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 인터뷰 – 첫 창업
설 연휴가 끝난 2월의 어느 날, 옐로모바일 사무실 내 까페인 '클럽옐로'의 한 미팅 룸에서 이상혁 대표를 마주했습니다. “나는 수줍은 사람입니다”라는 오프닝으로 시작된 옐로모바일의 공식 블로그. 그 첫 컨텐츠로 이 회사의 창업자인 이상혁 대표의 인터뷰를 싣기 위해서였습니다. 2시간여 동안 진행된 대담은 생각보다 흥미진진했습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이어진 대화였지만, 높고 낮은 굴곡이 있었고, 좌절과 희망이 보였습니다. 긴 대화를 마치고 나자 바로 떠오른 제목이 바로 “나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였습니다.완벽하기는커녕,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이 대표의 실패와 시행착오로 가득 찬 인생 이야기를 지금 여러분께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1. 창업은 상상도 못했던 대학생, 교수가 되고자 대학원에 갔으나 세미나 발표를 잘 못한다고 교수님이 세미나 중에 나가버리셨다?
2. 석사 졸업하고 처음 시작한 직장 생활, 일을 못 해 첫 인사고과 'D'의 충격
3.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 첫 창업, 처음엔 잘 나가는 듯 했으나 수년 뒤 회사 존폐 위기
4. 7년 만의 피벗 (Pivot) 결정, 통장 잔고 200만원의 순간 수십억 원대 투자 유치
5. 2년 후 마침내 이룬 흑자 전환, 그러나 근심 걱정은 이어지고
대표님 안녕하세요, 사내기자 Y입니다.
반갑습니다. Y라니, 뭔가 007 영화의 코드네임 같네요.
하하 그런가요? 실은 옐로모바일 (Yello Mobile)의 앞 글자이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왜(Why)”를 묻고 의미를 찾아보잔 뜻에서 지어본 이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인간 이상혁이 왜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되었는지를 파헤쳐보려고 합니다.
파헤치실 것 까지야… 조금 긴장되네요ㅎ
해치지 않습니다 그럼 과거로 돌아가서 시작을 해볼까 해요. 옐로모바일이 두 번째 창업으로 알고 있는데요, 학생 때부터 창업을 계획하셨나요?
전혀요. 전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며 나름 학점도 잘 받고 했지만,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감을 잡기 어려웠어요. 깊은 고민 끝에 내렸던 결론은, ‘어떤 것을 정리해서 남에게 설명하는 것에는 조금 자신이 있다,
하지만 큰 무리 앞에 나서는 것은 자신 없다, 그러니 교수가 되는 것에 도전해보자’ 였습니다.
교수요? 묘하게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한데요?
그런가요?
그 당시를 회고해보면, 인터넷이 처음 생기고 한창 홈페이지라는 것이 유행하던 때 였어요. 이 때 창업해서 인터넷과 게임 사업을 했던 동기들이 오늘날 대한민국 대표 IT 기업들을 이끌게 되었죠. 하지만 전 스스로가 창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오죽했으면 오프닝 에서 보셨듯이 제 이모님께서 기사를 보시고 “이 상혁이가 우리 상혁이냐”는 말씀을 하셨겠어요ㅎㅎ
아무튼, 교수가 되기 위해선 학위가 필요했고, 그래서 대학원에 가 마케팅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주마다 논문을 읽고, 교수님과 선배들 앞에서 세미나 발표를 하는 것이 진짜 고역이었어요. 스스로 발표를 못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매 번의 세미나는 제게 공포의 순간으로 다가왔죠. 심지어 제가 발표를 너무 못한다며 교수님께서 중간에 나가버리신 적도 있었어요. 그렇게 2년이 지나자 그래도 어딜 가서 발표 못한다는 얘기는 더 이상 듣지 않게 된 것 같아요.
당시 교수님께서도 지금의 대표님을 보시면 꽤나 놀라시겠어요ㅎㅎ 계속해서 박사 공부는 안 하셨나요?
당연히 박사 학위가 필요했고, 이왕 하는 것 미국 아이비리그에 도전해보고 싶단 생각이 있었어요. 하지만 미국 학교는 학비가 훨씬 비쌌고,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재정적으로 손을 벌릴 곳도 없었기 때문에, 학비 마련을 위해 직장 생활을 시작해야 했어요. 군 문제도 해결해야 했고요. 그래서 석사 졸업 후 삼성SDS 정보기술 연구소에서 3년간 근무하게 되었어요. 무려 개발 직군으로요.
개발이요? 경영학과에 마케팅 석사셨는데요?
그래서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어요. 물론 기본적인 개발은 배운 적이 있었지만, 서울대나 카이스트 전산과 출신 친구들 틈바구니에서 IT 개발 업무를 할 때의 자괴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죠. 처음 몇 달을 떠올리면 네 글자가 떠올라요. 월.급.루.팡.
월급루팡이라니... 웃프네요ㅜㅠ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첫 인사평가에서 D를 받았어요. D를 두 번 받으면 나가라는 소리라고 하더라고요. 큰 충격을 받고 ‘살아남아야 한다’라는 일념 하에 선배, 동기들을 괴롭혀가며 밤새 개발 공부에 매달렸어요. 그렇게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여전히 동기들보다는 못 했지만 그래도 월급루팡 신세는 모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음 고과에서 B를 받았거든요. :)
진땀 나는 6개월이었겠어요
정말 그랬죠. 실은 살면서 학업 등에 있어 한 번도 실패를 맛보거나 뒤쳐진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제 부족함을 마주했을 때의 충격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그 충격 가운데서 얻은 중요한 깨달음이 몇 가지 있었어요. 하나는, ‘내가 남보다 못할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내가 경험하지 못한 영역의 선배들, 능력자들과 경쟁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요. 거기서 이어진 두 번째 교훈은 ’이 세상에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 수많은 분들께 도움을 받으면서 그 동안 내 공부, 내 일만 신경 썼던 스스로가 많이 창피했어요. 세상은 서로 도우면서 성장하는 곳이라는 것을 체감하면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시기였죠.지금 이 자리를 빌어 그 당시 사수였던 류대선 선배님과 동기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네요ㅎㅎ
영상메시지라도…?
그런 건 부끄러워서 싫어요….ㅠㅠ네 알겠습니다ㅋㅋ 그럼 그 이후 박사 진학을 하셨나요?아니에요. IT 회사에서 팀원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새로운 재미를 느끼기도 했고, 당시 한메일, 네이버 같은 국민 서비스들을 보면서 새로운 도전에 눈을 뜨게 되었어요. 나도 창업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인터넷 경매 서비스 사업 계획서를 만들어 조언을 구하고자 KAIST 교수님을 찾아 뵈었다가 연구실 선배를 만났고, 그 때 함께 창업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믿고 신뢰하던 선배들과 창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떴고, 1998년 9월, 5명의 창업멤버 중 막내로 시작했던 회사가 디엠에스랩이었죠.교수에서 창업가라, 뭔가 급선회한 느낌인데요, 사업 아이템이 무엇이었나요? 게임? 인터넷 서비스?동기들이 인터넷이나 게임 관련 사업을 했을 때, 저희가 택했던 것은 SI (System Integration) 컨설팅이었어요. CRM 전략 컨설팅 및 관련 시스템 구축업무가 핵심이었죠. 명백히 보이는 시장을 공략하고자 했던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컨설팅이라… 그럼 주로 어떤 업무를 하셨나요? 개발? 영업?작은 벤처에 제대로 된 업무 정의가 어디 있겠어요. 제안서를 쓰고, 선배들 따라다니며 제안 발표를 하고, 영업을 통해 프로젝트가 수주되면 프로젝트 관리를 하고, 산출물을 만들어 결과 발표도 하고… 필요한 모든 업무에 함께했죠.지금까지의 경험과는 또 다른 종류의 일들이었을 것 같은데요?그렇긴 했지만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 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 함정이지만요. 막상 부딪혀 보니,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외람된 말씀이지만, 능력자 이미지와는 거리가 조금 멀었네요…하하하 맞아요. 선배들이 옆에 앉아 불러주는 것들을 파워포인트로 정리하며 제안서를 썼어요. 그리고 대기업 경영진 앞에서 발표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발표는 조금 한다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죠. 수준 자체가 달랐어요. 그렇게 발표를 잘 했다고 수주가 되는 것은 또 아니었어요. 계약을 성사시키기까지 고객사 실무자, 팀장, 경영진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며 확신을 주는 과정도 결코 만만치 않았죠. 프로젝트가 시작돼도 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늘어가는 새치에 한숨도 많이 쉬었던 것 같아요ㅎㅎ 이 과정을 7년 동안 계속했어요.7년씩이나요?네. 실은 그렇게 오래 할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많이 힘들기도 했고요. 그래도 제게는 엄청난 배움의 시간들이었어요. 생각하는 것을 말로 잘 풀어내고, 이를 다시 글로 잘 정리하는 것을 배웠고, 사람의 마음을 사는 영업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프로젝트 관리를 하면서 발생하는 수많은 이슈들을 어떻게 하면 잘 해결할 수 있는지 등등.그 정도 시간이면 사업이 많이 성장했겠어요.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그렇게 될 줄 알았어요. 근데 실상은 그렇지 못 했죠. 초기에는 연간 몇 억 원의 흑자가 났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경쟁이 치열해지고, 저가 수주 때문에 수익성이 떨어졌어요. 더 시간이 흐르니 고객사의 수요가 줄고, 심지어 우리 직원들이 고객사로 이직하면서 우리는 단순한 외주업체로 전락하게 되는 과정을 보았죠.엄청 심각한 상황으로 들리는데요?
맞아요. 이 때 깨달은 것이, 명함과 회사 홈페이지를 만들고 힘차게 시작한 사업을 유지하는 것이 정말 힘들다는 것이었어요. 사업을 통해 흑자를 내는 것도 힘들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더 힘들구나. 이래서 많은 비즈니스의 라이프사이클이 길지 않구나. 경쟁환경, 시장환경이 변하니 많은 회사들이 망하는구나…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답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피벗 (Pivot)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다른 기업을 위해 컨설팅 하는 것은 그만하고, 우리 사업을 하자고 말이에요.
7년 차에 피벗이요? 절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정말이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낮에는 기존 사업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돈을 벌고, 밤에는 신규 사업을 계획했어요. 하지만 신규 사업이라는 것이 밤에 짬을 내어 고민하고 준비한다고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결국 어느 날 기존 사업의 프로젝트 수주를 중단했어요. 회사 자금도 거의 바닥난 상태에서 말이죠. 당시 대표이사였던 현진석 대표님이 급여 만드느라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고생해주신 덕분에 저희는 신규 사업을 만들어가는데 집중할 수 있었어요.엄청난 결단이었네요. 그렇게 해서 신규 사업은 무사히 시작할 수 있었나요?결국 시작한 사업이 마이원카드라고, 지갑에 다수의 포인트카드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손쉽게 포인트를 적립해 주는 서비스였어요. 지금의 시럽과 유사한.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수십억 원의 투자 유치를 받아 회사가 기사회생할 수 있었죠. 투자 유치 직전 통장 잔고가 200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해요.드라마가 따로 없네요. 그래도 덕분에 새로운 도전의 장을 열 수 있었겠어요.그랬죠. 투자 유치 과정에서 대주주가 외부 주주로 바뀌었고, 어떻게 하다 보니 창업 멤버 막내였던 제가 대표이사가 되어 있었어요. 이 때 처음으로 ‘대표’라는 자리의 막중함을 깨달았던 것 같아요. 지분 3~4%의 대표이사였고, 중간 중간 좋은 이직 제안들도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고 더욱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죠. 제게는 젊음을 바친 사업이었고, 제 분신과도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2년 간의 적자가 이어지고 투자금을 거의 소진해갈 무렵, 마침내 흑자 전환에 성공할 수 있었어요.거의 10년 가까이 첫 사업을 하시면서 우여곡절이 많으셨을 텐데, 가장 크게 느낀 점이 있다면?하나를 꼽긴 어렵지만, 그래도 가장 크게 고생하고 깨달은 것이 있다면 바로 ‘사람’.
이룬 것이 많지 않은 작은 회사가 직원을 뽑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지금도 많은 중소 기업 대표님들께서 갖고 계신 고민이겠지만, 마치 제가 인터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를 당하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하나 하나 공들여 채용한 직원들이 어느 날 불쑥 찾아와 “우리 회사는 비전이 뭐에요?”라고 따지면서 묻거나, 회식 자리에서 불만을 토로하며 하소연할 때, 대표이사로서 대답이 참 궁색해서 정말 많이 미안했죠. 하지만 더 힘들었던 것은 정들었던 직원들이 하나 둘 대기업이나 다른 회사로 떠나가는 일이었어요. 축하할 일이었지만 한 편으로는 상처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서운함 보다는 그 친구들을 붙잡을 수 없는 회사라는 자괴감이 더 컸어요. 결혼하고 가정이 생긴 친구들에게 월급도 많이 올려주지 못했고, 복리후생도 변변치 못했으니까요.
이 때 배운 정말로 소중한 것은, 창업자는 멋진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비전이 비전으로만 끝나서는 절대 안되고, 무조건 사업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해야 함께 해준 소중한 직원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생기니까요. 시장 환경, 경쟁 환경을 탓할 수 있을 만큼 창업자의 책임은 가볍지 않더라고요.
어수룩했던 창업의 준비기부터 치열했던 10년간의 첫 창업 속 좌절과 성공까지, 이상혁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 Y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지만, 분량 조절을 위하여 이 이후 이어진 첫 사업의 매각, 인수 회사에서의 새로운 도전, 그리고 옐로모바일의 창업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짧지 않은 첫 이야기, 재미있게 읽히셨기를 바라며, 저는 다음 이야기로 찾아 뵙겠습니다. Y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