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So tell me about this start up you’re involved with.
Q: 이 스타트업 대해서 얘기 좀 해주시겠어요?
A: It’s an attractive business, for sure. To put it simply, it’s about connecting people to people, offering them a reliable and convenient marketplace to meet and transact.
A: 확실히 매력적인 비즈니스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개인과 개인들이 안정적이고 편리한 환경 안에서 거래를 할 수 있게끔 한다는 것 입니다.
Q: Connecting people to people...tell me more about that.
Q: 개인과 개인이라...조금 더 얘기해주시겠어요?
A: The key is to maintain that true spirit of peer to peer, without the presence of full-fledged businesses. With businesses, what ends up happening is that they make it hard for the individual to have a true presence in the marketplace. Nothing against businesses, they just do not belong within our stratosphere.
A.음, 제일 중요한 것은 사업자들을 제외한 개인과 개인의 성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업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개인들은 마켓플레이스에서 제대로 자리잡기 힘들어진다는 것은 너무나도 뚜렷한 사실이죠. 사업자들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단지 우리의 공간에서는 적절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Q: Great, thanks. So what drives you? What made you get involved? Honestly, nothing in your background suggests this path you’ve taken.
Q: 네, 감사합니다. 그럼 이 사업은 무엇 때문에 합니까? 무엇이 핵심 요인이였습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본인 배경상 전혀 예상치 못할 길을 선택하신 것 같은데…
A: I get this a lot. For me, the number one reason was the opportunity to work together with talented people, who happen to be my friends. We’ve already got the trust and with that background, it’s about the creativity. What kind of problems do people face when trying to do business with other people? How can we best solve those problems? I’ve been trained as a lawyer, so it’s second nature to question assumptions and nitpick. It’s annoying as hell sometimes (ㅋㅋㅋ), but in the end we all get that finely tuned ideas are vital to our success. Others are better at big picture, forecasting, and so on. We actually annoy the hell out of each other but at the same time we all love each other. Well, at least I do. (ㅋㅋㅋ)
A: 이런 질문 많이 듣습니다. 제일 중요한 이유는 재능 있는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기회였죠. 그리고 이 사람들은 바로 저의 절친한 친구라는 사실…서로간의 신뢰는 기본적이었으니 이 바탕으로 우린 서로 편하게 할 말을 다하면서 C2C 거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풀어 나가려고 애씁니다. 전 변호사로서 주장의 전제를 의심하고 다시 한번 검토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좀 피곤한 스타일이긴 하죠. (ㅋㅋㅋ). 큰 그림을 보는 멤버, 기획에 뛰어난 멤버 등등 있는데 이런 다양성의 힘으로 우린 이 사업의 핵심 성공 요인이 될 유력한 아이디어들을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서로 짜증나게 하는 건 기본이지만 서로 너무나도 좋아합니다. 음…뭐 적어도 전 좋아하죠…(ㅋㅋㅋ).
Q: Okay, thanks. Looking over your resume, looks like you love baseball.
Q: 네, 그렇군요. 자, 여기 이력서를 보니 야구를 참으로 사랑하더군요.
A: Yeah I do. In fact, I like all sports that involve a bat, a ball, a glove and nine players on each team. But softball, not so much.
A: 네,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방망이, 공, 글러브 그리고 각 팀의 아홉 선수들이 활동하는 스포츠는 참으로 좋아합니다. 소프트볼 빼고요.
Q: Okay thanks for that. I get exactly what you mean. So you worked for a couple of MLB teams, Dodgers and Padres. And I see you’re with KBO Baseball Development Committee?
Q:……아, 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보니까 메이저 리그 LA다저스와 샌디에고 파드리스에서 일하셨던 경험 있으셨군요. 그리고 현재 Korean Baseball Organization 한국 야구발전실행위원회에 소속 돼있군요.
A: Yeah, I guess you can call me a baseball nut. With the Dodgers, I worked in the Public Relations office and worked with the Korean baseball writers, who had for the first time come en masse to the to cover Chan Ho Park. Ah, I remember those days. Baseball fever swept over Koreatown in L.A. and beyond, a prelude to the Korean baseball craze for the 2006 and 2009 World Baseball Classic and the 2008 Olympic gold medal. With the Padres, I was as an assistant to the senior management, working in the legal, baseball operations and marketing departments. This was 2005 and surprise, surprise, guess who followed me to the Padres.
A: 네, 야구광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죠. 다저스 홍보실에서는 박찬호가 한참 주목을 받을 때 처음으로 미국에 집단으로 온 한국기자들을 담당 맡아서 참으로 많은 인연을 맺었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시기였습니다. 그때 한국과 로스엔젤레스 한인타운에서 시작한 야구열기와 애국심이 퍼뜨려지는 현상이 바로 한국의 2006과 2009년 WBC 성공과 2008년 올림픽 금메달을 예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샌디에고 파드리스에서는 Senior Management Assistant으로서 법무, 마케팅 그리고 baseball operations 관련된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이건 2005년도이었고 놀랍게 그 어떤 선수가 저를 따라 파드리스에 합류하더라고요.
Q: Chan Ho Park?
Q: 박찬호 선수?
A: Yup.
A: 네.
Q: He didn’t follow you there.
Q: 그는 당신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A: That’s what you think.
A: 그건 당신의 의견이고요.
Q: Okay, thanks for that. Anyways, so you’re Korean American? So tell me about that. Growing up in the U.S. and moving to.
Q: ……네, 알겠습니다. 어쨌든, 교포로서 미국에서 자란 경험 또는 한국으로 온 계기가 궁금하네요.
A: Moved to the when I was seven or so. It was tough times for my parents, but as a kid, I didn’t know that because I had food to eat and a bed to sleep in. I didn’t really make too much of the fact that on the weekends, my sister, brother and I would wake up at about five a.m. in the morning to accompany our parents to the local swap meet where they sold luggage and shoes. Not everyone might be familiar with what selling at a swap meet might entail, so I’ll explain a little bit. Our garage at home was the storage space for the business. We’d wake up at 5 a.m. on weekends to help pack the van with the items we were going to sell that day. There was a fee to rent a space for that day and once we were done unloading, the selling began. I have a distinct image of my fearless father -- shirt and pants rolled up, unevenly but severely tanned and a wad of cash in hand, yelling “Barato, barato!” (cheap in Spanish) as the shoppers passed by. Every once in a while, my siblings and I would help (mostly packing and unloading) but mostly we sat in the van playing hand-held Pac Man and Donkey Kong video games. Another thing I remember is that my parents decided, at one point, to sell Michael Jackson pins too, which were all the rage back then, believe it or not.
A: 미국으로 건너간 건 제가 여덟 살 때였습니다. 부모님들한테는 너무나도 힘든 시기였지만 저와 제 동생들은 배고프지 않고 잘 때는 있어서 별 다른 어려움을 못 느꼈습니다. 주말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부모님과 함께 swap meet에서 신발과 가방 장사 나가기도 했습니다. Swap meet이라는 개념이 뭔지 자세히 설명 할 필요가 있겠군요. 우리 집 차고는 가방과 신발로 항상 꽉 차 있었고 주말이 되면 새벽5시에 모두 일어나 밴에 물건을 가득 채우고 집을 나섰습니다. Swap meet에 도착하면 자리 대여료를 선불하고 입장한 후 물건을 내리고 나서 진정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나날들 보내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 아버지의 기운찬 모습이었죠. 손엔 돈 쥐시고 소매와 바지 걷어붙여서 햇볕에 심하게 태운 팔 다리가 노출된 상태로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바라또, 바라또”를 (스페인어로 싸다) 외치셨죠. 짐 채울 때나 내릴 때는 조금씩 도움을 줬지만 대부분 저와 동생들은 밴 안에서 Pac-Man이나 Donkey Kong 오락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가지 더 생각 나는게 있군요. 한 때는 마이클 잭슨 뱃지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믿기지 않지만 그때 한참 유행이었죠.
Q: How’s your Korean?
Q: 한국말 실력은 어떠신지?
A: During the summers in elementary school, my mom somehow had textbooks sent over from for my siblings and me to read and copy. I would literally sit there in my room for hours on end on a scorching summer day in, copying a chapter about the Korean steel industry. No idea what half of it meant, but still I learned something about spelling and sentence structure. It was dreadful, I admit -- downright torture for a 5th grader, but if not for that, I would have been completely helpless in Korean. As it stands, I’m only slightly helpless. Nah, that’s not true. I absolutely have no problems getting along in day-to-day life here in Korea, but sometimes the appropriate word escapes me or I will just catch about 80% of what the person is saying to me. And when I argue or get excited, I tend to fumble my words.
A: 초등학교 여름방학이 생각 나는데요 어머니가 한국에서 국어, 사회 교과서를 구하셔서 저와 동생들한테 숙제를 내주셨습니다. 무조건 베껴라. 뜨거운 L.A. 여름날에 몇 시간 동안 방에 갇혀 앉아서 예를 들면 한국 철강 산업에 대한 내용을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베낀다는 것은 5학년 아이에겐 최고의 고문이었죠.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래도 철자법이나 언어 구조에 대해서는 많이 배웠습니다. 그런 식으로라도 안 배웠다면 한국말을 전혀 못 했을 듯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한국말은 어느 정도 하죠. 음,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상생활에서는 큰 불편 없이 살아가고 있는데 그래도 가끔 적절한 단어를 모를 때가 있고 수준 높은 대화 나눌때는 의사소통이 70-80% 까지만 이를 때가 있습니다. 흥분할 때나 다툴 때는 말을 더듬거리는 경향은 있죠.
Q: I see that a lot of your early life shaped who you are.
Q: 어린 시절의 경험들이 많은 영향을 줬군요.
A: True, plus it’s much more fun to talk about. Anything else?
A: 네, 맞습니다. 그리고 얘기하기 훨씬 더 재미 있거든요. 뭐 다른 것은 없나요?
Q: I think we’re good. Thanks, look forward to reading the blog.
Q: 네. 감사합니다. 블로그가 기대되네요.
A: Welcome. I look forward to blogging, along with my partners.
A: 네네. 저도 파트너들과 함께 블로그 운영을 하게 되는것을 매우 흥미롭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