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렸을적 시절을 떠올리면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 있었던 시간, 누구나 좋아하던 시간은 아니였지만 틀에 박힌 대한민국 교육과정 중에서 유일하게 내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시간은 다름아닌 미술시간이었다. 내 사물함에는 항상 크레파스와 물감세트가 구비되어 있었고, 선생님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내가 하고싶은대로 새하얀 도화지를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마구마구 채워나갔던 나만의 캠퍼스가 있었던 시절이었다.
이미 나이 30을 넘기고 어른이 된 지금, 일주일에 한번은 커녕 마지막으로 색칠도구를 손에 들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너무 까마득해서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삶 속에 어린시절 새하얀 도화지에 크레파스를 마구잡이로 색칠해대던 그 자유분방한 세계는 과연 존재하고 있을까? 우리 가족의 얼굴을 도깨비로 만들어 버리고 푸르른 하늘과 초록이 물든 대지를 보라빛 넘치는 기이안 세상으로 만들어버린 나만의 세계는 과연 지금 내 삶 속에 존재하고 있을까?
딱 하나 존재하고 있다. 그건 바로 사진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진을 '촬영한다'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촬영한다는 말 속에는 내가 잘 모르는 무한한 전문가의 세계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구도는 어떻게 잡아야 하고 색온도가 어쩌고, 셔터스피드, 조리개, ISO감도, 빛의 방향, 역광 등등 책으로 따지면 두꺼운 백과사전급 3-4권 분량의 어마무지한 이론이 숨겨져 있는 세계가 바로 촬영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적 크레파스와 도화지를 좋아했던 이유는 그런 미술의 이론적 세계를 완전히 무시한 나만의 표현 유리창이였기 때문이듯이 내가 사진을 좋아하고 즐겨 찍고 다니는 이유는 그런 어마무시한 촬영기법은 뒤로한 채 뷰 파인더를 통해 보는 그 세상은 나만의 세상이고, 손에 든 사진기는 내가 원하는대로 표현가능한 나만의 크레파스이기 때문이다.
내게 사진은 촬영하는게 아니라 그리는거다.
이런 배경에서 내가 캐논에 다니던 시절 기획했던 아주 재미난 사진캠페인이 하나 있다. 바로 '캐논 플레이샷.' 사진의 기술적, 이론적 촬영기법을 다 벗어 던지고, 순수하게 당신의 상상력 하나만으로 나만의 사진 작품을 표현해 보자는 캠페인이고, 매년 컨테스트를 열어서 4가지 주제를 주고, 그 주제와 연관된 나만의 독특하고 다양한 사진을 무한정 찍어서 사람들과 경쟁하는 컨테스트이다. 2014년 시작한 이 캠페인은 내가 캐논을 떠난 이후에도 매년 진행되어 올해 3회째를 맞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K1aYsS1dNc
플레이샷이 담고있는 철학은 바로 다음과 같다.
당신의 상상력 = 사진
구도가 어떻고 빛의 방향이 어쩌고 이런 내용은 그냥 싹 무시하고, 내가 머리속에 그린 상상력이 잘 담겨질 때 까지 무한정 시도해 보는 사진의 세계를 의미한다. 잘 찍은 사진이란 남이 평가하는게 아닌 내가 평가하는 거고, 내 상상력이 최대한 온전하게 표현된 사진이면 내겐 잘 찍은 사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컨테스트에서도 사진이 잘 찍혔네 못찍혔네로 평가되지 않는다. 당신이 표현하고자 했던 그 상상력이 얼마나 기발하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었는지를 평가한다. 즉, 사진 컨테스트이지만 사실 상상력 컨테스트가 되는 것이다.
2016년의 주제는 4+1로 되어 있는데, 4개의 메인주제 및 1개의 번외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Adventure - 야외 및 피서지에서 떠나는 역동적인 모험을 독창적으로 연출하는 미션
Temperature - 뜨겁고, 차갑고, 미지근한, 눈으로 보이는 온도와 보이지 않는 온도를 담아내는 미션
Three - 셋이 아닌데 셋으로 느껴지는 것, 당신이 포착하는 모든 것에 셋의 의미를 담아 연출하는 미션
Shining - 빛이 어둠을 가르듯이 당신의 눈동자에 빛을 비추는 모든 것을 새로운 생각으로 표현하는 미션
Stopmotion (번외) - 당신만의 상상력을 담은 사진으로 움직이는 동영상을 만드는 미션
레퍼런스 이미지에서 느껴지듯, 이 컨테스트가 지향하는 사진은 '잘 찍힌 사진'이 아닌 '기발한 사진'이다. 비록 어린 시절 처럼 없던 외계인을 만들어내고 존재하지 않는 대자연의 모습을 담아내던 내 상상력은 지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지만, 뭔가 나만의 상상을 그리면서 수없이 셔터를 눌러보는 (또는 스마트폰 카메라의 버튼을 눌러보는) 경험 그 자체로 이 컨테스트는 당신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글쓴이는 스팀헌트 (Steemhunt) 라는 스팀 블록체인 기반 제품 큐레이션 플랫폼의 Co-founder 및 디자이너 입니다. 비즈니스를 전공하고 대기업에서 기획자로 일하다가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본업을 디자이너로 전향하게 되는 과정에서 경험한 다양한 고군분투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현재 운영중인 스팀헌트 (Steemhunt)는 전 세계 2,500개가 넘는 블록체인 기반 앱들 중에서 Top 10에 들어갈 정도로 전 세계 150개국 이상의 많은 유저들을 보유한 글로벌 디앱 (DApp - Decentralised Application) 입니다 (출처 - https://www.stateofthedapps.com/rank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