들도 있거든요.” 손사래를 치지만 아마 4단은 “프로 입단도 가능하다”고 평가 받는 실력이다. 그런 그가 바둑 대신 삼성전자를 택했다. 왜?
▲어릴 적 수림씨에게 바둑은 재밌는 놀이였다. 위 오른쪽 사진은 그가 일곱 살 때 시(남양주) 바둑대회에서 받은 인증서
“프로 입단을 준비할 생각은 없었어요. 어릴 때 바둑이 배우고 싶어 부모님을 졸라 바둑학원에 등록하고 이후 꾸준히 둬오긴 했지만 성격이 워낙 외향적이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 프로 선수가 맞을 것 같진 않았거든요. 바둑은 조용한 스포츠니까요. 그래도 바둑을 좋아하긴 해서 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고 한때 전문 해설가도 꿈꿨죠.” 바둑 방송에 나오는 캐스터나 해설가가 되려면 바둑을 잘 알아야, 아니 일단 잘 둬야 했다. 중학교 진학 대신 한국기원행(行)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학교 생활을 병행하며 바둑까지 잘 두긴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중학교 대신 기원에 다니기로 했죠. (아마 4단) 단증도 그때 땄고요.” 이후 여덟 달 동안 종일 기원에서 바둑만 뒀다. 처음엔 재밌었다. “꿈을 향해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죄다 절박한 맘으로 프로 기사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뿐이었다. “바둑 연구생은 대부분 프로 입단을 꿈꿔요. 근데 사실 그게 정말 어렵거든요. 입단 시험을 거쳐 프로가 되는 사람 자체가 너무 적고 심지어 나이 제한도 있어요. 그런 분들의 꿈과 제 꿈은 차이가 크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 성격상 조용히 바둑 두는 건 1년이 한계였던 것 같아요, 헤헤.”
교환학생 시절 삼성 로고 보며 해외영업맨 꿈 키워
그렇게 다시 학교로 돌아왔고, 또래보다 1년 먼저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성적은 중학교 교과 과정 3년을 이수한 동급생에 비해 당연히 뒤처졌다. 전교생이 500명인 학교에서 석차가 300등 밖으로 밀려났다. “바둑 세계를 떠나며 ‘내가 정말 바둑 해설가가 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어릴 때부터 좋아한 일이었는데 중도에 방향을 틀어버린 것도 맘에 걸렸고요.” 목표가 사라지자 의욕도 붕 떴다. 그러던 중 새로운 기회가 왔다. 미국 국립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것.
▲수림씨는 1년간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며 잃었던 목표를 다시 찾았다. 위 사진은 당시 친구들과 떠난 여행 도중 호스슈밴드(Horseshoe Band)에서 찍은 것. 아랫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수림씨다
“솔직히 공부가 너무 하기 싫었어요(웃음). 교과 과정을 따라잡기가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 와중에 교환학생 기회가 와 덜컥 잡았죠. 미국에서 지내며 예전엔 별 생각 없이 지나쳤던 한국 제품이 너무 사랑스럽게 다가왔어요. 한국 글로벌 기업 제품을 보며 ‘우리나라 것’이라고 말할 때의 뿌듯함이란!” 당시 그의 눈에 제일 자주 들어온 게 ‘삼성’이었다. “정말 그땐 삼성 로고만 봐도 뭉클했어요. ‘제품 하나로도 저렇게 우리나라를 해외에 알릴 수 있구나’ 싶더라고요. 하루는 뉴욕을 방문했는데 타임스퀘어 전면에 삼성 광고가 떡하니 박혀 있는 거예요.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저 회사에서 꼭 일하고 싶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의 일원이 되고야 말겠다!’ 그런 생각을 그때 처음 했던 것 같아요. 교환학생으로 지내는 내내 그 목표를 잊지 않고 있다 귀국했죠.”
‘글로벌 기업 입사’란 목표를 세운 수림씨는 무섭게 공부에 집중했다. “고 1 때 성적으론 글로벌 기업에 절대 갈 수 없잖아요(웃음). 정말 그때만큼 열심히 공부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국에 밥 말아 책상으로 가져갔을 정도니까요. 지금 다시 그렇게 하라면 절대 못할 거예요.” 노력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300등 언저리였던 성적은 고 2∙3 때 전교 1등으로 뛰어올랐다. 덕분에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해외 영업 전문가를 꿈꾸며 불어불문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꿈이 이뤄졌다. 삼성전자의 일원이 된 것이다.
“삼성전자 제품은 일상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돼 있잖아요. 스마트폰만 해도 눈뜰 때부터 잠들기 전까지 늘 곁에 두고 쓰니까요. 그래서 길 가다 갤럭시 스마트폰 쓰는 사람들만 봐도 뿌듯해요. 특히 해외 출장 가서 접하면 더 벅차죠. ‘오래 꿈꿔온 일을 진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바둑에 대한 미련은 없을까?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아쉽진 않아요. 물론 바둑은 지금도 좋아하죠. 그래도 열정으로 치면 바둑에 매진했던 1년보다 글로벌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했던 고교 시절이 훨씬 컸습니다.”
“바둑으로 익힌 역량, 삼성에서 발휘해보고 싶어요”
수림씨는 요즘 마음이 분주하다. “배워야 할 게 많아 바쁘긴 하지만 앞으로의 회사 생활이 너무 기대돼요. 지금은 여기저기서 도움을 받기만 하는데 얼른 업무 역량을 쌓아 선배들을 도울 수 있는 후배가 되고 싶어요.” 그의 ‘바둑 사랑’이 끝난 건 물론 아니다. “이래저래 바둑 덕을 많이 봤어요. 회사 선배들과도 바둑 덕에 빨리 친해질 수 있었죠. 바둑은 주어진 상황에서 상대의 수를 예측한 후 그에 맞춰 최선의 수를 두는 게임이에요. 생각해보면 그런 방식은 어떤 일에나 도움이 돼요. 영업 전략도 경쟁사의 수를 보고 ‘우린 어떤 수를 둬야 최선일까?’ 궁리하는 거잖아요. 바둑을 배우며 익힌 제 역량을 잘 살려 언젠가 삼성전자 해외 영업 전략을 세워보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차분하고 따뜻한 음성에 귀가 번쩍 뜨였다. 김대능(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개발실)씨는 그 목소리를 십분 활용,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능라이터’란 이름으로 실제 음반도 냈다. 기타 선율과 잘 어우러지는 그의 노래 ‘너가 지나간 나’는 귀에 쏙쏙 박히는 가사가 일품이다. 경험담이냐고 슬쩍 물어봤더니 웃으며 비밀이란다, 알고 들으면 재미없지 않겠냐며.
곡의 영감은 여러 곳에서 얻지만 주로 가사부터 쓴 후 그에 맞춰 곡을 붙인다. “제 삶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간접적으로나마 여러 감정을 느껴보려 노력해요. 드라마나 영화, 책을 보다가 와 닿는 글이나 대사를 발견하면 그에 대한 제 생각이나 느낌을 다시 글로 정리해 ‘삼성 노트’ 애플리케이션에 저장해두곤 하죠.”
8년간 독학으로 작곡 공부… ‘능라이터’로 음반 발매
곡 소재에 꼭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최근 발표한 ‘starryNstellar’엔 “별이 빛나는 밤에 보고 싶은 너를 생각해”란 가사가 등장한다. 서양미술사를 공부하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1889)에서 영감을 얻어 쓴 곡이다. “그림이 마음에 들어 한참을 보다 고흐가 어떤 기분으로 이걸 그렸을지 궁금해졌어요. 당시 즐겨 보던 드라마 ‘도깨비’(tvN) 여주인공 ‘지은탁’ 대사와 그 질문을 연결시켜 노랫말을 썼죠.” 인상파 화가의 그림과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 전혀 무관해 보이는 둘을 절묘하게 연결시켜 멋진 곡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starryNstellar’ 앨범 재킷 사진. 작곡에 영감을 준 고흐 작품 ‘별이 빛나는 밤’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피아노를 좋아하던 소년은 어느덧 전문 작업실에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했다
대능씨는 어릴 때부터 음악에 소질을 보였다. 특히 피아노를 좋아해 남들 앞에서도 곧잘 연주했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예술중학교에 가볼까, 고민한 적도 있어요. 결국 일반 중학교를 거쳐 대학에선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음악은 계속하고 싶었죠. 본격적으로 작곡을 해봐야겠다고 결심한 건 스무 살 때부터였을 거예요.”
그는 밴드 활동을 한 적도, 음악 동아리에 가입한 적도 없다. 그저 음악이 좋아 8년간 독학으로 공부하고 노래를 만들었다. “그렇게 몇 년 지내다 문득 생각했어요. ‘나도 음반 낼 수 있겠는데?’ 대형 기획사를 거쳐야 음반을 낼 수 있던 시절은 지났으니까요. 사람들에게 제 음악을 들려주고 싶단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만들어둔 곡으로 작업을 시작했지만 편곡부터 믹싱까지 다양한 준비가 필요했다. 꼬박 1년간 준비한 끝에 첫 앨범을 품에 안았다. “결과물 자체는 엄청 뿌듯했지만 막상 발매 시점엔 이미 수백 번씩 부르고 들으며 녹음한 곡이라 그런지 별 감흥이 없더라고요. ‘좀 더 잘 부를 수 있었는데’ 싶은 부분이 들리면 후회도 되고.”(웃음)
“카페서 내 노래 들리면 뿌듯… 일도 음악만큼 소중”
앨범 발매는 그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겼다. “강남 쪽에서 친구들과 모임이 있었어요. 어디선가 귀에 익은 멜로디가 흘러나오더라고요. 제 노래였죠.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곡 만드는 일은 오래전부터 해와서 그런지 신기하거나 대단하다고 느껴본 적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앨범을 발표한 후 카페나 가게에서 제 노래가 나오고 회사에 들어온 후엔 주변 분들도 좋아해주시니 괜히 뿌듯하고 그랬어요. 특히 제가 모르는 사람이 제 노래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하죠.”
▲대능씨는 “음악 작업은 대체로 혼자 조용히 했었는데 회사원이 된 후 무대에 서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고 말했다. 사진은 삼성전자 신입사원 연수 당시 공연 무대에 올랐던 모습
앨범까지 낸 그가 가수의 길을 걷는 대신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유는 뭘까? 대능씨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음악을 포기하고 회사를 선택한 게 아니니까요.” 그도 한때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하거나 기획사를 기웃거렸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전공 공부가 적성에 안 맞는 것도 아니고 지금껏 전공과 음악 둘 다 잘해왔잖아.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좋아하는 음악도 병행할 수 있지 않을까?’
대능씨가 삼성전자에 입사한 건 지난해. 하지만 1년가량 태스크포스(TF)에서 근무한 탓에 지금 부서에 배치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실무 능력으로만 따지면 말 그대로 ‘신입’이에요. 다행히 선배님들께서 업무를 잘 알려주셔서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엔지니어가 정말 많거든요. 일을 배우는 입장에선 정말 감사한 일이죠.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모인 곳에서 일하고 있단 게 자랑스러워요. 취업을 준비 중인 후배들에게도 ‘꼭 열심히 해서 우리 회사 오라’고 추천 많이 합니다.”
“혼자서 차근차근 음반 냈듯 일에서도 답 찾아갈 것”
대능씨에 따르면 음악과 일은 다른 듯 닮았다. “제가 작곡을 독학했잖아요. 아무리 악기를 다룰 줄 안다 해도 컴퓨터로 곡 작업을 하는 건 또 전혀 다른 차원이거든요. 기껏 만들어놔도 막상 들어보면 생각한 것과 너무 달라 좌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회사 일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모르는 게 많아 막막하죠. 주변에서 많이들 도와주시지만 결국 잘해내려면 저 스스로 어떻게든 부딪쳐봐야 하니까요. 막막함을 이겨내고 음반 내는 데 성공했던 것처럼 일에서도 하나씩 답을 찾아가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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