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뛰어분다 어째쓰까잉
작년 청와대 만찬주로 유명세를 얻었던 '강서맥주', '달서맥주'에 이어 출시한 '전라맥주'의 카피 문구이다.
'대동강', '해운대', '제주위 에일', '서빙고', '강남'... 바야흐로 수제맥주 풍년이다.
맥주매니아 '맥덕'의 입맛과 혼술, 홈술 트렌드에 맞춘 각종 수제맥주가 핫플레이스뿐 아니라 편의점과 마트까지 장악하고 있다. 맥주 하면 떠올랐던 3대 맥주 브랜드 중 하나를 골랐던 시대는 이미 먼 산을 넘어섰다. 실로 다양성의 시대이고, 취향 만발의 시대이다.
올해 CJ에서 진행했던 <올리브콘>이라는 식문화 트렌드 컨벤션 행사의 주제가 '로칼 로망(Local Roman)'이었다. 강릉에서 스톡홀름까지 지역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로컬 브랜드를 소개함으로써 소비자의 선택이 다양화, 세분화되었음을 널리 알리는 행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형 F&B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운영하는 기업에서 스스로 로컬 브랜드 시대의 도래를 선언하는 장면을 연출하였다.
연남동, 경리단길, 해방촌, 가로수길 등 이른바 핫플레이스를 방문해보면 작은 골목에 크지 않은 점포이지만 개성이 한껏 풍기는 상점과 카페들이 즐비하다. 힙한 젊은이들과 개성 넘치는 중년들까지 획일화되지 않은 문화와 컨셉을 즐기는 것에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어딜 가나 동일한 메뉴에 비슷한 인테리어,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형 프랜차이즈가 한편으론 멋대가리 없는 기성복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대형 프랜차이즈의 유일한 장점은 접근성이 좋다는 것과 적어도 평타 치는 품질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씁쓸하게도 이런 대형브랜드들은 아마도 직원들의 최저임금 인상률을 걱정해야 하는 편의점 정도의 가치만을 소구 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혁신'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유투브는 소비자들의 정보 습득 방식을 철저하게 바꾸었다. Z세대의 85%가 유투브로 영상을 시청하고, 이들은 매일 평균 57분을 유투브에 소비한다. 더 중요한 핵심은 유투브에는 다루지 않는 주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자신이 관심 있어하는 모든 것을 생생한 영상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이다. 프로를 넘보는 덕후들이 유투브를 통해서 확산되고, 나름의 고정 팬덤이 생기고, 또 다른 덕후들을 만들어낸다. 과거 미디어가 만들어낸 획일화된 관점과 일방적인 주입은 여기엔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이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취향도 무시할 수 없으며, 메인스트림과 언더의 차이도 유투브에서는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인디 브랜드 창궐의 시대이다.
유투브 크리에이터 J.Fla는 다른 가수의 원곡을 리메이크해서 부르는 커버 음악 장르에서 이미 세계적인 유명인이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커버 음악을 유투브에 꾸준히 올리면서 현재 구독자 800만 명으로 국내 유투버 1위이자, 전 세계 유투버 아티스트 중 26위에 올랐다. 누군가에겐 커버 음악이라는 장르 자체가 생소하기도 하겠지만, 대중 미디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J.Fla는 1인 브랜드라는 스몰브랜드가 세상에 어떻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과거 대중 문화와 인디문화가 보편성과 양적 규모로 구분되었다면, 이제는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고, 어디까지가 대중이고 어디서부터가 별종인지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기준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있다. 누구나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으며, 차별화할 수 있다면 또한 선택될 수 있다는 믿음을 이미 많은 사례들이 입증해주고 있다.
언제까지 숫자로 세상을 볼 것인가?
대기업 또는 경쟁률이 높은 기업일수록 좋은 학벌, 즉 범생이의 입사 확률이 높다. 상대적으로 빠른 두뇌회전, 높은 성실성, 게다가 인내심과 근면함까지 갖추고 있다. 특히나 정해진 규범을 잘 준수하고, 내적 동기보다는 외적 동기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정해진 트랙과 룰을 가진 무대에서는 뛰어난 성과를 낸다. 하지만 변화가 심한 격변기에, 앞날이 불투명한 시대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어려워한다. 공식에 익숙한 이들에게 창의적인 사고는 익숙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세상을 자신들의 잣대로 판단하려고 한다. 브랜드 가치를 숫자로 읽는다. 좋은 브랜드는 TOM 지표로 측정하고, 광고비 지출을 높이면 인지도와 함께 선호도까지 올라간다고 믿는다. 사업적으로는 무엇을 하더라도 1등을 해야 하고, 규모도 최대, 매출도 최고, 매장 수도 제일 많아야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숫자에 민감한 목표 지향적 성향까지 갖추고 있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서 이윤을 최대화해야 하고, 효율성과 표준화를 통해 낭비를 최소화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브랜드도 그렇게 이해한다.
이들의 사적 취향이란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명품 브랜드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뿐이고, 그마저도 가장 유행하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가장 안전한 표준편차 범위 안에 들어야 안심이 되는 찌질함까지 갖추고 있다. 대기업에서 엣지 있는 브랜드가 출현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본다. 의사결정자의 많은 비율이 이(범생이 부류)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살아남기 어렵다. 궤도를 조정해야 한다.
사회가 양극화되면서 계층의 이동이 쉽지 않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소확행의 실천이 소시민들의 유일한 삶의 위안인 안타까운 시대이다. 한 인간이 각박한 인생에서 한 명의 주체로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브랜드'이다. 브랜드는 소시민에게 소비자로서 '갑'의 권력을 안겨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인 것이다. 따라서 소비자의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결정의 쾌감이 커질 것이며, 자신의 존재 역시 이를 통해 체감할 수 있다.
나는 선택한다, 고로 존재한다
바야흐로,
선택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시대이다.
스몰 브랜드는 그것 자체로 매우 철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