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수익, 경쟁, 포트폴리오
vs.
고객, 가치, 팀, 창조
1. Intro : 너무나 달랐던 컨설팅에서의 5년 vs. 스탠포드 MBA에서의 2년
컨설팅 다닐 때 온갖 분석은 다 해본 기억이 난다. 시장 한 판 그리기, 시장별 경쟁 점유율 분석하기, 수익구조 분석하기, 가치사슬 분석하기, 유통 판 분석하기, 고객 분석하기 등. 분석 결과를 그래프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라자냐(마리메꼬) 차트, 공급곡선을 보며 ‘너무 아름다운 그래프야’, 흐뭇한 미소를 짓던 순간들이 불현듯 스친다.
그런데 정작 경영을 배우는 MBA에선 위에서 나온 기법을 배운 기억이 굉장히 드물다. 스탠포드라는 공간의 특수성 때문도 있겠지만 MBA에서 매출 규모, 수익, 시장점유율 등의 컨셉을 응용해 수업을 들어본 적이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오히려 주로 배웠던 개념은, 최고의 제품/서비스 만들기, 최고의 팀 구축하기, 서비스를 통한 고객의 삶의 질 개선하기, 고객과 소통하기, 좋은 기업문화 만들기 등 이었다. 더 나아가선 일의 숭고함을 성찰하거나, 일과 삶의 관계를 돌아보는 자아실현 관련 수업들도 많았다.
너무 달랐던 ‘컨설팅에서의 5년 vs. MBA에서의 2년’의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2. 제조업(2차 산업)의 본질
생각해보면 컨설팅회사에 다닐 때 대부분 고객은 제조 기반 회사였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부터 조선업/철강업/자동차제조업/전자제조업 등 ‘제조업’으로 기적을 만들어내던 국가이기 때문이다.
제품은 공장 내 제품라인에서 만들어진다. 공장을 짓고 생산라인을 까는 일은 엄청난 자본이 드는 일이다. 동시에, 제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공장&제품라인의 수정이 필요한데, 해당 과정은 1) 공장 운영을 잠시 멈출 때 발생하는 기회비용, 2) 공장 설비 개선 시 드는 엄청난 비용 등으로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이에, 제조업의 경우에는 제품을 생산하기 전, 정밀한 사전 시장 조사를 통해 제품을 설계하고 판매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정말 중요했다.
그리고 제조업의 경우 일단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하면, 이 제품을 어떻게 마케팅하고 할인해 고객에게 판매할지가 정말 중요했다. 왜냐면, 일단 생산하고 있는 제품을 수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생산된 제품에 대한 마케팅-브랜딩-유통-판촉 등을 통해 판매를 극대화 해 나가고, 수익을 최적화 해 나가기 위한 전략에 모든 것을 집중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컨설팅에서 했던 분석은 제조업에 최적화된 분석들이었다.
3. IT/Mobile 서비스업(4차 산업)의 본질
그런데 내가 잠시 머물렀던 스탠포드는, 기술 기반 서비스들이 밀집된 공간이었다. 처음엔 인지하지 못했는데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꽤 많은 차이가 있었다.
우선 제품은 공장에서 만들어지지만, 서비스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다. 제품은 한 번 생산되기 시작하면 바꾸기 어렵지만, 서비스는 제조업 대비 업데이트하는 데에 큰 비용이나 시간이 들진 않는다.
제품은 초기에 많은 자본투자(공장설립, 재고관리, 운송 등)가 수반되어야 하지만 서비스는 소수의 사람이 모이면 시작할 수 있다.
제품은 판매&배송 이전에 고객과 대다수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하지만, 서비스는 앱이 깔리는 순간부터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되어 서비스 사용 동안 끊임없이 소통이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데이터가 발생해 계속 쌓여 나간다.
제품은 고객에게 한 번 판매하면 그 이후엔 AS 활동으로 넘어가지만, 서비스는 패치 업데이트 등을 통해 끊임없이 진화해야 한다.
제조업이 규모를 확대할 경우 생산단가를 절감해 비용을 낮추는 장점이 있다면, 서비스는 규모확대 시 그에 따른 데이터가 쌓이기 때문에 맞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서비스는 초기 시장규모 예측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서비스는 계속 진화해 나가기 때문이다. 얼마나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 나가는지에 따라 시장규모가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다.
그래서 서비스는 경쟁자 분석이 그렇게 중요하진 않다.
서비스가 망가지는 이유는 대부분 팀 내 문화가 무너져서, 팀 내 커뮤니케이션이 무뎌져서, 데이터/기술 기반으로 업그레이드를 이루지 못해서, 고객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해서이기 때문이다.
이에, 서비스는 브랜드 포지셔닝-마케팅이 그렇게 중요하진 않다. 제품 전략/서비스 전략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 이미 만들어진 서비스를 어떻게 포지셔닝하고 판매를 극대화할지 고민하는 것 보다 어떻게 더 빠르게 좋은 서비스로 진화할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비스는 포트폴리오 전략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서비스는 유저가 많아질수록,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데이터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진다.
이러한 무형자산을 얼마나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활용하여, 개개인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궁극의 솔루션을 제공하느냐가 중요하다.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제품 수를 늘려나가는 것 보다, 1개의 서비스일지언정 깊이감을 더해 품질을 궁극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서비스는 고객 서베이가 중요하지는 않다. 서비스가 제공되는 과정에서 실시간으로 너무 많은 상호작용이 고객과 서비스 사이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제품과 소비자의 상호작용은 설문조사 등 과정을 통해 주기적으로 진단해 나갈 필요가 있지만, 서비스와 소비자 간 상호작용은 실시간으로 발생하기에 설문조사 같은 인위적 행동이 필요하진 않다.
결국 서비스가 밀집된 스탠포드에서, 스타트업 관련 수업을 중심으로 듣다 보니, 제조업 시대에 주로 나왔던 경영 진단 개념들을 상대적으로 마주하지 못한 듯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제조업 중심의 사고에 익숙해진 친구들에게 미 서부에서 간접 체험한 ‘서비스업이 세상을 개척해나가는 방식’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4. 4차 산업 시대를 사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시대는 빠르게 기술-정보 산업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을 이끄는 3대 축 1)전기차, 2)Car Sharing, 3)무인차는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사가 아닌, 정보기술 개발사 구글, 애플, 테슬라, 우버 등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애플은 스마트폰 제조업보단 그들이 창조한 모바일 생태계를 통해 엄청난 가치를 평가 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현재까진 제조업/유통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제조업을 바탕으로 성장한 경제는 그 전통 때문에 서비스업으로 진화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변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가 온다. 가장 큰 시행착오는 서비스업의 본질을 제조업 관점에서 생각하는 데에서 오는 혼선이 아닐까 한다.
이에, 뒤처지지 않고 미래를 이끌기 위해서는, 새로운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고, 그 세상은 어떤 로직으로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배워나가야 한다.
참고로, 메가트렌드 분석은 아웃사이드-인 뷰로 보는 것이 아닌 인사이드-아웃 뷰로 봐야 한다. 세상이 이렇게 변해가고 있으니 우리도 이렇게 변해가야 한다는 것은 과거 시대의 생각이다. 우리가 이런 강점이 있고 세상을 이렇게 바꿔나가고 싶으므로, 우리는 앞으로 이런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현시대 서비스 기업들의 접근법 이다.
결론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는 서비스들을 우리의 관점이 아닌, 그들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제조업 관점이 아닌 서비스업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점이 내가 Ringle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가치 중 하나다.
서비스업의 관점에서 이 세상을 바꿔가고 있는 기업들을 조망하고, 실제로 변화하고 있는 현장에서 이를 체감하는 지식인들과 대화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한국에도 세상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서비스업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힘을 내재화 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
링글(RINGLE) 이승훈 대표의 브런치 글(2016.10.25) 을 편집해 "모비인사이드"에서 에서 소개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