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Founder는 맥도널드 창업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아는 맥도널드는 실제 이름이 맥도널드라는 사람이 만들었는데 원래 본창업자는 순박하고 진정성 가득한 사람들이다. 오리지널 창업자들에게 밀크쉐이크 기계를 팔던 영업사원인 주인공, 그는 그들의 시스템에서 혁신을 느끼고 맥도널드를 프랜차이즈화 한다. 영화는 보는 내내 좀 불편하다. 누구의 편에서 이 영화를 보느냐에 따라 창업자라면 참 여러가지를 배우고 생각하게 만든다.
- (오리지널 사업자의 입장에선) 계약서를 잘 쓸 것, 구두 계약은 믿지 말 것
- (주인공 입장에선) 주변에 다른 관점으로 사업을 바라보는 사람을 둘 것 또한 그런 사람의 의견을 적극 받아들일 것
- (조연들의 입장에선) 초기 창업자의 비서를 할 것
등등등...
이야기가 옆으로 잠시 삐딱선을 탔는데 오늘 쓰려고 하는 이야기는 영화 Founder의 이야기가 아니다. Founder를 보며 B2B 영업에 대한 생각을 조금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 배경 1954년, 주인공 레이 크록은 미국 지도를 펴놓고 밀크쉐이크 기계를 팔러 차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닌다.
겁나 무거워 보이는 저 구식 밀크쉐이크 기계를 들고 밀크쉐이크를 만들법한 레스토랑마다 문을 두두리며 사람들에게 기계를 세일즈 한다. 사장님에게 입 발린 칭찬을 하고 와이프에게는 공중전화로 사업이 잘 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너스레를 떤다. 숙소에 들어가서는 '긍정과 동기부여'를 강의하는 레코드를 들으며 잠을 청한다. (생각해보니 레코드판은 음악만 듣는 것이 아니었네... 꽤 문화 충격적 장면)
중간에 공중전화가 있는 곳에 가서 비서에게 전화를 하며 따로 주문이 들어온 게 있는지, 특별한 소식은 없는지 물어본다. 비서가 전해온 놀라운 소식. 00 매장에서 밀크쉐이크 기계를 6대 주문하겠다고 연락이 왔다고. 그는 주문이 잘못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매장에 전화를 하는데, 그들은 6대가 아니라 8대라고 다시 정정해서 말을 한다. 결국 그는 차를 타고 먼 길을 떠나 맥도널드를 창업한 창업자들을 만난다.
영화를 보며 이 시절에는 대체 영업을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도 없어서 매번 비서에게 전화를 해서 실제 주문이 들어왔거나 문의가 들어온 것들이 무엇이 있느냐고 묻고, 큰 미국 지도를 놓고 지도를 보며 미국 일주를 한다. 이메일도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대의 영업은 정말 쌩짜 그대로 개고생인 영업이었다. 이전에 썼던 영화 히든 피겨스의 평처럼 맥도널드식 확장 방법 또한 그 시절엔 혁신이었다.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맥도널드식 프랜차이즈업의 특성상 이런 비즈니스 모델을 은행의 론 담당자에게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부분은 스타트업이 다른 관점으로 만든 서비스/제품을 세일즈 하는 것과 매우 닮아 있었다. 이 부분에서 엄청난 핵공감이.
나의 커리어의 대부분은 교육 프로그램을 영업하는 것이었다. 주로 대학에 가서 국가의 자금과 학교 자체의 자금이 예산으로 잡혀있는 곳에 가서 보이지 않는 무형의 교육 프로그램을 세일즈 했다. 교육 프로그램은 완성되어 있는 물건과는 매우 달라서 들어가는 강사와 수업을 듣는 사람들의 특성에 따라 같은 교육 프로그램의 평가가 천차만별인 경우가 많았다. 많게는 수십억을 써야 하는 대학교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1년을 믿고 맡길 업체들이 중요했고 영업자 또한 담당자들에게 내가 들고 온 프로그램이 다른 업체와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현장에서 실제 사람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설득했다. B2B 영업이라는 게 한 번 설득이 되고 성과가 나면 보통 6개월에서 1년이 지나면 쉬워진다. 대학의 경우도 취업지원센터의 담당자들끼리 협의회가 있고 주로 이 곳에서 타 업체의 성과가 좋은 프로그램들을 서로 추천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지난 10년간 정부의 정책을 살펴보고 (정권이 바뀌면 취업/교육 분야의 굵직한 자금과 키워드, 그리고 각 부처별 정책 예산이 어떻게 내려오는지 자료를 찾고 대학 중에 이런 자금들을 받은 리스트업을 하여 트렌드에 맞는 교육을 제안해야 한다.) 전국 400개의 대학 중 자금이 있는, 내가 가진 프로그램과 맞는 대학을 방문해 대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컨설팅하고 운영했던 것이 나의 주업이었다. 단언컨데 교육 영업은 꽤 빡세다. 다시 하라고 하면 이젠 못 하겠다고 할 만큼 아주 고된 기간이었다. 1년에 4-5만 키로를 자차로 운전하고 전국을 누볐던 시간과 술 자리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영업은 내 영혼을 잠시 팔며 했던 꽤나 고역스러운 시간이었다. 고속도로 갓길에서 테더링으로 노트북 연결해서 견적 보내본 사람 손! ㅋㅋㅋ
지난 10간 영업은 노력한 만큼 돌아온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꽤 잘했었다. 그러다 이런 오프라인 분야에서의 영업 방식 (여전히 술자리 영업이 아주 많다.)에 염증을 느끼고 edtech 스타트업으로 왔다. 나의 명함에는 Sales를 맡고 있는 실무 영역이 떡! 하니 쓰여있다. IR을 하거나 Demoday를 할 때도 B2B 영업은 자신 있다고 나름 호언장담을 하며 다녔다.
스타트업의 경우에도 스케일업을 하려면 B2C만으로는 부족하다. 매달 예측할 수 없는 마케팅보다 한 번 계약을 하면 장기간으로 가는 그런 고정 매출이 필요하다. 식구가 늘고 비용이 늘면 B2B의 계약들은 6개월, 1년을 예측하고 조직원들에게 안정감을 주어 혁신을 도모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상품이 론칭된 지 이미 9개월이 지났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영업을 하다 보니 꽤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이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상품 론칭 후 6개월간 그간 가지고 있던 명함 1,000여 장의 메일로 모두에게 새로운 회사의 이직과 튜터링을 열심히 홍보하는 글을 써서 보냈었다. 아는 대학교마다 다니며 강의도 해드리고 체험권도 뿌리고 홍보도 열심히 했다.
아쉽게도 기대했던 것만큼성과가 잘 나지 않았다. 현재 튜터링을 사용하고 있는 굵직한 B2B 고객 중 올 초 계약을 진행한 헌법재판소, 전파진흥협회의 경우 고객으로 써보다가 계약을 하시거나 신문의 기사를 보고 연락하신 케이스다. 헤드헌터, 기업의 인사 담당자, 대학의 취업센터, 공무원, 기업의 복지몰 등 영어/교육과의 접점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번번이 70-80%까지 가다가 끝을 맺을 수 없었다. 결국 내가 나가서 계약한 B2B는 1도 없다. ㅠㅠ 좌절.
(그들이 보기에 우리는) 너무 혁신적이어서 문제였다.
교육이건 뭐 건간 B2B에서 구매를 담당하여 의사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혁신적이지 않다. 종종 기관의 경우 구매팀/총무팀에서 최저가 입찰로 교육 입찰을 하기도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제조업의 물건을 파는 것과 유사하기도 하다. 교육의 경우 이것이 단시간의 교육을 통해서 결과물이 확실히 측정되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혁신보다는 안정을 선택하고 괜히 무엇인가를 변경해서 문제가 발생할 것 같으면 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조직 내에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가 교육과 연결되지 않는 이상 특별히 과거의 것들을 유지하지 바꾸지 않는다.
혁신을 외치는 스타트업의 경우 자금이 있는 큰 기업과의 B2B를 할 때 겪는 어려움은 이 포인트에서 나온다. 스타트업은 혁신을 이야기하고 자금이 있어 이미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스타트업을 만나는 기업들의 담당자는 그간 본인들이 유지해온 문화 안에서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해있다. 설령 담당자를 설득해서 올라가더라도 무엇인가 혁신을 외치고 있는 이 생소한 서비스/제품을 50-60대의 의사 결정자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 스타트업의 경우 젊은 창업자들이 진행하다 보니 아무래도 20-30대 타깃에 맞춘 서비스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10년 차이만 해도 소비하는 미디어와 제품이 다른 상황에서 의사 결정자의 세대 차이는 정말 큰 걸림돌 중 하나다.
혁신가들이 뚫어놓은 시장이 일반 대중에게 가려면 3-5년이 걸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소수의 얼리 어답터들이 경험한 것들이 대중에게 가고 그것이 기관의 담당자까지 들어가기 위해선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실제 한 대학의 교수님은 우리 앱을 '미래에서 온 앱'으로 표현하셨다. 즉, 계약 못한다는 의미. 실제 20대에서 60대까지의 연령대를 커버해야하는 기업에서 (그 쪼그만 화면인) 스마트폰으로 공부를 한다는 것은 특정 연령대에는 꽤나 힘든 일이다.
스타트업들이 스타트업 내에서만 유명하다는 말은 결국 혁신가들끼리 모여있기 때문에 생긴 일이기도 하다. 너도 혁신, 나도 혁신이니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속도나 태도가 일반 기업과는 다를 수뿐이 없다. 이 커뮤니티 안에서 성공의 감을 믿고 밖으로 나가면 힘들다. 모든 기업이 혁신을 외치지만 정말로 빠르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기업들은 참 드물다. 회의를 해보면 스타트업 업계에서 유명한 액셀러레이터에 있었다거나 데모데이에 나가 상을 받았다는 것은 그다지 큰 메리트가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기껏 자랑 열심히 했는데, 그래서 작년 매출은 얼마 정도 납니까 라고 물으면 힘이 쭉 빠진다. 그들이 보기엔 스타트업인 우리 기업은 중소기업 중 하나일 뿐이다.
'온디맨드 1:1 모바일 과외 서비스'라는 튜터링의 설명은 십수 년간 전화 영어나 오프라인으로 강의를 해왔던 기업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생소한 설명이다. 생긴 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은 기업을 믿어야 할지 중간에 망할지를 걱정하는 담당자 앞에서 가끔은 '혁신'이라는 단어가 무력해짐을 느낀다. 미팅을 나갔다가 회사에 들어오면 미팅에서 요청하는 사항이나 고민을 회사에 전달하기에 주저주저할 때가 있다. 조직원들에게 요구하는 사항들이 혁신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속도가 생명이라는 스타트업의 입장에선 누군가에게 행정 보고를 하고 관리를 하는 툴을 만드느라 인력/시간을 할애해달라고 하는 것은 조직원들에게 설명하기 참 어려운 일이다. 혁신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안정빵 B2B계약을 할 것이냐. 아님 우리의 속도대로 그냥 쭉쭉 나갈 것이냐.
누군가의 pain point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창업. 페르소나를 열심히 분석해서 고객들을 찾고 있지만 B2B 영업으로 가면 이런 페르소나 분석은 허망해진다. 기업 안에는 각기 다른 페르소나를 가진 사람들이 가득하고 이들을 대표하여 keyman들을 설득하여 구태의연하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과거의 형식과 절차를 따라야 그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그간 내가 경험한 오프라인 교육 세일즈와는 너무도 다른 점들이 많다. 매달 추가되는 기능들로 몇 개월 전의 제안서와 소개서는 유효하지 않다. 내년에 어떤 사업으로 변화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2018년에 시작되는 입찰을 이야기하고 있노라면 조바심이 나기까지 하다. B2B를 대상으로 영업을 전개하고 자리를 잡기 시작한 창업진과 담당자들은 그 어떤 영업 담당자보다도 더 고되고 어려운 길을 겪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각기 다른 쪽의 상황을 이해하고 조율하고 비즈니스까지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간 들었던 B2B 관련 교육들, 노하우들도 스타트업 기업들이 늘어남에 따라 많은 변화가 생길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던 기존 관념들도 혁신과 현실 사이에서 밸런스를 잡아 어딘가에 가치 기준을 두고 양쪽의 비즈니스 간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지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스타트업에서 B2B영업자가 갖추어야할 자질이 뭐냐고 묻는다면 3년 전의 언어로 내 상품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고생하고 있는 많은 스타트업의 B2B영업자님들 화이팅! 조만간 2편에서 성공 노하우를 쓸 수 있도록 희망해봅니다. 다 같이 스타트업 B2B 얼라이언스 모임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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