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난 후, 가슴이 벅차올랐다. 업드림코리아 이지웅 대표였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한 번의 인생. 그는 그 시간을 하나님과 선한 사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각오 없이 가기 어려웠던 길에서 그는 다듬어졌고 단단해졌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청년이 되어 윤택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외침
“저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어요. 어렸을 땐, 신앙생활을 잘하다가 4, 5년 정도를 하나님을 떠나 살게 됐어요.” 방황하는 시간이 그에게 찾아왔다. 고등학생 때까지 믿음 생활을 잘 유지해오던 그가 대학생이 된 후,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과 담배를 접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것 같아요. 노는 것이 좋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 살고 있다는 것도 잊고 있었어요. 그러다 큰 사고를 당했어요. 교통사고로 인해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어요.”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삶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진지하게 지난날을 곱씹던 중,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인생은 한 번이니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여행을 가기로 했어요.” 많고 많은 나라 중 여행 목적지로 결정한 인도. 그는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다. “인도 여행에서 쓰레기를 주워 먹는 아이들을 보게 됐어요. 처음엔 단순히 돕고 싶다는 마음보다 분노가 더 컸어요.”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노가 아니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이들을 구해야 하는 그의 의지이자 내면의 외침이었다.
선택
한국의 많은 청년이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꿈꾼다. 매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수는 점점 증가하는 상황. 나방이 불을 보고 달려들 듯이 노량진 고시촌에는 수험생이 몰려든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이토록 인기가 많은 이유는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는 어땠을까? “저는 사범대를 졸업했고 원래 군인이 꿈이었어요. 이 시대 많은 청년처럼 누구보다 안정적인 삶을 소망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업드림코리아 대표가 되어 활동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어요. 지금 제가 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 보고 이 길을 걸어오게 됐고 후회는 없어요.”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젊은 나이에 창업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결정이었고 친구들 역시 그의 의견에 고개를 저었다. “사고 이후로 ‘내가 과연 오늘 죽으면 나는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떳떳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어요. 그분 앞에 섰을 때, 후회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는 뜻을 같이한 16명의 청년들과 업드림코리아를 설립했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캄보디아까지 뻗어 나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선 잘하라고 강요하시지 않아요. 그분이 원하시는 일을 감당하고 묵묵해 해내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세요. 저는 앞으로도 업드림코리아에서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이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