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펀딩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MBA에서 VC수업을 들을 때에는, 펀딩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기 보다는, SEED, Series A-B-C 등 각 라운드 별 특징과 Valuation 방법론에 집중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하고 펀딩을 받아보면서 펀딩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링글팀만의 기준도 정립해 볼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Early Stage 투자와 관련하여 링글팀의 원칙은 크게 4가지였다.
1. 필요한 돈 대비 80% 정도만 받는다.
2. 우리보다 꿈이 큰 투자자에게 돈을 받는다.
3. 우리의 부족한 면을 채워줄 수 있는 투자자에게 돈을 받는다.
4. 링글팀을 믿어주시고, 존경할만한 인성을 갖춘 분들에게 투자를 받는다.
1. 필요한 돈 대비 80% 만 받는다.
사실 받을 수 있을 때 많이 받는 것도 전략일 수 있다. 그러면 필요할 때 투자를 과감하게 할 수 있고, 핵심인재가 나타났을 때 과감하게 영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처음에는 다소 부족하게 받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서비스 퀄리티가 어느 정도 올라오기 전까지 그리고 Product-Market-Fit을 명확히 찾기 전까지는 고객분이 쓸 만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에 팀의 역량을 95% 집중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쓸만한 서비스는 돈을 쓴다고 개발되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쓰고 발품을 팔아야 한다 (고객을 계속 찾아다니며 만나고, 피드백을 경청하며 고객분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서비스 개발에 집중)고 생각했는데, 발품을 팔고 지능을 쓴다는 관점에서 자원의 제약이 있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자원이 많으면 우선 돈을 쓰고 사람을 뽑는데, 자원이 부족하면 중요한 일에만 집중하고 머리를 쓴다’는 것이 개인적인 신념이다.)
그리고 초창기 팀원 개인의 역량의 성장과, 그들의 팀웍이 발동되기 전까지는 인력을 확대하기보다 초기 멤버가 각자의 한계를 뛰어넘고 역량을 끌어올리는 편이 장기적으로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소 가난하더라도 있는 자원으로 최대한 버티고, 있는 사람으로 고객분들이 쓸 만한 서비스를 결국 만들어 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단, 어느 정도 쓸 만한 서비스를 개발했을 때 (즉 서비스 퀄리티만으로 고객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고, 고객 추천까지 유도할 수 있을 정도의 서비스를 만들었을 때)에는 과감한 마케팅 및 더 빠른 속도의 서비스 개발과 퀀텀 점프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받아보는 편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링글은 상대적으로 가난하게 버텨나가면서 서비스에만 집중하는 법과 팀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법을 배워나간 것 같다. 그런 근성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큰 힘을 발휘하리라 믿는다.
2. 우리보다 꿈이 큰 투자자에게 투자를 받는다.
투자자의 꿈이 스타트업 팀보다 클 때에는 매우 본질적인 챌린지를 받게 된다.
“고객분들에게 더 드릴 수 있는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여기서 멈추지 말고, 이 정도까지는 만들어 봐야 되는 것이 아닐까요? 길게 보며 기술 개발에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요? 고객 분들의 패인 포인트(pain points)가 과연 해결되었을까요? 링글팀의 비전에 부합하는 정도의 서비스 퀄리티일까요?”
투자자의 꿈이 스타트업팀 보다 작을 때에는 비즈니스적 챌린지를 받게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초창기 스타트업임을 이해하긴 하지만, 시장은 어느 정도로 보세요? 그래서 수익은 언제쯤 어떻게 창출할 생각인가요? 우리가 경쟁사를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올해는 어느 정도 수익을 예상하세요?”
스타트업 팀 대비 고객을 더 많이 생각하고 꿈이 더 큰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는 것은 의미있는 성장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밑거름이라 생각한다. 동시에 그들로부터 받는 챌린지는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서비스를 더 빠르게 성장시킴과 동시에 팀이 업의 판도를 변화시키고 고객의 삶을 뒤바꿀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게 만드는 촉매제라 생각한다.
3. 우리의 부족한 면을 채워줄 수 있는 투자자에게 투자를 받는다.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면, ‘사람은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팀 역시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 특히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이 모인 초창기 스타트업은 사업 초반 많은 실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초창기 팀이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말 중요한 일들에 고도의 집중을 해야 한다. 동시에 치명적인 실수도 하지 않아야 한다. 경험이 없는 부족한 팀이 소수의 일에 고도의 집중을 하면서 전반적으로 큰 실수 없이 운영하는 것 (예: 계약서 잘 쓰기, 세금 잘 내기, 약관 정리 잘하기, 디테일한 부분까지 디자인 신경쓰기 등등)은 너무 어렵고,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팀의 실수를 미리 발견해주며 커버해 줄 수 있고 팀의 부족한 핵심역량을 보완해 줄 수 있는 투자자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이는 스타트업 팀에겐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링글이 투자를 잘 받았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투자자분들께서 링글의 부족한 점을 시의적절히 보완해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삶의 고민 및 리더십의 고민이 있을 때 선배님의 입장에서 조언을 해주시는 분도 계시고, 사업의 진행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다, ‘이런 대화를 팀과 함께 나눠주시면 좋을텐데, 팀과 트레이닝 세션 한 번 진행해 주시면 안될까요?’ 라는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시는 분도 계시고, 고객분들을 모시고 진행하는 밋업에 방문해 주셔서 인사이트를 공유해 주시고, 고객분들께 링글의 가치를 더 잘 전파해주시는 분도 계신다. 그리고 직접적 투자자는 아니시지만 분기별로 만나주시며 시기별로 고민해야 하는 사항을 공유해주시는 분도 계시고, 찾아뵐 때마다 꼭 들어야 할 충고와 지적을 해주시며 자극을 주시는 분도 계시다.
그런 분들과의 미팅은, ‘압박’이라기 보다는 ‘자극’으로 다가온다. 팀은 완벽할 수 없지만, 고객분들께 만큼은 완벽에 가까운 서비스를 제공드리기 위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투자자를 만난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4. 팀을 믿어주시고, 존경할만한 인성을 갖춘 분께 투자를 받는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믿음을 느끼는 것’과, ‘의심/불안을 느끼는 것’은 정말 다르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으로부터 믿음을 느낄 때에는, 자유롭게 모든 고민을 털어놓게 된다. 반면, 의심/불안을 느낄 때에는 방어적으로 설득을 하게 된다.
물론, 회사가 커지고 펀딩 규모가 커졌을 때에는 많은 이해 관계자들의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기에 의심/불안에 대한 체계적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스타트업의 초창기에는 믿음과 피드백을 주는 투자자분의 자본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생각하되 고객만을 바라보며 버티고, 버티며 의미있는 서비스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레카!!”의 순간은 기대했던 것 대비 늦게 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 상대적 늦음을 기다려주고, 본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믿음을 주시되, 나태해졌을 때에는 따끔하게 지적해 줄 수 있는 투자자를 만나는 것은 팀의 그릇의 크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 생각한다.
위대한 서비스를 향한 순수한 열정을 가지신 분, 사람을 향한 존중의 리더십을 갖추신 분, 항상 우리 팀의 편에서 솔직한 피드백을 공유해 주시는 분 등등. 존경할 만한 인격을 갖춘 분과 파트너로서 사업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너무 든든한 일이다.
결론적으로 아직 나도 투자에 대해 모르는 것이 더 많지만 투자에 대한 지금까지의 생각은 팀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그 과정에서 조언과 충고와 피드백과 후원을 해줄 수 있는 투자팀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초창기 스타트업 입장에서 첫 투자의 기회가 왔을 때, 일단 받기 보다는 한 번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나 투자자의 제안은 초기 스타트업팀에게는 거절하기 어려운 유혹이기에, 매우 냉정하고 냉철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돈이 나에게 자유를 줄지, 아니면 압박을 줄지에 대해서. 이 돈이 나와 핏이 맞는지, 아니면 맞지 않는지에 대해서. 이 돈이 우리에게 가치를 원하는지, 아니면 조금 더 많은 돈을 원하는지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걸리는 것이 있으면, 나는 우선 다음 기회를 찾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투자는 최대한 안 받는 것이 좋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나는 누구의 투자를 받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문제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링글은 ‘정말 운이 좋게도’ 가장 이상적인 투자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우리가 잘 한 것은 별로 없었는데, 정말 운이 좋게도, 팀을 믿어주시는 분들의 투자를 받아서 아직까지 큰 꿈을 펼치며 도전하고 있다. 결국, 우리만 잘하면 된다.
링글(RINGLE) 이승훈 대표의 브런치 글(2018.03.01) 을 편집해 "모비인사이드"에서 에서 소개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