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걸로 자격 운운하는 것이 우스운 일이겠지.
스타트 업하는데 무슨 자격 따위가 있겠냐마는...
창업의 나락(?)에서 기어올라오려면
뭔가 준비해 놓고 떨어져야 하지 않을까?
냉철하게 한 번 씹어보자고.
자격이라는 말은 좀 자극적인가 싶다.
하지만 조금은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길이라서
마음에는 안 들지만, 자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나 홀로 하다가 망하는 거면,
굳이 이런 이야기가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조금 이제 막
굴러간다 싶을 때,
돌아보면,
나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얽혀있는
공동체 운명이 되어있기에
기본적인 것은 염두에 두고,
각오를 단디 해야 한다.
잃을 것이 없을 때는 두려움이 없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투입한 자금도 그다지 많지 않고,
나 혼자 처리 가능한 업무들과
공간도 무상으로 이용하다 보면,
창업이란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구나라는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였을 때,
아직 월급이란 제도가 생기지 않았을 때,
우리끼리 떠들고,
우리끼리 고민하고,
우리끼리 스케줄을 정할 때는
리스크라는 것에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부담스러운 비용이 투입될 때가 발생한다.
다들 식대와 차비를 자체적으로 부담하기 어려워진다.
외주 또는 협력업체에 지불해야 할 비용이 청구되고,
우리끼리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우리끼리는 아이디어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니 기술적으로 예상치 못한 난관이 있다.
고객들에게 물어보니 별로 필요성을 못 느낀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이제 우린 무얼 해야 하나
이제 우린 어디로 가나?
개발기간을 얼추 산정해보니
한 두 달 만에 해결될 일이 아니다.
어디에 물어보려고 해도 아는 사람이 없다.
누굴 데리고 오려해도 이미 주니어급 이상의
경력자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데리고 올 돈이 없다.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될 것 같지?
은행에 가보고 얼마나 대출이 가능한지 알아보고 와봐.
기술보증기금이나 신용보증기금 가서
보증한도가 얼마나 나오는지 상담해보고 와봐.
중소기업 진흥공단에서 나오는 저금리 융자는
신청하면 다 줄 것 같지?
정부지원금이라는 것이 몇 번 사업계획서 관련 강의 듣고,
문서로 긁적긁적 이면 짜잔~ 하고 나올 것 같지?
투자라는 것은 더 어려워.
IR(investment Relationship)이라고 불리는
투자설명회는 쉽게 할 수 있을까?
그것도 경쟁하고, 선별되어서 간신히 자리에 오르는 거야.
그래!
그 자리에 올라가서 멋들어지게 사업을 소개하고
발표를 끝냈다고 치자.
"이 아이디어 대박 날 것 같아요. 내가 투자할게요"
"언빌리버블~! 얼마 필요해! 우리가 찜할게"
영화를 너무 많이 본건 아닌지 생각해봐.
그런 일은 없어.
적어도 그 자리에서 투자가 결정 나거나
개런티 해주는 일은 없단 말이야.
가뭄에 콩 나듯 3개월(이것도 사실 매우 드문 케이스고),
빠르면 5개월(이것은 꽤 준비가 잘 된 케이스고),
보통은 7개월 정도 서로 조율하고, 수정하고, 협상하면서
진행되는 게 투자야.
이것도 투자에 관심이 있어서
후속 미팅(following)이 이어지는 경우고,
일반적으로는 단발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더 많아.
투자자나 심사역인 분들 명함 좀 모아 왔다고
안도의 한 숨을 쉬는 바보짓은 하지 마.
하루에도 그런 명함은 수십 장씩 뿌리 고다녀.
네가 받은 그 명함은 그중 하나 일 뿐이고,
내일이면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질 거야.
아니,
어쩌면 오늘 저녁을 먹다가
잊어버릴 수도 있어.
돈만 그런 것 같아?
시간도 그래.
예상했던 시제품/베타 서비스는
항상 시간을 어기는 법이지.
(내가 보는 내 제품과 고객이 보는 내 제품의 간격은 크거든)
고쳐야 할 것이 개발과정이 진행될수록
늘어나거든.
그리고 그 난이도는 더 높아지고,
비용도 증가하는 경향이 있어.
재미있는 것은 창업하고 나면,
이상하게 공휴일이 많다고 느껴진다.
징검다리 연휴, 긴 명절, 심지어 선거로 인한 임시공휴일까지...
직장 다니거나 학생일 때 그렇게 환호하던 휴일이
창업하면 몰려서 오는 것 같단 말이야.
그리고 그렇게 해서 발생하는 시간의 딜레이는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어.
그리고 미팅을 예로 들까?
미팅을 시간 정해서 진행해야 돼.
안 그러면 기약 없이 늘어지게 되고,
쓸데없는 말이 더 많아져.
미팅에 목적을 확실하게 안 정해 놓으면,
돌아가는 길에 깨닫게 될 거야.
의미 없는 미팅이었고 시간 낭비였다는 걸.
그렇다고 시간이 딜레이 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 돼.
그 차이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가급적이면 시간의 한계점은 꼭 지키려고 해야 되지.
문제는
나도 계속 이 부분에 대하여 잔소리 듣고,
나름대로 신경 쓴다고 하는데도
딱 맞추기 쉽지 않다는 거야.
그럴수록 더욱더 신경 써야 하는
끊임없는 숙제랄까?
어떤 회사가 성공할 것 같아요?
아이디어가 신박한 회사?
팀 빌딩이 환상적인 회사?
투자를 받은 회사?
고리타분하게도...
나는 관리가 잘 되는 회사가 성공할 거라 생각해.
처음 무언가 일으키는 것은 사실 어렵지 않아.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고,
뜻을 세우는 것보다 뜻을 지켜가는 게 어려운 거야.
새해만 되면 우리는 다짐을 하잖아.
근데 그것을 지켜나가고 수행하는 것이 더 어렵잖아.
창업자가 일만 벌여놓으면
그 회사는 결과가 없어.
완성하고, 이어나갈 역량이 안되면,
그럴 수 있는 동료를 영입해야 해.
정말 힘든 거야.
재무관리, 인사관리, 연구관리, 생산관리...
뒤에서 받쳐주지 않으면,
회사가 지탱하지 못해.
그래서 회사에는 안사람이 필요해.
대표가 바깥을 헤집고 다녀도,
동료들이 안에서 기본기를 단단하게 다지고 있어야
그 성과들로 대표는 다시 밖으로 나돌 수 있어.
인프라도 마찬가지야.
명함 받고, 인사 나누고, 미팅 한 번 하기는 쉬워.
그 인연을 계속 이어가면서
사업적으로 서로 교류가 지속되도록
관리하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야.
하물려, 전시회에서 잠시 잠깐 만난 바이어들에게
후속 메일 보내고, 가끔씩 메일 보내는 것도
해를 거듭할수록 많은 업무량이 되거든.
창업한 후, 특히나 최근에 나는 강하게 느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관리적인 측면에서 나는 참 부족한 사람이거든.
돈을 막 쓰는 사람이랑은 달라.
제대로, 적재적소에 사용하고,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 수 있느냐야.
대표가 되면,
다른 팀원들보다 비용 지출이 커져.
외근도 잦고, 미팅이 많아지거든.
주말에도 일하다 보니 기본적인 비용이 더 들지.
그리고
해외도 몇 번씩 돌아다니게 되면서
생각 외로 비용이 들어가.
나처럼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가장의 경우에는
특히나 빈궁하게 살게 되거든.
회사 자금을 끌어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쉽사리 법인카드를 긁기 힘들어져.
일단은 개인적으로 소모되는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야 해.
그리고 회사 돈은
적어도 생산성 있는 소비에는 지출이 필요해.
대표들은 생산비용에는 관대한 경향이 있어.
그나마 연구비 정도까지 관대한 분은 더 적지.
마케팅 비용?
무료로 마케팅할 수 있다는 말에 환호하지.
더러 그런 케이스가 있지만,
우리는 마케팅 비용에 대하여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
사실 제일 두리뭉실한 비용이라...
선뜻 지출을 결정하기 쉽지 않지.
그런데 제품/서비스는 알려져야 구매가 일어나.
마케팅에 비용을 안 쓰면 어떻게 알릴 거야?
마케팅의 콘텐츠는 대중들에게 소비되는 거야.
그 소비가 제품을 알리고, 브랜드를 알리고,
우리를 알리고, 판매로 이어질 거야.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쌓이고, 조금씩 퍼져나가다 보면 말이야.
그렇다고 무작정 쏟아붓지는 말자고.
잘 쓰는 것이 중요한 거지
막 쓰는 것과는 다른 거니까.
대표는 미안하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컨설팅해 준 분이 있어.
내 귀가 막혔는지 여전히 공감은 못 해.
잘못한 것이 있으면 사과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거든.
일견 사과를 하지 말라는 속뜻은 알겠어.
대표가 사과를 자주 하면,
미안한 마음에 다른 보상을
상대방에게 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경계겠지.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사과하는 게 맞다고 봐.
사과는 하되,
협상과는 별개라고.
잘못에 대한 사과와
사과의 의미로 협상을 상대방에게
숙이고 들어가는 것을 혼동하면 안 돼.
공(公)과 사(私)를 구분하라고들 하잖아.
대표가 신이 아닌 이상
사과할 일이 있으면 사과해야지.
그게 대표의 리더십에
상처가 된다고 생각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야.
회사의 대표니까
쉽게 사과하면 안 된다가 아니라
회사의 대표니까
사과할 때는 사과해야 된다가 맞지 않을까?
코딱지만 한 스타트업에서
목까지 굳어버린 대표를
어느 누가 좋아하겠어?
작은 스타트업의 강점은
신속함과 유연함이라고 하는데...
잘못을 빨리 인정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해나가는 것!
그게 신속함과 유연함이야.
나는 정말 허물이 많은 사람이야.
덜렁덜렁거리고,
세심하지 못한 사람이야.
지금 나열한 대표로서 자질들이
사실은 나에게 많이 부족한 능력들을
나열한 거야.
그래.
내 이야기야.
그러고 보면,
이런 자질이 의심되는 사람인데
용하게 스타트업을 하고 있지.
그래서 많이 돌고 돌아,
시행착오가 빈번하지.
주위에 내 뒤치다꺼리한다고
피곤해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야.
그러니까 너는 그러지 말라고.
이 글을 쓰고 있고,
또 몇 번을 다시 읽는 너는 앞으로
더 발전하고,
더 성숙하고,
더 고쳐지라고...
공개적으로 부끄러워하고,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공개적으로 앞으로
더 나아지는 사람이 되겠다고
선언하라고 이 글을 쓰는 거야.
너는 애당초 스타트업 대표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널 이끌어주는 사람들에게
늘 감사하고, 고마워하며 살아가라고.
내가 나에게 보내는 멘토링을
자주 꺼내보면서
마음에 깊이 새기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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