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동안 인터넷에 모든 것을 바치면서 많은 것을 배워왔다.
4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챗봇, 비트코인, 인공지능, VR 등이 학문의 수준을 넘어 실제 상용화되려는 조짐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많은 스타트업과 기업들이 이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선행투자를 이어가고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변화가 실제 소비될 수 있는 기술이 되기 까지는 일정 부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20년에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맞을 것이냐에 대해서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지금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영역의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기술혁신은 매우 진보적으로 빠르게 이뤄지는데 반해 실제 소비자에게 적용되는 영역은 매우 보수적이고 느리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간의 생활을 극단적으로 바꾼 퍼스널 컴퓨터(PC)나 모바일 컴퓨팅(스마트폰)은 우리가 예측 가능한 수준에서 매우 느리게 이뤄져왔다. PC를 상용화 시킨 것은 우리가 늘 쓰던 장부를 디지털화한 Visicalc(액셀의 원형)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생각하고, 스마트폰은 우리가 늘 쓰던 '인터넷 브라우저'를 모바일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단순한 가치가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2010년 이후, 급속도로 수많은 모바일 기반의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들이 등장했지만, 2017년 지금도 오프라인에서 우리가 하던 일에 이동성(Mobility)을 부여하는 서비스들이 아직도 등장하고 있다. 7년이다. 모바일 컴퓨팅이 완전히 자리잡기 까지 걸린 기간이 6-7년이라고 본다면, 3년뒤 미래가 극단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미래학자들과 일부 진보적인 기술자들의 예언은 실현 불가능할 가능성이 크다.
모바일 컴퓨팅 환경은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이제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다운로드할 소프트웨어를 적극적으로 찾지도, 저장하지도 않는다. 애플, 구글 모두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고객의 채택(Adoption)은 극단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퍼스널컴퓨터(PC)가 만들어진 이후, 수많은 소프트웨어들이 탄생했지만, 결국 PC를 가장 많이 점유한 소프트웨어는 업무용 소프트웨어(오피스), 무료 메신저, 게임이다. 이게 기존 PC가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가치였다고 본다. 이후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들은 사용자들에게 과잉된 가치를 제공했기 때문에 큰 인기를 끌지 못하였다 보고, 그 이후 나온 것이 모바일 컴퓨팅 환경의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 또한 수많은 소프트웨어들이 탄생했지만 결국 모바일을 가장 많이 점유한 소프트웨어는 메모, 무료메신저, 소셜네트워크, 카메라, 게임, 생활밀착형 O2O 서비스다. 그리고 여기서 더이상의 혁신이 일어나기는 힘들어 보인다.
'혁신의 딜레마'에도 나오듯, 지금부터 탄생하는 데스크톱 소프트웨어, 모바일 기반 소프트웨어들은 사람들에게 과잉된 가치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럴 때, 기술혁신과 시장혁신이 가능해지는 타이밍이라고 하는데, 극적으로 동의한다.
그렇다면 이 혁신은 인공지능, VR 등 새로운 기술에서 탄생할까? 내 생각에는 기술혁신을 주도하는 것은 결국 하드웨어에 있다고 본다. 아무리 스타트업이 날고 긴다고 하여도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들어내는 기술적 흐름에 반하지 못했다. 지금의 세계적인 서비스들 대부분이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들어놓은 거대한 세상안에 구축한 작은 일부에 볼과하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3년 뒤 기술의 미래를 보려면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하드웨어 생산 계획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동시에 밀고 있고, 미래 컴퓨팅 환경을 선도하겠다며 경쟁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제품군이 무엇일까?
이러한 부분에 대해 특히 우리 IT직군의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제시하는 미래 컴퓨팅이라는 것이 나름 따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공지능이나 VR, 챗봇과 같은 뭔가 혁신적인 미래를 토대로 우리가 비즈니스를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그러나, 그들이 보고 있고 계속해서 제시하고 있는 미래는 간단하다.
바로 '터치형 디바이스'다. 터치형 패널의 가격이 급속도로 떨어지면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모두 터치가 가능한 컴퓨팅 환경에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다. 애플은 아이패드 프로를 필두로 새로운 컴퓨팅 환경을 열려고 하고 있는데,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에 더 나아가 데스크톱 OS 환경을 터치로 이용할 수 있는 '서피스'시리즈로 시장을 점유하려 하고 있다. ASUS와 같은 선도적인 업체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 OS 기반의 터치가 가능한 노트북을 출시하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27인치 대형 터치 디바이스인 '서피스 스튜디오'를 출시하기도 했다.
사실, 스마트폰이 터치가 된다고 하여 드라마틱하게 변화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스마트폰이 가진 화면크기의 제약 때문에 유저인터페이스 자체에 큰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블릿 크기 이상의 디바이스에서 터치가 가능해질 경우 양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 곳에 큰 기회가 있는 이유는 아직 12인치 이상 대형 디바이스에서 터치가 가능할 때, 최적화된 소프트웨어들이 많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스마트폰 사용자의 신규앱에 대한 Adoption은 매우 낮지만 아이패드 사용자의 신규앱 Adoption은 높다. 아직 개척되지 않은 컴퓨팅 환경에 대한 시장이 존재하는 셈이다.
나는 인공지능이나 VR과 같은 영역은 아직 학문적인 수준, 기업의 미래를 위한 선행투자 정도의 수준에서 수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기업에서 인공지능이나 VR과 같은 화두를 계속해서 던지고 스타트업들을 끌어들이고, 데이터를 끌어들이는 이유는 이 기간을 단축하기 위함이라고 본다. 결국, 아직은 소비자 레벨에서는 활용될 수 없는 영역이다.
앞서 내가 말한대로 PC를 가장 많이 점유한 소프트웨어는 업무용 소프트웨어(오피스), 무료 메신저, 게임이었다. 그럼, PC에 터치형 패널이 들어가면 양상이 어떻게 바뀔까? 이메일을 보내는데 풀 터치 디바이스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메신저 사용하는데 서피스 스튜디오와 같은 27인치 대형 터치디스플레이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리그오브레전드와 같은 게임에서 터치가 된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MS와 애플은 컴퓨팅 기술에 미묘한 변화를 불어넣었고, 그것이 터치형 UI/UX다. 아직 터치형 디바이스가 우리 삶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PC 초기의 Visicalc 나 스마트폰 초기의 모바일 웹 브라우저와 같은 킬러 소프트웨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미묘한 컴퓨팅 환경의 변화에 생각보다 큰 혁신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뭔가 사업계획을 말할 때도 인공지능이나 머신러닝, 데이터마이닝, VR, 블록체인 등을 언급하면 매우 혁신적이고 선도적인 미래를 선도한다고 생각하는 데 반해, 이런 터치형 디바이스가 새로운 컴퓨팅의 미래라고 규정하는 것은 다소 따분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소비자 기술은 이제까지의 역사를 봤을 때 매우 보수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에 앞으로 그 기조가 극적으로 바뀔 것이라 보지는 않는다.
우리가 기술업계에 있기 때문에 미묘한 변화를 매우 둔감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때로는 아주 작은 것이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우리는 이런 미묘한 변화에 예민한 촉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마우스'라는 작은 디바이스가 우리의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 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컴퓨터 전면에 달린 카메라 하나가 우리의 업무환경을 어떻게 바꿨는지, 스마트폰 후면에 달린 카메라 하나가 세상을 어떻게 바꿨는 지 말이다.
모두가 앨런머스크고 손정의일 필요는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