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중국의 역사를 참 좋아한다.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 같은 책을 읽다 보면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 어느 정도 해답이 오기도 하고, 무엇보다 영화나 TV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드라마틱한 인생역정을 그 안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의 긴 역사 속에서도, 맨손으로 일어나 나라를 세웠거나, 불리한 상황을 어떻게든 역전해서 성공을 일궈낸 인물들의 일대기를 보다 보면, 이것도 하나의 스타트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 때가 있다. 오늘의 주제는 그렇게 정해졌다. 부담없이, 역사 상식 하나 얻어간다 생각하고 읽으면 딱 좋을 것 같다.
1. '존버'의 대가 진 문공
흔히 '중원의 패자'나 '패자'같은 어구를 보게 된다. 이 단어를 보면서, 어릴 적에는 대체 뭘 팬다는 건지, 아니면 진 사람이라서 패자인 건지, 졌으면 왜 저렇게 띄워주는지 의아해했던 기억이 있다. '패자'라는 것은 춘추전국시대에 만들어진 단어로, 원래는 주나라 왕을 모시고(존왕) 오랑캐를 물리치는(양이) 제후국들 중에서 리더 격의 지위를 인정받은 나라의 군주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였고, 이렇게 유명한 군주 중에 '춘추오패'라는 인물들이 있다.
사전지식은 이쯤하고, 이 춘추오패의 다섯 명 중에 특히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양반이 한 명 있으니, 그게 바로 진(晉) 문공 희중이이다.
거두절미하고 간략하게 말하면, 아버지 진 헌공이 사람을 잘못 들여서, 이 사람이 헌공의 세 아들을 서로 이간질을 시켜 태자는 자결시키고, 둘째(중이)와 셋째(이오)는 각자 도망쳤다가 헌공이 죽자 셋째아들이 돌아와 군주가 되었는데, 형이 아직 살아있으니 계속 자객을 보내 목숨을 끊으려 하는 바람에 정처없이 떠돌다가 초나라와 진(秦)나라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되찾고 중원의 패자가 된다는 스토리이다.
이렇게 말하면 별 것 아닌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나 소공녀 같은 스토리라고 생각이 들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양반이 떠돌아다닌 기간이 19년이라는 것이다.
떠돌아다니면서 동네 농부들한테 모욕도 당하고(나중에 그 지방 전체를 개박살냈다고...), 조(曺)나라에 갔더니 환대를 받길래 '사람이 됐구만' 싶더니 목욕하는 걸 훔쳐보려 하기도 하고(중이는 눈에 눈동자가 둘인 중동에 갈비뼈가 통으로 되어있는 변협의 상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같은 춘추오패 중 한 명인 제 환공의 후대 아래 제나라 공녀와 결혼하여 자식을 보기도 하고, 하여간 별 일을 다 겪게 된다.
문공이 아닌 떨거지 공자 중이 시절에도, 그를 끝까지 따라다니던 가신들이 있었다. 같이 밥 빌어먹고 거지꼴이 되어가며 19년의 방랑 생활을 함께 한 인물들인데, 나중에 공의 자리에 즉위했을 때 그에 걸맞는 후한 보상을 얻은 것은 물론이다.
이쯤에서 감이 올 것이다. 진 문공이 스타트업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돈도 사람도 없이 초라한 유랑객에 불과했던 초기 상태에서 죽도록 고생을 하다 제 환공의 환대 아래 숨을 좀 돌리며 앞으로의 계획과 방향을 잡고(시드 투자), 초나라와 진나라에서 병력을 빌려(시리즈 A) 사업을 성공시키고 급기야는 중원의 패자 위치에까지 오르게 된 것을 보면, 스타트업의 성공과 맥락이 닿아있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렇다. '존버'는 승리하는 것이다.
물론 진 문공이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과 모욕한 사람들을 나누어 확실히 보답할 것은 보답하고, 응징할 것은 응징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인재였기 때문인 것도 있다. 실제로, 이후 초나라와 국경지대에서 싸움을 벌이게 되었을 때, 은의에 대한 보답으로 36킬로미터 정도를 그냥 후퇴해주었다는 일화를 보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갈비뼈 훔쳐보려고 했던 조나라는 작신작신 밟아줬다고 하고.
내가 모시는 이 사람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이 사업 모델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우리도 19년까진 아니더라도 몇 년 정도는 '존버'하면서 대기만성을 노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워렌 버핏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2. 혼자서는 승리할 수 없다, 초패왕 항우/듣는 리더십의 귀재, 한고조 유방
장기를 두어본 적이 한두번쯤은 있을 것이다. 아니면 장기판에서 말이 움직이는 것 정도는 보았거나. 장기판에서 해서체로 정갈하게 쓰여진 빨간색 말 중에는 '漢'이 있고, 초서체로 멋드러지게 쓰여진 초록색 말 중에는 '楚'가 있다. 초한전쟁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 그 연원이다.
요즘도 '항우장사'라는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센 사람을 일컬어 항우장사라는 말을 했었다. 그만큼 힘, 무력, 용기와 담대함을 상징할 정도로 항우는 힘이 세고 용감했다는 뜻이다. 옛 초나라의 명장 항연 장군의 자손으로 명문가의 자제이기도 했다. 금수저였던 것이다.
반면 유방은, 술과 여자를 좋아하고 예의를 몰랐으며, 군신간에도 예의가 없어 술자리에서 위아래 없이 어울리고, 유학자나 선비가 지나가면 욕보여서 쫓아내는 것을 즐겨했다고 할 정도로 촌부 그 자체였다. 금수저는 커녕 흙수저 축에도 못 끼는 동네 한량이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진시황 사후 어지러워진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중국인들이 아직도 숭상해 마지않는 진정한 의미의 통일국가 한나라를 세운 것은 유방이었다. 심지어 유방은 항우랑 싸우면 매번 지기만 했고, 이긴 것은 마지막 해하의 전투 단 한 번뿐이다. 짜증나게도 항우는 잘생기기까지 했다고 한다. 대체 글자도 제대로 모르는 촌놈이 명문가의 잘생기고 힘센 금수저를 이긴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항우의 치명적인 단점은,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항우 세력의 대표적인 책략가 중 '범증'이라는 뛰어난 인물이 있었다. 항우가 아버지와 같다고 하여 중보(仲父)라고 부를 정도로 따랐던 이 사람은, 초나라가 유방의 세력을 박살내고 홍문에서 연회를 치렀을 때에 유방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항우가 듣지 않아 다 잡은 고기를 촉 땅으로 놓아주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나중에 둘 사이가 악화되었고, 범증은 사직서를 쓰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울화병이 도져 죽게 된다.
논공행상에서도 항우의 단점은 크게 드러난다. 기분에 따라, 개인적인 사감에 따라 논공행상을 하니 바른말하고 일 잘하는 부하들의 불만이 크게 드러날 수 밖에 없다. 항우가 중국 대륙을 거의 통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반란과 배반에 시달린 것은 그 용인술에 있다.
반면 유방을 보자. 진나라를 공략할 때에 역이기라는 사람이 결정적인 정보를 손에 쥐고 유방을 찾았다. 평소부터 학자와 선비를 무시하던 그는 날도 더운지라 편안한 복장에 발을 씻으며 역이기를 맞았고, 이에 기분이 상한 역이기는 대노하며 그대로 돌아가려 했다. 유방은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바로 옷을 제대로 갖추어 입고 손님을 맞는 예의로서 역이기를 다시금 맞아 사죄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남의 의견을 바르게 경청하고, 그에 따라 실행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논공행상 부분 역시 항우와 큰 차이를 보인다. 촌무지렁이 시절부터 유방을 따르던 사람 중에 소하라는 인물이 있다. 그야말로 행정의 귀재였던 그는,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중국을 통일하여 한나라를 세우자 가장 큰 공을 인정받게 되었고, 전장에서 직접 전투를 지휘하던 장수들이 불만에 차 '목숨걸고 싸운 우리보다 뒤에서 붓만 놀리던 사람이 공이 큰 건 말이 안된다'며 항의하자, 유방은 사냥개와 사냥꾼의 비유를 들며 소하의 특권과 특혜를 유지하였다.
허례허식만을 좇고, 나의 의견이 곧 옳은 의견인 줄 아는 많은 이들에게 묻고 싶다. 집안 좋고 잘생기고 힘도 장사인 금수저가 결국 패배하여 자결하고, 필부의 집안에서 태어나 술과 여자를 좋아하던 한량이 그 금수저를 이긴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고.
*잘 듣는다는 것은 이렇게나 중요하지만, 그래도 인종차별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3. 초기 멤버가 관우랑 장비네요? 촉한 소열제 유비
스타트업에서 초기 멤버의 중요성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실패하면 같이 망하고, 성공하면 함께 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초기 멤버는, 억만금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알고 있을 삼국지의 그 유비이지만, 말이 좋아 황족이고 황숙이지 그저 떨거지에 불과한 양반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중산정왕의 후예' 운운하지만 유비가 한나라의 황실과 갖는 관계성은, 주변 사람 중에 아무나 전주 이씨 한 명을 붙잡았을 때 그 사람과 세종대왕이 어떤 관계인지 알아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황족임에는 틀림없지만, 정통 명문을 이어갔다면 촌구석에서 돗자리를 짜고 있었겠는가.
그 유비를 삼국의 한 축으로 올려놓을 수 있던 원동력은,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하는 귀신같은 능력도 물론 있었지만, 역시 굵직굵직한 초기 멤버들의 능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긴 스티브 잡스도 어쩌다 만난 동네 친구가 워즈니악이었으니까, 이런 멤버 구성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 아닐까.
옆동네 대기업에서 스카웃 제의와 함께 핑키파이...아니 적토마를 받으면서도 형님께 갈 수 있다며 좋아하고, 삼국시대에서 유일하게 전장에서 적장의 목을 친(삼국지연의에 수많은 일기투 장면이 나오지만 실제 역사에 남아있는 건 관우가 안량을 벤 것 뿐이라고 한다) 데다가, 나중에는 한 지방의 도독을 맡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과, 그 관우가 '걔가 저보다 세요ㅎㅎ'라고 말해서 조조를 긴장하게 만들거나, 장판파에서 20기의 기병으로 500기의 호표기를 상대로 버텨낸 맹장이 초기 멤버라면 어디에 가도 일단 한 자리는 해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간손미 간손미 하면서 조롱하지만 간옹, 손건, 미축같은 이들도 비범한 인재였음에는 분명하다. 거기에 제갈량이나 마초같은 인물까지 가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겠는가.
조조처럼 잘 나가는 환관의 자식이라 위세가 등등했던 것도 아니고, 손권처럼 지연과 혈연으로 얽힌 지방을 터전으로 삼을 수 있던 것도 아닌 유비가 결국 나라를 세울 정도로 성공한 것은 인재와 팀 구성의 중요성을 반증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라는 말이 있다지만, 인재가 없으면 일조차 꾸밀 수 없다.
*동네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 지는 말 할 필요도 없다. 이래서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하는가 보다.
4. 성공했다고 변하면 바로 훅 가는 겁니다, 진무제 사마염
요 위의 삼국시대에서 가열차게 치고 받던 위, 한, 오는 결국 사마의의 자손들이 통수를 치고 진나라를 세움으로써 결말이 나게 된다. 삼국지연의에 빠져서 열심히 책을 읽던 이들이 갑분싸라는 말의 뜻을 깨닫게 되는 부분이며, 수많은 삼국지 팬들이 후반부를 그리 좋아하지 않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진나라를 세웠으면 제대로 다스려서 태평성대를 이루기라도 해야지, 3대가 채 지나기 전에 나라를 말아먹어 5호 16국 시대를 연 장본인이 바로 사마염이다.
즉위 초반에는 개념찬 인물이었다. 꿩의 머리털을 이어 만든 사치스러운 모자 중에 '치두구'라는 물건이 있었는데, 수하 중 한 명이 이것들 사마염에게 바치자 즉각 태워버리라고 말할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유지했고, 영명하고 사리분별이 밝아 그야말로 명군이 될 것이라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마지막까지 버티던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나니까 긴장이 풀린 것일까, 아니면 흔히 말하는 '현타'가 온 것일까, 바로 태세를 전환하여 세상의 온갖 사치와 향락에 빠져살게 된다.
당시 중국 대륙의 호구 수가 약 1,600만명 정도였다고 하는데, 후궁 1만명을 들여 매일 밤마다 양이 끄는 수레를 타고 그 수레가 멈추는 곳의 후궁과 밤을 보냈다고 한다. 태워버리라고 했던 치두구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이까짓게 뭐라고 그렇게 무서워했는지'라며 껄껄 웃었다는 기록도 있고, 그나마 남아있던 바른말 하는 신하가 '폐하는 후한의 환제와 영제처럼 사치하고 부패한 군주입니다'라는 말을 해도 그저 웃어넘길 뿐 아무것도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지적 능력에 문제가 있는 아들 사마충이 황위에 오르고, 팔왕의 난과 영가의 난을 통해 4대만에 진나라를 말아먹고 사마예가 동진을 세우게 되는 원인을 만든다. 동진 역시 그리 오래가지 않아 망하게 되었고.
물론 진나라가 오래가지 못한 데에는 구품관인법의 시행으로 인한 귀족들의 카르텔 형성과 심각한 권력 독점, 사치, 부패도 있었고, 어린 나이의 황제들이 휘깍휘깍 죽어나가 권위가 약화된 것도 원인이 있었지만, 그런 풍조를 제 때에 정리하고 확립하지 못한 사마염의 잘못이 가장 크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비록 사마염은 할아버지 사마의와 아버지 사마소가 이뤄놓은 업적에 방점을 찍기만 했다는 평가를 많이 받지만, 나름 명군의 자질을 갖춘 인재였다. 99%를 이룩해도 마지막 1%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결국 실패라는 점에서, 전대의 과업을 완수하는 것으로도 충분한 능력이 있음을 입증한 것은 맞다. 그러나 성공한 뒤에 초심을 잃고 사람이 변질된다면, 결국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담으로 구품관인법에 대해서 말하자면, 중정이라는 기관을 통해 관직에 오를 사람을 평가하고 천거하는 방식이었기에 쉽게 카르텔 형성이 가능했고,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기보다는 중정의 비위를 맞추느라 굽신거리는 사람이 벼슬에 오르는 경우가 더 많았다. 결국 뜻 있고 능력있는 이들은 죽림칠현으로 대표되는 청류파가 되어 시골 산천에 은거하게 되었으니, 누군가의 추천에 의한 채용이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는 이렇듯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항상 우리는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성공한 뒤에도, 연애할 때도.
5. 스타트업 끝판왕, 명태조 홍무제 주원장
앞서 말한 진 문공은 그야말로 떠돌이 왕자였으며, 유방은 작은 동네의 이장이라도 해먹었고 동네 사람들이 두루 따르는지라 자기 세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유비도 알게모르게 황실의 종친이라는 부분에서 대의명분이나 도덕성 면에서 얻은 이득이 많다. 하지만 명태조 주원장만큼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거지에서 일국의 황제로까지 올라온 입지전적인 인물은 세계사를 찾아봐도 없다.
어떤 정도냐면, 주원장은 고아였고, 거지였다. 하다하다 먹고 살 수가 없어서 승려 생활을 했던 적도 있다. 심지어 명나라도 도적무리인 홍건적 세력을 바탕으로 세웠다.
원나라 말기에 나라가 슬슬 망조가 들고, 사람들이 온통 굶어죽어 일가친척 의지할 곳이 없자 홍건적에 가입하여 세력을 키웠고, 그렇게 슬금슬금 세력을 키워나가다 결국 중국 대륙을 통일까지 해버리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인품이 썩 훌륭하지는 않았는지 탁발승 생활을 할 때의 수치심이 평생 트라우마가 되어 대머리 독(禿)자를 쓰면 목이 날아갔다거나, 왕권 강화를 위한 숙청을 너무 해서 9만 명이 넘게 죽어나갔다거나 하는 일들이 있었지만, 백성들은 풍족하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었다며 온통 찬양하였다고 한다.
스타트업 업계에도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성공하는 이들이 있고, 더러는 호부 밑에 견자 없다는 말이 마냥 맞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이들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집안, 학벌, 재력과 같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하고 체득하는 것들임을 보여주는 완벽한 예시가 주원장이라고 할 수 있다. 파나소닉의 창립자 마츠시타 코노스케는 초졸이었고, 손정의는 재일교포라며 머리에 돌을 맞기도 했다. 잡스와 워즈니악은 별 볼일 없는 동네 청년들이었으며, 제프 베조스는 창고에서 아마존을 시작했다....다들 대머리인 걸 보면 역시 주원장은 옳았던 걸까. 여튼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얻어내는가가 아닐까 싶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자라나라 머리머리를 외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더팀스 #THETEAMS #역사로보는 #스타트업 #자라나라머리머리 #역사에서 #배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