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왜 한의원을 그만두고 웹기획을 시작했나' 2편입니다.
처음엔 컨셉잡고 맡기려 했습니다.
어딘가 부탁할 생각으로 문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에 공보의 시절 UX design 관련 conference에 참석한 적 있습니다. 친구가 Mayo병원 서비스 디자이너가 온다고 알려줬거든요. 멍때리고 앉아있기는 싫어서, 서비스 디자인 책 3권을 정독하고 갔습니다. 그때 익힌 '사용자 touch point' 개념 따라, 제가 구상한 사이트에 대한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Reference되는 사이트는 캡처, 첨부하며 적어내려가고요.
이런식으로 쳤습니다.
'이 정도면 다 된거 아닌가'
정리를 마쳤습니다.
저였습니다.
독배 범선생.
친구가 남긴 한마디가 생생합니다.
'이건 웹 기획서라고 하기 어려워'
'이제 앞에 있을 일들이 눈에 보여'
'쉽지 않을꺼야'
적중하지 않은 말 하나 없었네요.
누가 나의 독배를 마실 것인가.
'웹'이란 단어가 떠오르는 지인들에게는 연락을 다 돌렸습니다. 페이스북에서는 웹 개발 관련 글을 올리는 친구가 있으면 다이렉트 메세지를 쐈습니다. 아는 원장님 사촌이 개발자면 연락처를 구해 연락했습니다.
'혹시 개발하세요?'
(자네 나의 독배 한 잔 하겠는가)
미팅을 잡고, 친구에게 묻고, 지인에게 묻고...
외주의 첫 어려움.
이게 얼마짜리 프로젝트일까?
'2명 정도 고용해서 진행해봐'
'외주 사이트에 올려봐'
'외주로는 어려워보여'
'이건 돈 줘도 어려워보여'
'그냥 얼마 안하지 않을까?'
다들 제가 구상한 사이트에 대한 말이 달랐습니다. 왜 다른걸까요. 지나고 보니 제가 한 질문은, '나는 얼마짜리 인간일까요.'만큼 어려운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역시 프로하고 일하는 거지.
프로에게 시원하게 다 맡겨버리자.
'그래 돈은 쓰는거지.' 생각하며 미팅을 나갔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비쌌습니다.
'1년이면 BMW이고, 2년이면 포르쉐 겠는데'
다시 생각을 줏어담기 시작했습니다.
추후 운영비 규모나 서버 비용등을 듣는데, 제 예상과 달랐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서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팀이 시작하기도 전에 망할 수 있겠다는 직감이 왔습니다.
문득 가구 만들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이 가구가 왜 이 가격이에요.'
IT 외주 세상의 가격 책정도 가구 가격 책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가구 가격도 원목 자재비, 들어간 작업시간 임금 가격만으로 책정되진 않으니까요. 선생님이 유명한 사람이면 비싼거고, 일단 마음에 들면 사는거고, 돈 없으면 못 사는 겁니다.
어느 순간부터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구로 치면 109장 짜리 요구사항 들고 '겁나 멋지고 괜찮은 가구 하나 만들어주세요.'라고 이야기한거니까요. 명품 가구 같은 거는 쓰고 싶은데, 그 돈은 쓰지 못한다하고, 만들 능력은 없고, 자기 주제도 모르는.
섭외 과정 중 한 개발자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 이건 해도, 사실 잘 완성해드릴지 모르겠어요.'
'문서도 더 명확해야 해요.'
'디자인까지 아주 명확하게 나와있어야 할 거 같아요.'
제 주제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완벽한 외주란 없습니다.
말 한마디, 기발한 아이디어 한 번이면, 네이버 블로그가 뚝딱나올 것 같은 생각을 갖곤 합니다.
제가 그랬네요.
인생 모든 앞선 경험들을 끄집어내어 현재에 비추다보니 '기획, 디자인을 먼저 잡아야겠구나.' 감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직접 하나는 해야 가격이 명료하게 떨어질텐데...
그래도 기획 외주가 더 좋다는 미련이 남았습니다. 저도 다른 일을 해야할게 많으니까요. '돈을 주고 문서를 기획서로 바꿔야겠다. 돈을 주고 시간을 사야겠다.' 마침 함께하기로 한 친구가 괜찮은 기획 겸 디자이너가 있다고 했습니다.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똑똑한 열정의 주니어들을 모아보자.
주니어 = 분기탱천한 열정을 가진 레퍼런스는 별로 없는 somebody. 기록은 많지 않지만, 뭔가 정말 제야에 숨겨진 주니어라면, 현재 여건을 넘어서는 결과를 만들지 않을까?
후베닐에 숨겨진 메시를 찾는 심정으로 괜찮다는 주니어를 만났습니다.
A4 용지 기획서를, 웹 디자인 넣어서 바꿔줄 수 있다고 하시네요. 해외 여행 가시기 전에 만났는데, 여행가서 기획 A4를 읽으시고, 갔다오셔서 바로 디자인을 치겠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가능한가보다'
(여행가서 일한다는 말은 불가능한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많은 일이 있었다고 하시네요. 처음 약속한 1달 정도가 지나서야 일을 시작하겠다는 의향을 밝혀오셨습니다. 일이 밀리면 1달간 다른 팀원들은 소모된건데요.
그래도 또 다른 섭외시간과 여러가지를 감안했을때 다른 대안이 딱히 많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금이라도 길만 틔우라.'는 의미로 일을 맡겼지만, 시작하겠다는 당일 미팅에서 파토를 내셨습니다.
알고보니 슈퍼주니어였습니다.
딥빡은 역사를 만든다.
1년에 몇 번 없는 에너지가 저를 채웠습니다.
이 정도 일이면 손오공도 한번에 원기옥을 모아서 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획 깨졌다는 전화를 받고 있는데, 너무 화가 났습니다.
소개한 팀원은 상당한 미안함에 빠졌습니다. 너무 미안해 해서 '저번주부터 불안불안해서 컴퓨터를 사고, Adobe의 XD라는 프로그램(웹기획 프로그램)을 돌려보고 있었다'고 동생에게 말했습니다.
'형..죄송한데요.. 하실거면... 윈도우말고 맥북의 Sketch를 사용하셔야 할 거 같아요.'
*Sketch는 Mac에서만 돌아갑니다.
'아 그럼 미리 Mac을 사라고 하던가'
손오공도 이쯤되면 원기옥을 1초에 2방 날려서 마인부우를 한방에 죽이고, 드래곤볼 완결을 5권쯤은 앞당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맥북 사와. 비싼거. 바로 사와.'
맥북을 인생에 처음으로 사봤습니다.
'아 그냥 내일부터 내가 한다.'
제 웹 기획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외주인가, 내주인가.
결국 내주화를 선택했습니다.
하루에 5시간 자고, 점심은 샌드위치만 먹었습니다.
본업이 있으니 남는 시간에만 해야하는데, 남는 시간 다 쏟아부어도 시간이 부족할 거 같았습니다. 진료는 진료대로, 운영하던 커뮤니티 업무들은 팀원들에게 더 분배하고, 저는 웹기획에 올인했습니다.
'그건 너가 할 일은 아닌거 같은데'
친구 말도 멤돌고, 후회도 하고, 내가 하는게 맞는가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목표는 세웠고, Deadline 설정 시간이 제 등 뒤를 덮쳐오니, 그냥 정신없이 뛰었습니다. 터널이 어두우면 빨리 빛이 있는 곳을 향해 뛰어야죠.
만약 조금이라도 내주화하면, 장기적으로 나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아마 이 감각은 '가구를 한번 제대로 만들고나서, 적절한 가격을 인지하게 된' 경험에서 비롯했을 겁니다. 직감은 적중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해도 되나'라는 불안함은, 이번 시간이 '팀에 IT관련 능력을 탑재하는 꽤 괜찮은 시간이 될거라는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시중 강의는 다 사서 듣고,
책사고 완독하고, 메뉴얼 완독하고,
관련 커뮤니티 찾아서 계속 챙겨보고,
만들고, 틀리고, 고치고, 모르면 찾아보고.
웹기획은 시중에 책이 많지 않았습니다. 있다고 해도 트렌드가 지난 책인듯 했습니다. '아주 정석은 없나보다.', '참 업계가 빠른 곳이구나.' 그래도 뭔가 건질 것은 있겠지 싶어서, 볼만해 보이는 책은 다 사서 읽고, 버릴 것과 취할 것을 판단하며 빠르게 나아갔습니다.
디자인, 정보구조, 행동심리, 스케치, 기획, 글쓰기.
시험 17과목이던 본과 3학년 시험기간 모드로.
결론적으로는 다 읽었습니다.
인터넷에도 여러 기본 강의가 있는데, 기본적인 사용 방법만 가르쳐줬습니다. 그래도 메뉴얼이나 책 읽는 시간을 많이 줄여주니 좋더군요. 정말 급할 때는 작은 도움을 주는 콘텐츠마저 너무 소중했습니다.
symbol이나 button만들기 등이나, symbol에 변화줬을 때 깨져서 나오는 것 등에 대한 대처는 외국 youtube를 봤습니다. 한국 sketch app korea 페이스북 커뮤니티에서는 자잘한 팁들을 익혀갔습니다.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한 사람들이 아카이빙 해놓은 자료도 챙겨보고요. (감사합니다. 저를 살렸어요.)
읽는다고, 들었다고 다 체득되진 않았습니다. 계속 시도하고, 다시보고. 일단 실력은 늘게 되어있으니 효율은 120%만 목표하며 진행했습니다. '정신적으로 견딜 수만 있으면 되겠다.' 감이 왔습니다.
'나는 무생물이다. 뇌가 없다. 고통이 없다. 감각이 없다. 기억은 한다.'
출근할 때는 메뉴얼 독서를, 점심시간엔 실천을, 저녁 퇴근 시간엔 강의를, 집에 오면 작업을.
하루 19시간을 일로 꽉 채우다보니, 꿈에서도 일 한다는 말이 무슨말인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는 아내가 원기옥을 모으고 있었지만, 여하튼 45일간 109장 문서를 Sketch의 구체적인 시안으로 바꾸는 작업에 성공했습니다.
오늘 하다보니, 내일 더 간단하게 하는 방법이 발견되고. 처음부터 해야하는 것도 생겼지만, 여하튼 그렇게 끝.
끝났다고 생각했다.
'기획-디자인 다 했다.'생각하고
웹 디자이너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오 괜찮은 기획서네!'
아.. 드디어 '기획서'라고 하네요.
친구 한마디에 후달리던 마음이 좀 잦아들었습니다. 친구, 친구 남편과 제 기획서 한장 한장 같이 봤습니다. 비전문가인 제가 무지해서 놓친 부분이 없나 살폈습니다.
친구는 놀란 눈치였습니다.
'아 내가 뭔가 하긴 했나보다.'
'UI로 몇 장 정도될지, 시세가 한장에 얼마인지' 등 친구가 차근 차근 의견을 말해줬습니다. 친구 눈빛에서 저에 대한 일말의 리스펙트를 보았습니다. '이제 좀 더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겠구나.' 감이 왔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 Mac Book을 눈 앞에 띄웠습니다.
영업직 사원이 이제 카탈로그를 하나 쥔 기분으로
'어떻게 생각해'
섭외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다 실패했던 디자이너, 개발자 섭외가 합리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할 일을 명확히 규정짓고 시작하니, 섭외 가격은 예전보다 낮아졌습니다.
정말 친구말대로 제 기획서는 '웹 기획'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감투만 기획일 뿐, 실제로는 외주하시는 분들께 ' 내 생각은 이러니까, 너가 다 웹기획해서 디자인, 개발해'에 가까운 문서였으니까요.
제 현실 감각은 팀 동생과 제 주변 친구들 덕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참 고맙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했습니다.
'제가 기획서는 있거든요.'말하면, 디자이너 분들은 Flow chart처럼 생긴 UML문서를 요구하시더라고요. 이게 있어야, 사용자 흐름을 착각해서 오류를 만드는 과정이 줄어드니까요.
-시안
-관계
-상세설명
기획서는 3가지 정도로 구성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서로 시일이 맞는대로 가되, 참여하기로 한 개발자님 요구대로 atlassian에 정책문서와 기존 UI의 의도와 사용자 Flow 등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든 해야한다.
정리는 맨날 하던 것이니, 똑같다는 생각으로
문서치면서 디자이너님이 UI 1장을 그리면, 저는 문서를 토대로 Invision에서 기존 기획과 정책이 달라진 부분을 체크 피드백했습니다. 결국 이런 부족한 사람을 이해해준 디자이너를 만난 게 저한테는 행운이었죠.
문서를 다치고, 디자인이 전부 나왔을때
기존에 회의적이던 친구들도 화답해줬습니다.
'놀랍다.'
그렇게 기획서가 자리 잡아갔습니다.
잘 하지는 못하지만, 이제 추가 기획서는 만들 수 있습니다.
제가 만들었으니까요.
관중석에서 그라운드로 내려가는 시간.
상대 실수와 노력, 한계를 존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게 좋아, 이게 별로야.'인 세상에 살다가 직접 황무지부터 갈아봤습니다. 여하튼 황무지를 한번 갈기 시작해보니 '내가 먹던 밥이 어떻게 만들어졌나' 깨닫기 시작합니다.
제 역할은 황무지를 열심히 갈아 줄 사람들을 모아서, '다 필요없고~ 밥맛만 보고 평가할게~' 입장을 가진 관중석에 계신 분들을 설득하는 중책인 것 같습니다.
만드는 과정은 중간 중간 짱돌도 나오고, 구렁이도 나오고 생각대로 되는 건 없습니다. 계속 실수하고, 수정하고, 보완하고 반복했네요. 사실 이때 서로 스트레스가 상당히 높아집니다. 이때 사이트 완결 기준은 고수하면서, 상대 실수와 노력을 존중하고 일이 계속 순탄하게 진행하도록 커뮤니케이션 하는게 가장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빠르게 목표에 근접할 수 있도록'
저도 이번 일을 하면서 상대 실수와 노력, 한계를 존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시행착오 속에 오가는 감정은 잘 잡고, 점검은 하되 의심으로 이어지면 안되며, 기준은 말하되 감정적으로 불평하면 안되고. 오류는 수정할 것이지, 화낼 것은 아니고. 자존감은 서로 지킬 수 있는 대화 문화를 구축하고, 요청하고, 보완하고, 대화하고, 점검하고.
어떻게 이걸 제일 간단하게 실천할 수 있을까.
'상대를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가'로 귀결되더라고요.
일의 완성은 커뮤니케이션이 90%인가봅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말하는 방식과 글 쓰는 방식에도 조그마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주어와 목적어는 반드시 챙겨서 오해가 없도록. 복문은 되도록 단문으로 써서 내용 전달은 빠를 수 있도록.
'스타트업은 실패해도, 구성원은 실패하지 않는다.'
장병규 의장님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여하튼 1차 개발완료 일정이 4-5일 늦어져서
개발자 형님들께 이 글을 꼭 공유해드릴 예정입니다.
멋진 서비스를 사회에 제공할 수 있는 날을 꿈꿉니다. 본질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개인적 성장도 폭발적이길 바라며.
함께 완결합시다!
*아래는 1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