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이야기----
무사히 플랜트 공정 교육에 선정되어
정말 치열하고, 부지런히 학업을 수행하였다.
그런데...
쉽지 않더라.
학생 신분이 해피했냐고?
아니,
오히려 마음의 부담이 컸다.
일단 왔다 갔다 하는 데 있어
눈이 많이 와서 고생을 좀 했다.
게다가 파주에서 서초는
진심 빡세다.
사실 이런 건 힘든 편에도 못 들어간다.
진짜 힘든 건 다음과 같다.
차비랑 점심값 밖에 없어서
커피 한 잔 사 먹을 여유가 없다.
특히 단체 모임을 할 때가 가장 난감했다.
함께 조별과제랑 발표, 영어 스터디 등
그룹으로 진행하는 경우,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돈!
우리 조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나였기에
사실 모일 때마다 뭔가 조원들에게
커피 한 잔이라도 사주어야 할 것 같은
상황들이 빈번했다.
더군다나 어쩔 때는 모임 끝나고
간단한 치맥 자리를 할 때가 있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번번이 참석할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그럴 지갑 사정이 아니었다.
약간 마음에 부담이 될 때마다
조장이었던 학생이
"각자 더치~!!"를 외쳤다.
그 친구는 내 사정을 알고는
전체 분위기를 그렇게 끌어주었다.
(그리고 조원들이 은근 우대해주어서
돈에 대한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용어부터 프로세스, 장치 등
공부를 할수록 내가 무지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교육생들은
이미 학교에서 배운 내용들도 있고
취업해서 익숙했던 내용들도 있겠지만,
나는 연구원으로 쭈욱 있다가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이름도 모르는 부품 사 와서 조립하고,
펌프도 몇 번을 바꾸어가면서
무식하게 공정을 만들던 사람이라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어중간한 느낌으로
배워나갔다.
내 기본 베이스는 생명공학이고,
생물을 기반으로 원료화하고,
제품화/사업화하는 쪽으로
연구/기획을 주로 해왔다.
게다가 공장으로 스케일 업할 때도,
설계도 보면서 공정 만드는 게 아니라
부품들 보면서 공정 만드는 방식이었다.
그나마 그런 경험이라도 있으니까
조금은 따라갈 수 있었지만,
그 외의 부분들은 모조리 외우는 수밖에 없었다.
외우려면,
새벽까지 머리 쥐어짜야 했고,
세네 시간 잠들었다가 다시 일어나
경의선 첫 차를 타러 가야 했다.
주말에는 창업 관련 서적을 몰아서 읽고,
사업계획서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몸이 지쳐감을 느꼈지만,
더더욱 힘든 내색을 하면 안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한 가지를 하기 위해서
힘든 일, 하기 싫은 일 9가지를 해야 한다는
말을 되뇌면서 버텼다.
그리고 날 응원해주는 아내를 생각하면,
절대로 힘들어서는 안 된다.
나는 그녀 앞에서 항상 웃어야 한다.
통장에 잔고가 떨어져 가고,
관리비와 카드 청구 영수증을
내 눈 앞에 안 보이게 하는
아내가 있기에
하나도 안 힘들다.
그렇게 자기세뇌를 하면서 버텼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2월 마지막 주가 다가왔다.
최종 평가와 수료식이 있는 날이었다.
전 날에 행정직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수료식이니까 꼭 정장 챙겨 입고 오라고.
아침 일찍 출석 인증하고, 커피를 마시는데
지나가던 교육원장님이 말을 건넸다.
"좋은 꿈 꿨어요?"
"아... 곯아떨어져서 꿈을 안 꾼 지 오래인걸요"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요.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요."
"옙^^ 감사합니다."
오늘이 마지막 수료일이라서
교육원장님도 신경이 쓰이시는가 보다 하고
넘겼다.
그리고 수료식 행사에서....
나는 개인 성적으로 2등(우수상)
단체성적으로 1등(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심지어 학창 시절에 상장 하나 받지 못했던
상을 받게 되니 나조차 믿기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우리 조원들과
같은 반 학생들, 그리고 교육생 전원에게
이변이었고, 충격이었다.
이 사실을 어서 빨리 아내에게 알리고 싶었다.
비록 이 상장들이 우리 생계에 지금 당장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지만,
그동안 애쓰고, 노력했다는 증명이다.
어찌 보면,
그냥 관련 교육과정 하나 수료한 거고
거기서 상장받았다 한들
그것이 창업에 레퍼런스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로 전문가가 될 수도 없지만
시간과 노력, 희생을 대가로
얻은 작지만 소중한 성과였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큰 이정표이자 시작의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