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 세계적인 스타트업 붐의 시대에 살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이 전 세계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한국도 이러한 스타트업 붐의 중심에 있다. 한국에서도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창업가들이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다만 좀 아쉬운 것은 한국의 스타트업이 서비스, 게임 등 일부 분야에 편중되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기술 중심의 스타트업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고 그중에서도 하드웨어 기반의 스타트업은 더욱 적은 편이다. 왜 이렇게 기술기반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적을까? 아이디어가 적어서? 아이디어의 부재는 스타트업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 아마도 어떠한 기반도 없는 스타트업이 넘어야 할 난제들이 서비스, 게임 등의 스타트업에 비해 기술기반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더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건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 이겠지만,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적은 한국에서는 그 장벽들이 더욱 높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싶다. 하지만 리스크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이다. 누구나 쉽게 들어올 수 없는 시장이라면 들어와서 성공한다면 더 큰 기회가 있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어떠한 문제가 앞에 펼쳐져 있는지 미리 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나의 경험에 기반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은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가 혁신적인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반도체를 만들어내는 Fabless 반도체 회사이다. 이러한 회사로 유명한 회사는 인텔, 퀄컴, ATI 같은 회사이다. 이 분야는 대표적인 High Risk & High Return의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술적 장벽이 높아서 한 번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을 하면 엄청난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업이긴 하지만 오랜 개발 시간과 많은 자본이 필요한 사업이다. 이런 회사들은 대개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반도체를 만들어낸다. 실리콘 밸리가 처음 생겼을 때 이러한 회사들이 실리콘 밸리를 키워왔고 지금도 실리콘 밸리에는 이러한 스타트업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시장에 진입해서 IPO를 가기도 하고 중간에 큰 반도체 회사에 M&A가 되기도 한다.
두 번째는 완성품 업체에 모듈을 납품하는 형태의 회사이다. 시장에 존재하는 원천기술 혹은 반도체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노하우와 기술을 가지고 모듈화 해서 다른 기업에 판매하는 회사이다. 이런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대기업에 모듈을 납품하는 것에 목숨을 건다. 고부가 가치의 사업은 아니지만 대기업 납품선을 잘 타게 되면 나름 안정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사업이다. 하지만 언제나 대기업의 내재화에 대한 위협과 단가 깎기로 인한 수익성 악화의 위협 요인을 가지고 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성장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세 번째 부류는 서비스 업체의 서비스를 위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부류이다. 주로 통신업체, 미디어 업체들을 위한 제품들을 개발한다. 이런 업체 중 대표적으로 성공한 스타트업은 미국에서는 Cisco이고 한국에서는 휴맥스 정도가 될 것 같다. 이러한 업체들의 경우 원천 기술을 가지고 시장의 표준을 만들어나가는 업체들도 있고 아니면 제조 경쟁력과 영업력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업체들이 있다. 대부분 단말기 (STB, 공유기)를 만드는 회사들은 후자에 가깝고 전자의 경우는 방송 및 통신 인프라 기기를 만드는 알카텔, Cisco 등이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시장의 표준을 선도하고 성장하였다. 한국에 있는 대개의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응용기술을 바탕으로 단말기 등을 사업자에게 납품하는 형태로 성장했다. 이러한 스타트업들은 대형 사업자를 잘 잡으면 갑자기 매출이 급신장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원천기술보다는 응용기술로 승부하는 업체들이다 보니 사업자에 휘둘리고 갑자기 매출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부류는 소비자 혹은 유저들이 직접 사용하는 완성품을 만드는 업체들이다. 완성품 형태로 제품이 나오기 때문에 소비자를 상대로 한 직접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치는 경우가 많고 최근에는 하드웨어 단독으로 출시하기 보다는 SW와 서비스가 결합된 형태로 제품을 출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부류의 스타트업들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는 모두가 잘 아는 애플이 있고 최근의 성공사례로는 액션 카메라의 원조 'GoPro', Wearable Fitness Band의 원조격인 'Fitbit'이 있다. 이러한 부류의 회사들은 브랜드를 구축하고 유통과 협력체제를 만들면서 직접 제품의 마케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직접 공장을 짓고 제조까지 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위탁 생산을 하는 공장들이 워낙 많이 있기 때문에 공장을 짓기보다는 EMS 형태로 제조를 아웃 소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부류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시장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소비자에게 공감을 얻어 낼 수 있는 혁신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 부류 중에서 일반 소비자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변화와 혁신의 모델을 만들어내는 혁신 기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앞에서 설명한 4가지 종류의 하드웨어 스타트업 중에서 내가 가진 경험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류는 마지막 부류이다. 난 삼성전자의 완성품 하드웨어 사업부인 VD (TV & Monitor) 사업부에서 소비자 대상의 완성품 하드웨어와 사업자 대상 하드웨어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많은 반도체 업체와 모듈업체를 Client 입장에서 만나보았다. 미국에서는 IPTV라는 아이템으로 STB와 HW 시스템을 업체와 같이 개발하고 납품받고 미디어 서비스 사업을 해보았다. 그리고 지금은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경영하면서 직간접적으로 4가지 부류의 하드웨어 스타트업들을 모두 경험해보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직접적인 경험이 가장 큰 분야는 마지막 부류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부류에 대해서만 앞으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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