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신입사원 입사후기 - [기아영]과연 내가 PD가 될 수 있을까?(시사교양 PD 편)

KBS

한국방송공사(KBS) / 조회수 : 22113

입사 후기를 쓰기에 앞서 이 글을 읽는 KBS 지원자, 더 넓게는 언론사 입사 준비생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무엇일지를 고민해봤습니다. 당장 한 달 전까지만 해도 PD 준비생이었던 저를 떠올렸습니다. 당시 입사를 간절히 바랐던 제가 합격자들을 만날 기회를 갖게 된다면 무엇을 묻고 싶을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았습니다.

 

필기 전형에서 어떤 방식으로 글을 써야 합격에 가까워질지, 면접은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 관련 강의, 주변의 선배, 스터디원들의 조언 등 저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준비생들이 대부분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듯 언론사에 입사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의 방향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자꾸 궁금증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불안함’ 때문일 것입니다. 그 불안함의 원인은 준비가 부족하다는 자기 인식에도 있지만, 노력과는 무관하게 바꿀 수 없는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서류에서, 또는 면접에서 배척당할 수 있다는 우려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입사 준비를 하면서 제 자신을 가장 괴롭혔던 것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준비생들이 가장 궁금해 하지만 결국엔 ‘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정보들과도 관련 있을 것입니다.

 

당장 언론사에 입사하는 데는 어떤 수준의 글을 쓸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거기에 더해 언론인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연마하는 연습 역시 자신이 쓸 글의 내용을 결정하고 면접에서 보여줄 나만의 콘텐츠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필요합니다. 이처럼 입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랄 때 저는 다른 보통의 지원자들과는 구별되는, 제가 가진 특별한 특성까지도 함께 고민해야 했었습니다. 이는 비단 저뿐만 아니라 주변 준비생들에게도 마찬가지인 문제처럼 보입니다. 언론사 입사 준비생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들을 보면 알 수 있었습니다. ‘전공이 방송국 PD와는 전혀 관계없는데 괜찮을까요?’, ‘언론사 인턴 경력이 없는데 문제가 될까요?’, ‘나이가 많습니다. 불리하게 작용할까요?’ 게시판에는 이런 종류의 질문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필기, 면접 준비에 대한 질문만큼이나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만족스런 대답을 찾기란 어려웠습니다.

 

나이 서른, 언론사 관련 경력無, 기혼자, 아기 엄마

 

KBS에 최종합격한 작년 2018년의 저를 대표하는 단어들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적어도 KBS 입사하는데 위의 것들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학 때 ‘경영학’을 전공했고 언론학 관련 강의조차도 수강한 적이 없었습니다. 재학시절 보험회사 인턴, 광고대행사 아르바이트를 거쳐 2015년 1월 자동차부품 제조사에 입사해 3년 넘게 근무한 이력을 가졌을 뿐 언론사와 관련된 어떤 경험도 해보지 못했었습니다.

 

물론 PD에 대한 동경과 선망은 아주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나같이 ‘평범’한 사람일리 없다는 자기 부정을 거듭했던 것 같습니다. 제 또래 대부분이 그렇듯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경제력과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최상보다는 최적을 선택해야한다는 한계도 작용했습니다. 그래서 리스크가 적고 사례는 많은, 항상 다수가 선택하는 길을 따라왔던 것 같습니다.

꾸역꾸역 취업이란 과제까지 완수하고 나니 공허감. 허탈함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이것들을 이겨내기가 힘들었습니다. 자연스레 제 안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남들이 그토록 원하는, 일과 여가가 명확히 구분되는 삶이 저에게는 맞지 않았습니다. 주목하지 않으면 자칫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일상의 고민이 제가 하는 일에 도움이 되고, 다시 일로부터 제 삶이 달라지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습니다. 제 자아와 외부조건이 일치되고 그 환경 속에서 ‘나’를 실현할 수 있는 일을 평생 꾸려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아무도, 심지어 제 자신조차도 보지 못하게 꽁꽁 싸매두었던 PD란 꿈의 포장을 하나 둘 벗겨내기 시작한 게 신입 1년 차였던 2015년이었습니다. PD란 직업과 관련해 아무것도 해보지 않은 제가 할 수 있던 건 그저 가장 효율적으로 PD가 되는 길을 알려줄 ‘학원’에 의존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시간이 되는 대로 학원에 개설되는 수업을 수강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럼에도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썼던 글이 10편에 불과할 정도로 공부량이 부족했습니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겠지만 글은 정말 많이 써야 어떻게 써야하는지 미약하게나마 감이 잡히고 늘게 되는 것입니다. 하다못해 일기조차 꾸준히 쓴 경험이 없던 저였기에 절대적인 공부량의 증가가 절실하다 판단했고. 일과 병행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습니다. 결국 2018년 2월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입사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PD의 길에만 집중하겠다 결심하고 용기내기까지 무려 3년의 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그 사이 저는 결혼을 했고, 회사를 그만둔 2018년 2월에는 뱃속에 3개월 된 아기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언제나 리스크를 피해 살아왔던 제가 어쩌면 생애 처음으로 가장 많은 악조건들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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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고 집중해서 준비하면 금방 어디든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얼마나 낙관적인 기대였는지는 금방 깨닫게 됐습니다. 2018년 KBS 필기 합격 전까지 단 한군데도 필기 합격을 하지 못했었습니다. 첫 필기 통과와 면접 합격에 이어 마침내 시사교양PD란 명찰을 달게 해준 곳이 바로 KBS였습니다.

 

제 일천한 경험만으로는 모든 언론사가 그렇다 확언할 수 없지만 적어도 KBS만큼은 나이의 많고 적음, 결혼 유무, 경력 유무가 신입으로 입사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확실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서류에서도 관련 질문을 하지 않을뿐더러 면접에서도 역시 그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질문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경력도 없고 본격적인 준비 역시 뒤늦게 시작한 제가 어떻게 KBS에 합격할 수 있었을까를 되짚어 보려 합니다. 뭔가 대단한 비결을 알려드리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특별한 비법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공부 시간이 늘어남에도 별다른 성과가 보이지 않는 탓에 ‘이러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면 어쩌지’란 불안이 저를 잠식해 갈수록,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조건들에 대해 전전긍긍해하기보다 ‘나라는 존재’와 ‘PD’라는 직업의 연결선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고 남들에게 증명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이겨내고자 제 자신과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왜 내가 ‘PD’일 수 있는지, 왜 ‘시사교양 PD’인지와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을 방송 기획으로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 대답하고자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필기 전형과 면접 당시에 완전하고 완벽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겠지만 그래도 그 부분에 대한 수없이 많은 고민의 시간이 있었기에 상대가 납득할 만한 수준의 답은 할 수 있었고 최종 합격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힘겹게 입사를 하고 나니 이제는 모두들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라고 말을 합니다. KBS 시사교양 PD란 사원증을 다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앞의 수식어는 다시 제가 만들어 가야할 길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그 길이 곧 제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PD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여러분도 단지 KBS 시사교양 PD가 되는데 집중하기보다는 어떤 모습의 PD가 될 지와 같은, 합격 너머에 대한 고민 역시 함께 해나가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만나 뵙게 되길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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