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일하는 방식에 주목하는 대기업들이 늘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 흐름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스타트업의 업무 방식이 비즈니스 성공 핵심 요소로 평가 받고 있기 때문이다. 코카콜라는 지난 2013년부터 ‘파운더즈’ 프로그램을 열어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방식을 체득한 기업가들과 협업하고 있다. 기업의 변화와 성장을 위한 방안을 스타트업들의 업무 방식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미국 전기 서비스 업체 제너럴일렉트릭(GE)도 스타트업의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방식을 적용한 프로그램 ‘패스트웍스’를 도입했다. 린 스타트업은 아이디어 발굴 후 최소 요건 제품 또는 서비스를 신속히 제작, 출시해 시장반응을 측정하는 것으로 스타트업에서 꾸준히 이용되고 있는 전략이다.
대기업의 체계적인 프로세스는 장점으로 꼽히지만 때로는 빠른 의사결정을 저해하고 혁신을 가로 막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수직적인 조직문화, 상명하복 식의 업무 진행도 구성원들의 새로운 아이디어, 도전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통해 변화를 꾀하고 있는 이유다. 이들이 주목하는 스타트업은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스타트업 다방에 1년 6개월째 몸 담으며 보고 느낀 점을 말해보고자 한다.
# ’님’으로 부르는 이유
<다방에서는 모두가 '님'으로 불린다>
면접 당일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면접관들이 주고 받던 호칭이었다. 당시 면접에는 홍보팀의 팀장과 팀원이 함께 했는데 자연스럽게 ‘님’이라고 부르는 모습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처음에는 회사의 C레벨 조차도 ‘님’으로 부르는 문화가 낯설어 ‘실장님’, ‘대표님’으로 부르기도 했다. 나와 같은 구성원들이 좀 있었는지, 얼마 후 경영지원팀에서 님 호칭문화를 독려하는 전체 메일을 보내왔다. 이후부터는 나도 누구든 꼭 ‘님’으로 부른다.
직급을 붙이지 않는 호칭은 다방 외에도 다양한 스타트업에서 실행하고 있다. ‘님’이나 영어이름을 부르는 곳에서부터 모든 직원들에게 반말을 사용하도록 하는 일부 스타트업도 있다. 이같은 직급 없는 호칭문화는 대기업의 기업문화에도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카카오에서는 임직원들이 서로를 영어 이름으로 부르고, 현대자동차에서는 직원 호칭을 매니저와 책임 매니저 2단계로 통합했다. 현대카드에 이어 신한카드는 올해 말부터 팀장 미만 직급 호칭을 ‘님’으로 통일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삼성, 기아차, SK, LG, 네이버, CJ 등이 직급 파괴를 통해 임직원의 사고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기업에서 직급 호칭을 없애는 것은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사원, 대리 등 주니어들도 책임과 오너십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일을 실행하라는 취지도 담겨 있다. 대기업의 피라미드 조직 안에서 주니어들은 본인이 자율적으로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서는 주니어들도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어 일을 실행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다방에는 ‘회사가 만든 서비스’가 아닌, ‘내가, 우리가 만든 서비스’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하는 구성원들이 많다. 사실 이 같은 방식이 상명하복 식의 업무 보다는 진행 속도가 더딜 수도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그 의견을 수렴해 서비스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들과 다른 의견, 경험이 적은 구성원들의 의견까지도 귀 기울일 때 혁신적인 서비스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 구성원들 모두가 함께 나누는 회사의 비전
<10월 다락방 모습>
다방에서는 두 달에 한 번, 임직원들 모두가 대회의실에 모여 ‘다락방’을 연다. 많을 다(多), 즐거운 락(樂)을 붙여 만든 다락방은 구성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매번 다른 주제로 진행된다. 지난 10월 다락방에서는 회사의 향후 비전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다방에서 준비하고 있는 서비스와 사업 방향에 대해 각 팀의 장들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모두 이해하고 한 방향으로 힘을 모으기 위해서다.
또한 다방에는 다양한 TF팀이 구성돼 있다. 단기간에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에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팀의 구성원들이 모여 TF를 결성하게 되면 보다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힘을 모으기 때문에 업무 집중도도 향상된다. 원하면 누구나 TF를 만들고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다방만의 장점이다. 나는 올해 초부터 다방 브랜딩 TF에 참여하고 있다. 브랜딩 TF는 각 팀에 흩어져 있는 브랜딩에 대한 생각을 하나로 모아 같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만들게 됐다. 나는 브랜딩에 대해 더 배우고 싶어 TF에 지원하게 됐다. 이후 일주일에 한 번 브랜드마케팅팀, 디자인팀, 사업팀 등과 모여 다방 브랜딩을 함께 논의한다. 이외에도 다방에는 매물고도화TF, 데이터TF 등 다양한 TF가 있다.
# 놀이에서 시작되는 임직원들의 소통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즐기는 플리마켓>
사무공간이 구성원들과의 소통, 놀이공간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구글은 업무 공간을 변화시키기 위해 회의 공간과 개인 업무공간 간의 경계를 없애고 사무실을 하나의 놀이터처럼 설계했다. 구성원들의 창의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노력들은 구성원들에게 색다른 자극을 주고, 권태로워질 수 있는 업무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다방에서는 매달 다양한 사내행사를 진행하는데, 그중에서도 연말마다 사무실에서 진행하는 플리마켓이 가장 호응이 좋다. 구성원들은 회의실의 딱딱한 분위기가 아닌 활기 넘치는 플리마켓에서 서로 가격 흥정을 하며 얼굴을 마주친다. 특히 이번 행사는 주류 브랜드에서 도수 낮은 칵테일을 한 잔씩 제공해 분위기를 더욱 북돋았다. 마켓을 돌다가 한동안 얘기를 나누지 못한 동료를 만나면 라운지에서 수다를 즐기면 된다. 달달한 간식과 음료도 함께 제공됐다.
<사무실에서 즐기는 칵테일 한 잔>
12월에는 마니또 형식의 ‘오피스산타’가 진행될 예정이다. 추첨을 통해 마니또를 뽑고 일주일 동안 구성원들을 몰래 챙겨주면서 평소 얼굴을 익은데 이름은 잘 알지 못했던 동료들을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스타트업의 업무 방식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실제로 모 대기업은 스타트업처럼 업무 프로세스를 바꿨다가 기업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기존의 방식으로 다시 돌아가기도 했다. 본인에게 어떤 회사가 잘 맞는지 판단하는 것이 첫번 째 일 것이다. 수평적인 조직문화에서 본인의 업무를 주도적으로 하고자 하는 분, 타인의 의견도 가감 없이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는 분들에게는 스타트업을 적극 추천한다.
<참고자료: 전재권, LG경제연구원, 『대기업, 스타트업에서 혁신을 배운다』, 201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