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간만에 간장게장 만들어주겠다고 맘먹고 꽃게를 한 뭉터기 사와서 모래를 걷어내고 있는데, 자식놈이 들어와서 갑자기
"빨리 되지? 나 배고프니까 30분안에 해줘."
라고 하면 어떤 결과가 펼쳐질까요. 엄마의 손이 상완부와 부드러운 둔각을 이룬 채 빠르게 비행하며 나의 등짝에 아름다운 접점을 만들겠죠. 가속도와 질량의 곱으로 만들어진 힘F가 등짝에 열상과 부분골절, 피부괴사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제목을 좀 자극적으로 뽑긴 했지만, 클라이언트의 '금방 되죠?' 의 의미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시켜서 죄송해요...너무 어려운 건 아니죠?....라는 죄송과 민망의 의미가 있고.
2. 별 것도 아닌거 얼른 해라.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분명 의도는 다르지만, 둘 다 오해의 소지가 있긴 하죠. 지금 이 글은 클라이언트님들을 위해 쓰는 글이므로 이럴 땐 어떻게 얘기해야 하는지 간략하게 알아보도록 합시다. 요즘 제 글이 갈수록 길어지는 것 같아서 오늘부턴 스압없이 좀 짧게 줄이려고 합니다. :) 배려 오졌다.
상황을 하나 들어볼께요.
“이거 건물만 하나 얼른 만들어 주시면 돼요.”
“언제까지 수정해 드려야 해요?”
“지금 급하게 필요한 거라서… 한 시간 내로 될까요?”
아이소메트릭 디자인 중이예요. 그 3D처럼 노가다해서 만드는 보기에 그럴싸한 기똥찬 디자인방식이예요. 기존에 만들어 놓은 빌딩 이미지 말고, 좀 다른 형태의 빌딩 모양이 필요하다고 추가 제작 요청이 들어왔는데, 말미를 한 시간 주고 있는 거죠. 말은 단어와 뉘앙스로 이루어집니당. 커뮤니케이션은 이 둘의 조합에서 호불호가 갈리기 마련인데 이 대화를 자세히 뜯어보면 이러한 거죠.
이거=저기…
건물만=다른 것은 안 시킬 테니
하나=딱 하나만
얼른=얼른 끝나…겠죠?
만들어 주시면=부탁드려요
돼요=죄송
사실 이 말이었을 겁니다. 난 그렇게 믿고 싶어. 하지만 다른 의미였을 수도 있겠죠?
이거=그래 이거
건물만=~만 ‘단지 그것만’=다른 것은 안 시킬 테니
하나=두 개가 될 가능성도 있다.
얼른=쉬운 거 아니냐
만들어 주시면=한 시간 내로
돼요=줘라
이런 식으로 말이예요. 음, 사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일을 100% 이해하기란 어렵습니다. 뭘 해봤어야 알지. 설사 해봤더라도 그 사람의 사정과 내 사정은 분명 다를테니까요. 그래서 보통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요청하거나 지시할때는 팩트만 전달하는 게 좋습니다.
-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 그냥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일인데
- 마이너한 수정 사항이에요
- 몇 개만 바꾸면 돼요.
- 가벼운 수정 사항이에요.
이런 말은 내 의견이죠. 어려운 지 아닌지는 내가 안만들면 모를 일이예요. 간단한 지 복잡한 지도 마찬가지죠. 마이너한 수정사항이라고 하지만 사실 무조건 하나를 지우는게 마이너가 아니예요. 본문 하나를 통째로 들어내면 나머지 배치를 전부 바꿔야 하니 이건 마이너가 아니라 일을 벌리는 것과 같죠.
몇 개만.. 음 뭐 시키는 입장에선 몇 개뿐이겠지만 그 몇 개가 만들어내는 난장판을 고려해보면 단순히 그것만 띡 바꾼다고 될 일은 또 아니더라구요. 가볍고 무겁고도 만드는 사람이 결정할 부분이구요. 아래의 10가지 수정요청 예시를 보여드릴께요.
1. 왼쪽정렬을 가운데정렬로 바꾸기
2. 중간에 텍스트 하나를 통째로 날리기
3. 전체적인 색감 바꾸기
4. 상하좌우 여백 더 주기
5. 하단에 내용 추가하기
6. 없던 요소를 만들어 내기(특히 벡터 요소)
7. 텍스트 폰트 수정하기
8. 크기가 서로 다른 사진 위치 변경하기
9. 난데없이 그래프 추가하기
10. 전체적인 톤 수정하기
흔히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레이아웃을 건드는 작업들입니다. 시키는 사람은 '지워/옮겨/넣어' 와 같이 간단하게 던질 수 있지만 만드는 사람입장에선 오늘 밤도 뜨겁게 불태울 수 있는 액션스릴러물이 될 수도 있어요.
물론 일은 해야합니다. 그러니 밤을 새든 어렵든 쉽든 복잡하든 많든 적든 정당한 요청이면 하는 게 맞아요. 저런 요청을 하지 말란 소린 절대 아닙니다.
당연히 수정피드백이나 추가요청은 하셔야 해요. 단!
이런걸 요청할 때 뒤에 이상한 말을 덧붙이지 않는 걸로 손가락 걸고 약속복사코팅팩스공증!
그냥 간단하게 말하는게 좋아요.
"중앙에 회사소개문구를 왼쪽정렬로 맞춰주시고 위치도 왼쪽에 맞춰주세요. 언제까지 될까요?"
"음, 3시간 정도 필요해요."
"약간 아슬아슬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2시간 안엔 어려울까요?"
"해볼께요."
"감사합니다."
라고 깔끔하게 대화하시면 됩니다. 넘겨짓고 단정짓고 판단하는 건 꼭 일이 아니더라도 어떤 대화에서건 중요한 법이니까요. 찡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