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일하던, 제 책상입니다.
우리 멀리보는 커뮤니티 하나 만들자
저는 저와 같은 직종(한의사)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작은 카페 하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8년 1월 초에 시작한 커뮤니티 현재 가입자는 5000명을 넘어섰습니다. 한의사 25%가 넘는 사람들이 가입해있는 사이트 입니다. 숫자는 작지만, 비율로 보면 높은 가입 비율이죠.
네이버 카페에서 운영하고 있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익명으로 질문하게 해주세요.'
'가독성 개선해주세요.'
'닉네임도 쓰게 해주세요.'
사실 불만이 있다고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사람, 시간, 노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제 본업과 함께하기 어려운 정도로 업무량이 올라온 상태였습니다. 저는 항상 일을 할 때 우선순위를 만듭니다. 플랫폼 관련 업무 우선순위를 세울 때는 '여기를 왜 만들었더라'를 다시 생각하며, 여러 컴플레인들을 줄 세워 봅니다.
근본적인 성장을 추구합니다.
교류의 속도가 성장의 속도입니다.
'양질 지식의 교류 속도가 높아지면, 그에 맞는 상품과 서비스 개발 속도가 빨라지고, 대중이 느끼는 업계 성장 속도는 올라간다.' 그런 간단한 가정 위에 권토중래 마음을 얹고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저와 제 동료들의 행동이 업계에 좋은 나비효과가 되길 바라며.
그래서 커뮤니티 내에 '중립적인, 확인가능한, 출처인용의' 3가지 기본적인 기준을 두고 대화하고 콘텐츠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정책을 그렇게 세웠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그리할 순 없지만, 지켜지지 않을 때도 분명 생기지만, 기준이 만들어내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문적인 대화를 위해 '실명'을 사용하도록 요구했는데, 처음에는 '숫자가 차오르면 교류가 커지겠지' 생각했건만, 생각만큼 교류가 많아지지 않았습니다. 콘텐츠 구독시간은 '8700시간/month'를 뚫었는데, 교류는 그 속도를 못 따라가니, 기획진 간에도 추가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얼마를 모았지'보다, '무엇을 만들고 있지'가 중요합니다.
회원숫자도 어느 일정 시점을 넘어가고 나서는 의미가 적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바라던 교류의 속도를 높였는가?' 스스로 물어봤는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처음에 변화를 주고 싶었던 것들에 충분한 변화를 줬는가.' 아니었습니다.
교류의 속도가 발전의 속도다.
신뢰있는 대화는 유도하고 싶었고,
사람들의 교류는 배려하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어떤 기획과 어떤 행동을 해야할까
고민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익명/실명 다 쓸 수 있게 해주시면 안되요?'
익명은 누구나 편하게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글 생산량은 폭발적이지만, 누가썼는지 분별할 수 없어서 신뢰가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폭력성도 제일 높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실명은 자신을 드러내야하니 부담스러워 글 생산량은 굉장히 소극적이지만, 글쓴이의 reference check가 가능해지면서, 신뢰도는 최대한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구축한 플랫폼에도 주제에 따라 대화방식을 선택할 자유를 줄 필요가 보였습니다.
'의사도 질문할 때는 부끄럽습니다.'
'노는 이야기는 좀 자유롭게 쓰고 싶습니다만'
자유를 줄 공간, 부담을 줘서 신뢰를 높일 공간을 나누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대화하는 것을 1년 반 동안 운영자 입장에서 살피다보니, 아무리 전문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100% 불확실할 때는 '이 정도 의견만 남기고 싶다.'는 마음을 보이곤 했습니다. 그래서 필명(닉네임)이 필요했습니다. 또 확실하게 어필하고 싶을 때는 실명을 쓰시고자하는 욕망이 있고요.
결국 다 정리해보면, '카페에서 익명 또는 실명 하나만 강요하는 시스템'이 시발점이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한 누군가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 이런 기술에 갇힌 체로 대화하고 있었던거 아닐까?'
논문1 : 온라인 커뮤니티 내 익명성이 가상 팀 성과에 미치는 영향
논문2 :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기술적, 사회적 익명성이 자기통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논문3 : 온라인커뮤니티에서 익명성이 커뮤니티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 고객충성도와 익명성간의 상관관계 분석을 중심으로 등등등
읽다보니 '현실에서 실명/필명/익명 선택 가능한 사이트가 없었다.'가 눈에 띄었습니다. 제가 정리한 대로 내용은, 그렇게 3가지로 사용자 정체성을 나눈 사이트가 가장 많은 역할을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대중 사이트에 그런 사이트가 없는 이유는 지저분한 UI를 만들어내기 딱 좋고, 처음에 그런 선택을 염두해두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세계 최대의 의료커뮤니티라 불리는 SERMO도, 가입과정에서 필명/실명 중 하나를 골라 들어가 활동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실명 10%/익명 90%)
'사용자가 들어가서 실명/필명을 골라쓰게 하면 되지 않을까?', '세계최초(혹시 아니라면 제보)로 익명, 실명, 필명 골라쓰기 컨셉으로 사이트를 만들어볼까.'
점점 생각이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전문직간 멋진 교류를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논문들을 읽고, 세상에 있는 의료 커뮤니티들을 탐방하다보니 인사이트가 몇 가지 더 생겼습니다. '정책과 기술지원이 몇 가지 더 적용된다면, 이때까지 없는 전문직간 멋진 교류가 일어나는 플랫폼을 만들 수도 있겠다.'
심장에 뭔가 용솟음 치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전력을 다하면, 손에 잡히지 않을까.
일단 쉬운 방법부터
적극적으로 네이버 카페에 메일을 보내봤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지인들을 통해 연결하고 연락을 하니, 관리자 중 한 분께 직접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 이런 스타일입니다. 담당자 피곤한 스타일.) 제가 구상한 것 중 몇 가지만 추가할 수 없느냐고 물어봤습니다.
하지만 저희같은 모래알 커뮤니티 때문에 정책을 바꿀 순 없으니, 좋은 답변은 오지 않았습니다. 한번 귀 기울여 들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죠.
저라면 귀담아듣지도 않았을 겁니다. 하하하하.
이제 남은 방법은 직접 개발 뿐이었습니다.
'두려움 + 기대'가 섞인 하루하루가 이어졌습니다.
작은 기술 지원 하나가, 우리가 대화하는 문화를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카페 운영도 쉽지 않은데, 하루는 같이 일하는 동생한테 카톡이 왔습니다.
'형 그거 꼭 해야겠어요?'
시도해보고 싶었습니다.(존마웨이) '전문직간 좀 더 기준을 높인 대화가 원활히 도는 커뮤니티'를 구상하는데, '실명/필명/익명 선택'이 가장 핵심 기술이라 생각했으니까요. 1달간 적용할 정책들을 정리하며 구체화해가기 시작했습니다.
'UI 더러우면 안되겠구나..'
'기능은 잔뜩 만들어놓고 사용도 안하는 형태되면 망하겠구나..'
하루 하루 깨달음이 늘어났습니다.
제가 할 일도 늘어났습니다.
어느날 '기획서'라 가정한 글을 떠듬떠듬 치고 있는데 카톡이 왔습니다. '형, 카페에 질문을 하고 싶긴 한데요. 솔직히 쪽팔려서 실명으로 못하겠어요. 그런데, 또 실명 답변이 좀 좋긴 해요.'
'생각한 플랫폼 만들어지면 저런 문제는 쉽게 해결가능하겠지'
친구 의견이 빙산의 일각이라 생각하며, 퇴근 후 매일 밤 기획서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장벽 하나 없어지면, 우리가 한 걸음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개발. 솔직히 하기 싫었습니다.
할 일의 단위가 너무 크니까요.
그래도 언젠가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는데
'지금이 시작해야 하는 때인가 보다.'
감이 왔습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됐습니다.
기록을 남겨보려 합니다.
다음 편은 -기획서를 만들자, 섭외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범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