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방문했던 메모리폼 매트리스 공장. 그간의 미팅에서는 항상 단가와 물량을 가지고 이야기 했기 때문에 사업자 등록증도 없는 우리는 큰 기대 없이 공장에 차를 대고 사장님을 기다렸다.
그간의 공장들은 밖에 코일을 가공한 스프링 내장재가 쌓여있는 풍경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이번 공장의 창고에는 다양한 종류의 메모리폼이 매트리스 크기로 재단되어 쌓여있었다. Youtube로 메모리폼 생산 과정을 여러번 공부했었는데 그때 영상에서 보이던 원재료 배합기나 발포기들도 창문 너머로 보였다. 이곳은 다르다. 소개해준 직원이 타준 믹스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초조하게 공장장님을 기다렸다.
회의실로 들어온 공장장님은 생각보다 젊고 세련된 느낌이었다. 평생을 실험실에서 보낸 과학자 같기도 하고 제약회사의 신약개발을 담당하는 연구원 느낌이랄까? "아니 어쩌다가 매트리스를 만들게 된거에요?" 우리의 사업보다 우리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해하셨다. 당황함은 궁금함이 되고 궁금함은 점점 호감으로 바뀌어 갔다.
"저는 대충 만들어서 반짝 팔아치우는 사람들이랑은 일안합니다. 내가 아무리 잘만들어줘도 결국은 자기들 마음대로 싸구려로 바꿔버리더라구요. 미국에서 제일 잘팔리는 메모리폼 매트리스. 그 회사도 제가 처음 시제품 부터 같이 만들었어요. 한국에서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저처럼 많이 만들어본 사람도 많이 팔아본 사람도 없을 겁니다. 오래 가려면 처음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되요. 대충 만들어서 한철 장사 할꺼면 사람 잘못 찾아왔어요."
믹스 커피도 마시고, 김치 찌게도 먹고, 짜장면도 먹고, 아메리카노도 마시면서. 공장장님과 우리는 점점 서로의 닮은 구석을 찾을 수 있었다. 내 기준을 만족 시키지 않으면 내보내지 않겠다는 고집. 긴 호흡으로 제대로 된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 결국은 제품이 좋아야 회사가 오래간다는 경험적인 확신. 그래 이 사람이다.
또 다시 부대찌게도 먹고, 추어탕도 먹고 유자차도 마시면서. 우리는 몇가지 약속을 했다. 외주 용역 계약서도 없는. 아 계약서가 있어도 그때는 찍을 법인 인감이 없었다. 아니 법인도 없었다. 그냥 젊은이 두명과 미국에서 매트리스로 큰 성공을 거둔 공장장님의 약속.
하나, 우리가 개발한 제품을 우리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써보기 전에는 최소한의 판매량을 유지 한다. 검증되지 않은 제품은 많이 파는 것도 Risk 니까.
둘, 그때 까지는 재고 없이 주문제작 방식으로 생산하고 다음달 25일에 결재한다. 무리한 재고 생산은 회사의 생존을 위협하니까.
셋, 출고 이전의 시제품 생산비는 공장이 부담하고 시제품에 대한 고객 피드백은 공장에 투명하게 공개한다.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파트너를 얻었고, 생존이 가능한 재무구조도 만들었다. 제품만 만들면 잘만들면 되겠네. 그때는 그게 쉬울줄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