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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den MBA School 소개

내가 공부했던 University of Virgina의 MBA School인 Darden은 한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학교이다. 매년 한국 학생들이 많게는 30명씩 가는 미국 MBA도 있는 반면에 Darden에는 매년 한국 학생들이 5명 내외 정도 입학을 한다. 내가 공부했을 때는 같은 학년에 나 포함 3명의 한국 학생이 있었고, 내 위로는 2명, 그리고 아래로는 0명이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는 잘 모르는 사람도 많고 그렇기 때문에 더 선호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난 Darden의 2년간의 시간이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고, 더 많은 한국의 MBA 지원자들이 Darden을 선택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한국에서는 저평가되어있는 Darden을 소개하고자 한다.우리나라에서 MBA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학교를 선택할 때 가장 큰 고려를 하는 것이 Ranking이다. 사실 Ranking을 아주 안 볼 수는 없지만, 한국 사람들은 여기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Ranking은 평가하는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고, 또 매년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는 참고자료에 불과한데 한국 지원자들은 이게 가장 큰 고려 대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잠깐 소개를 하면 Darden은 US news Ranking으로는 2016년 기준 11위로 랭크되어 있다. Ranking이 매년 바뀌기 때문에 보통 Top 10이라고 불리는 학교들을 15개 정도로 본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Top 10 School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MBA를 졸업하고 나면 이 Ranking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어떤 경험을 할 수 있고, 그것이 내가 원하는 방향과 얼마나 일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Darden에서 경험했던 것을 소개하려고 한다.Darden의 가장 큰 특징은 수업이다. 나도 MBA를 지원 준비를 했을 때 Darden은 내 1순위가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은 학교이고, 공부가 너무 힘들다는 소문이 나 있어서 한국의 지원자들에게는 기피하는 학교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Darden의 수업을 듣고 나서 나의 생각을 180도로 바꾸었다. 몇 개 학교를 방문하면서 수업을 들어봤지만, 다른 학교들에게서는 내가 한국에서 배웠던 강의식 수업과 크게 다르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심지어는 어느 학교에서는 수업 중에 졸기까지 했다. 하지만 Darden의 수업은 달랐다. 너무나 역동적이어서, 90분의 수업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Darden의 수업의 가장 큰 특징은 강의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수업은 Case 중심으로 한 토론 수업이고, 이론에 대한 준비는 미리 나누어 준 Class Note를 통해서 학생들이 각자 알아서 준비를 해야 한다. Case도 미리 읽고 와서 토론에 참여를 해야 한다. 90분 내내 토론이 펼쳐지고 각자의 경험과 관점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펼친다. 수업의 속도는 정말 빠르다. 30분 정도 지나갔나 싶어 시계를 보면 이미 수업시간은 10분밖에 남지 않는 상황이 펼쳐진다. 지루하거나 남을 이기기 위한 토론이 아니다. 치열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유머와 농담을 주고받기 때문에 수업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문제는 90분의 수업이 끝나고 나서 무엇이 답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처음 난 이 문제로 인해 혼란스러웠다. 답이 정해져 있는 수업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에게 나의 이러한 혼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교수님은 이런 나에게 우리의 수업의 목적이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한 연습을 하는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나는 정답이 있는 문제를 푸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에 Case 수업에도 정답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경영 환경에서는 정답이 없다. 각자의 답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답을 찾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Darden의 Case 수업은 이걸 훈련하는 과정이다. '스스로 답을 찾는 방법'Darden의 또 하나의 특징인 Community이다. Darden은 Community를 중요시한다. 건물에서도 이러한 정신이 숨어 있다. Darden은 University of Virginia에 속해있다. UVA는 미국 3대 대통령이자 미국 독립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한 토머스 제퍼슨이 설립한 학교이다. 그래서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UVA의 초기 건물에는 제퍼슨의 뜻이 숨어 있다. 제퍼슨은 학생과 교수가 하나의 community를 이루어 토론하고 배우는 아테네의 학당과 같은 이상향의 학교를 꿈꾸었고, 그것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건축을 했다. 그래서 한쪽에는 학생들의 기숙사와 교수들의 방이 Lawn을 마주 보고 서 있고, 모든 동선이 Lawn을 지나가도록 설계를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학생과 교수가 부딪히는 구조로 만들었다. Darden은 이러한 UVA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가져와서 건물이 설계되어 있다. Darden은 Flagler court를 중심으로 학생들의 수업공간과 교수들의 방이 나란히 서있다. 교수와 학생이 수업 외에도 길을 가다가 자연스럽게 부딪히게 되어있고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이것을 나도 입학할 때는 알지 못했는데, 공부를 하고 하다 보니 수업이 끝나고 어딜 가던지 언제나 Flagler court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교수들을 자연스럽게 부딪히는 것을 경험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공간이 문화를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Darden이 Community를 중시하는 것은 비단 건물의 배치뿐만 아니다. 매일 아침 전교생과 교수, 교직원들이 다 같이 모여서 Coffee와 간단한 다과를 하는 First Coffee, 매주 목요일에는 학생의 가족, 교수들의 가족들이 Flagler court에서 하는 가든파티, 그리고 이게 끝나면 동네 술집에서 술을 먹은 TNDC (Thursday Night Drinking Club), 그리고 학생들의 집에서 열리는 비정기적인 파티 등등,  많은 Community 행사들이 있다. 2년이 지나면 350명의 동기들을 모두 친하지는 않더라도 350명의 친구들을 웬만하면 이름을 알고 인사는 할 정도는 될 수 있다. Darden의 Community는 학생들에서 학생들의 가족으로 확장된다. 나와 같이 유학생들은 별로 해당이 안되지만, 학생들의 부모를 비롯한 가족들이 수업을 참여하는 행사도 있다. 유치원 생도 아니고 다 큰 성인들의 수업을 참관하는 게 좀 우습기는 하지만, 수업 시간 중에 참여한 가족들이 학생들과 똑같이 소개를 하고 Case 토론에 참여도 한다. 가족들이 참여한 수업은 더욱 화기애애해진다. 심지어는 지역 봉사 활동에도 가족들을 초정해서 같이 하는 경우도 있다.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MBA가 비싼 수업료와 2년의 시간의 가치가 있는가?","돈을 투자한 만큼의 ROI가 있는가?", 난 이런 질문을 받을때마다 이렇게 답한다. ROI를 생각하면 가지말라고,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한국에서 미국 MBA 갔다와서 대부분의 경우 우리나라 대기업에 들어가면 ROI 절대 뽑을 수 없다. 요즘에는 MBA 갔다왔다고 해서 특별히 연봉을 높여주지도 않거니와, 그렇다고 특별히 직급을 높여주지도 않는다. 나 같이 창업한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난 아직도 수업료와 생활비로 생긴 빚을 6년째 갚고 있지만 빚에서 벗어날 날이 언제일지 기약이 없다. 그렇지만 난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그 2년의 시간이 내게는 내 인생에서 최고의 시간중에 하나였고, 지식과 경험에 있어서 많이 배웠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전세계에 있는 내 소중한 친구들을 2년이라는 시간동안에 만들 수 있었다. 지금도 해외 출장을 가게되면 그 도시에 있는 친구들을 시간을 내서 잠깐 보기도 하고, 친구들이 한국에 방문할 때는 나도 시간을 내서 함께 하기도 한다. 내가 얻은 것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내가 Darden에서 얻은 것은 분명 내가 투자한 돈보다도 나에게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NEOFECT #스타트업 #딜레마 #고민 #스타트업창업 #인사이트 #조언 #미국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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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성장하는 커뮤니티를 경험했습니다

임팩트 커리어 Y를 통해체인지메이커를 돕는 커리어를 경험한루트임팩트 김정현 님 임팩트 커리어 Y 2기로 RootImpact(이하 루트임팩트)에서 인턴기간을 마친 김정현 님. 커뮤니티 어시스턴트로, 체인지메이커를 돕는 체인지메이커로 커리어 탐색을 마친 김정현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헤이그라운드에서 함께 활약했던 커뮤니티 어시스턴트 분들과 정현 님(가운데)정현 님을 소개해 주세요. 어떻게 사회혁신 커리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직업으로 그런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고민을 하던 중 우연히 소셜벤처, 소셜섹터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회사들이 점점 성수동에 모여 함께 일하고 있다는 점도 굉장히 흥미로웠고요.많은 회사들 중에 왜 루트임팩트에 지원하게 되었나요?루트임팩트는 소셜벤처들이 활동하는 임팩트 생태계를 조성하는 조직이에요. 쉽게 말하면 다른 소셜 벤처들이 빠르게, 그리고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죠. 저는 이러한 루트임팩트의 역할이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느꼈어요.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방식을 통해 소셜 벤처를 돕는다는 것이 가장 흥미로웠거든요. 마침 휴학을 결심한 때에 임팩트 커리어Y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부트캠프 교육기간 동안 가장 좋았던 것은 무엇인가요?부트캠프 커리큘럼을 보고임팩트 커리어에 지원했다고 말할 정도로 기대가 컸어요.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오랜만에 부트캠프 시간표를 펼쳐보았습니다. (웃음) 사실 저는 부트캠프 커리큘럼을 보고 임팩트 커리어Y에 지원했다고 말할 정도로 부트캠프 교육에 대한 기대가 컸어요. 기대 만큼이나 모든 교육 시간이 좋았습니다. 기존에 개별적인 회사로만 알고 있었던 각각의 소셜벤처들이 함께 모여 하나의 사회적 흐름을 만들고 있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던 ‘임팩트 에코시스템’ 수업부터, 논리적 사고구성에 대해 배우는 ‘로지컬씽킹’, 마케팅 기초를 다지는 ‘디지털 마케팅 101’, 등등 배운 것이 정말 많아요. 소규모 팀 프로젝트로 마지막에 총 리뷰하면서 배웠던 것들을 적용한 기회도 너무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부트캠프의 하이라이트는 1박2일로 떠난 ‘라이프 셰어’였어요.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삶의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동기들과 한껏 더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친해지니 교육 시간들이 더 재미있어졌고요!*슬로워크 해리 님의 졸업전시회에 함께 다녀온 임팩트 커리어 Y 2기 동기들과 정현 님 (오른쪽)인턴기간 동안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성장을 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루트임팩트 헤이그라운드 팀에 있었는데요. 커뮤니티 어시스턴트로서, 헤이그라운드의 70여개 입주사의 커뮤니티 형성을 돕는 일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멤버 분들의 조식을 챙기고, 불편한 점이 없는지 매일 체크하고 또 헤이그라운드 내 열리는 여러 행사를 보조하기도 했습니다.헤이그라운드에서의 경험은 저에게 ‘커뮤니티’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만들어주었어요. 한국말로 옮길 때 적절한 말이 ‘공동체’인데, 사람은 어느 하나의 공동체에는 속해 있는 거잖아요. 크게 보면 저는 ‘20대’, ‘여자’라는 기준의 공동체에 속해 있는 거고요. 제가 맡은 업무를 하면서 ‘커뮤니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점점 제 삶에 적용해서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평소에도 함께 있어 몰랐던, 제가 속해 있는 커뮤니티 사람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체인지메이커로 한 걸음 더 성장한 후 이제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마치게 될 정현 님.임팩트커리어 3기 지원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임팩트 커리어Y는 지원자분들에게 굉장히 많은 기회를 준다고 생각해요. 그 소중한 기회들이 여러분들의 꿈을 실현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보아요!#루트임팩트 #헤이그라운드 #임팩트커리어 #커뮤니티어시스턴트 #체인지메이커 #부트캠프 #회사찾는법 #스타트업동기동창 #스타트업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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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서비스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처음에 핀다(Finda)를 창업하면서 주변 사람들이나 투자자들, 또는 금융업 종사자들에게 설명할 때 하나같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반응이 있었다. 한 가지는 ‘꼭 필요한 서비스인데 왜 없지?’이고 다른 한 가지는 ‘예전에 많이들 시도했었는데 성공하지 못했던거 같은데.’였다. 공동창업자와 이런 반응에 대해서 우리가 판단하는 시장에 대한 상황을 설명하곤 했는데, 결론적으로 ‘아무래도 시장이 준비가 덜 되었다.’라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론 애드너의 <혁신은 천개의 가닥으로 이어져있다> (출처: 교보문고)그러나 핀다를 창업하고 이제 1년 남짓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시장의 반응은 180도 바뀌었다. 창업 초기 온라인으로만 100% 대출이 가능했던 상품은 없었는데, 지금은 1금융권에서도 모바일, 온라인 상품들을 출시하고 있고, 오히려 금융권에서도 먼저 손을 내밀어주고 있다. 사용자들도 송금과 결제 외의 금융활동들을 모바일과 온라인에서 하고자 하는 니즈도 많아졌고, 나름 각 분야에서 경쟁 서비스들도 출시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몇 년 전에 읽었던 론 애드너 (Ron Adner)의 ‘혁신은 천개의 가닥으로 이어져 있다 (The Wide Lens)’ 책의 내용을 다시 되짚어보게 되었다.내 실행이 의미를 지니려면 누구와 무엇을 해야하는가책에서는 혁신을 성공적으로 이루고 경쟁자를 물리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실행 초점 (Execution focus)’, 둘째는 혁신이 의미가 있으려면 다른 누가 혁신을 일으켜야 하는지에 대한 ‘공동 혁신 (Co-innovation)’, 마지막으로 최종 소비자가 완전한 가치 제안을 평가하기 전에 다른 누가 내 혁신을 수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수용 사슬 (Adoption Chain)’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론애드너의 혁신 전략에 대한 와이드 렌즈 관점. 나도 잘하고, 시장도 성장하고, 이해관계자들도 모두 성장해야 한다.‘공동 혁신'과 ‘수용 사슬'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자면, 이를 잘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가치 창출을 위해 결합해야 하는 모든 요소의 청사진과 생태계 구조 구축 ‘순서'에 대한 명확한 계획을 바탕으로 단계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즉, 나만 잘한다고 혁신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엠페사(M Pesa) 혁신 사례로 본 시장의 중요성 여러가지 좋은 사례가 나와있지만 그 중에서도 성공적인 핀테크 회사로 유명한 케냐의 엠페사(M Pesa)의 케이스가 와 닿았다. 영국의 보다폰 (Vodafone)과 케냐의 최대 이통사인 사파리콤 (Safaricom)의 합작사인 엠페사는 대리점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문자 메세지를 통해 은행 계좌가 없어도 쉽게 송금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이제는 케냐 뿐만 아니라 남아공, 인도, 이집트 등 다양한 국가에서 총 2천 5백만 명이 사용하는 글로벌 금융 서비스로 성장했다. (2016년 3월말 기준)엠페사가 처음 설립되었을 때 목표는 케냐의 수많은 금융 소외 인구에게 기본적인 은행 업무를 제공하고 자본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이는 케냐 전체 인구의 27%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으며, 27%는 잠재적 고객으로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고, 무엇보다 이 수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시장 상황을 바탕으로 실행에 옮겼다고 한다.  케냐 엠페사의 대리점 모습. 상대적으로 허름한 모습이 오히려 고객 가치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출처: Worldbank 홈페이지)엠페사의 이러한 성공에는 공동 혁신과 수용 사슬의 발전이 뒷받침 되었다. 문자메세지 기간망 그리고 휴대폰 보급이라는 ‘공동 혁신’은 이미 일어나 있었고, 사파리콤 대리점이라는 ‘수용 사슬’의 매개체 또한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수용 사슬에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는데, 도시에 사는 사람이 농촌에 사는 친지에게 송금하는 경우가 많아, 농촌 대리점에 현금이 부족해졌다. 이를 위해 대리점들이 협력하는 방식을 바꿨다.그 외에도 더 큰 과제는 복잡한 생태계 구조였다. 송금 이외에도 대출이나 입출금과 같은 포괄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케냐의 미소금융 기관인 파올루 케냐(Faulu Kenya)와 시범 사업을 개시했는데, 일일이 언급하기가 힘들만큼 많은 과제가 있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파올루 케냐의 기존 관행 및 시스템을 수용하기 위해 소비자 거래가 상당히 복잡해졌다고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엠페사는 기본적인 요소인 문자를 통한 송금 서비스에만 집중하였고, 결국 파올루 케냐를 제외시킨 송금 관련 ‘최소 실행 가능 범위’의 생태계를 구성하게 되면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2년 이후 엄청나게 단순화된 최소 실행 가능 범위. 집중할 수 있도록 시장을 구성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소비자에게 의미있는 서비스가 될 수 없다핀다가 만들고자 하는 혁신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우리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소비자에게 의미있는 서비스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O2O 서비스와는 다르게 더 나은 사용자경험을 모바일과 온라인에서 제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금융상품에 대한 정보를 보고 선택하는 것은 온라인에서 일어나고, 실제로 가입하고 구매하는 것은 오프라인에서 일어나서는 소비자에게 제대로 된 온라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온라인에서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드는 ‘공동 혁신'이 이루어지고 또 그러한 상품을 은행 자체 채널이 아닌 객관적으로 비교하고 추천할 수 있는 채널에서 판매하는 ‘수용 사슬'이 만들어져야 핀다의 비즈니스가 성립할 수 있다.하지만  ‘공동 혁신'도 ‘수용 사슬'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핀다와 같은 서비스가 제대로 기능하기가 힘든 환경이었다. 베타 서비스를 런칭한 2016년 봄에도 온라인으로 신청 완료까지 가능한 금융 상품은 드물었고 다른 금융기관의 상품들과 같은 자리에서 비교하고 판매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높았다. 그러다보니 핀다가 갖고 가야할 생태계 구조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상품의 가입과 구매가 오프라인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핀다가 대출 중개인과 계약을 통해서, 또는 직접 운영을 통해서 오프라인 가입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해줘야 하나 하는 여러가지 고민이 있었다. 이러한 고민은 최종 소비자에게 제공할 가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 측면에서도 중요한 문제였다.핀다의 사업가치 청사진을 도식화 해보았다. 제대로 가치를 제공하는 온라인/모바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중개인을 활용하게 되면 ‘수용 사슬'이 복잡해지고 최종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치도 불명확해진다. 그림을 그려보니 금융기관이 늘어날수록 복잡성이 역시 증대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다.)그러나 보다 우리가 명확하게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범위로 서비스를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온라인 및 모바일로 가입이 가능한 금융상품을 소개하고 연결하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온라인이 더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의 중요성 증대, 비대면 본인인증 등 기반기술 및 정책의 발전, 해외 사례, 조금씩 보이는 금융권의 변화의 움직임 등을 바탕으로 핀다와 같은 서비스가 필요해질 환경이 금방 올 것이라 생각 (또는 베팅을) 했다.  시장의 흐름을 잘 파악하는 노력창업을 하기 전뿐만 아니라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필요하다.그 사이 시장 환경은 빠르게 변화해왔다. P2P 대출부터 올해 첫 번째 인터넷 은행인 K뱅크까지 오픈하였고, (카카오뱅크도 오늘 출시되었다.) 시중 은행들도 온라인, 모바일 전용 금융상품들을 앞다투어 출시하고 있다. 씨티은행의 경우에는 지점의 80%를 폐쇄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핀다 자체의 혁신에 이러한 환경 변화가 더해지면서 핀다는 신한은행, 씨티은행을 포함, 30개 이상의 금융기관과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공동 혁신 및 수용 사슬이 이루어졌음은 물론이고 갈수록 범위가 커지면서 자연스레 핀다가 최종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치도 커지고 있다.핀다의 목표는 사람들이 큰 노력없이 자신에게 잘 맞는 금융상품을 추천 받음으로써 큰 고민이나 걱정없이 더 나은 금융생활 (a better financial life)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핀다 고객들이 핀다에서 상품들을 비교해보고 추천받아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대출 상품을 가입하면 제휴사와 함께 우대금리를 추가로 제공하는 핀다 전용 상품들을 출시했다.씨티은행과 제휴해서 직장인 신용대출을 받는 핀다고객들에게 0.5% 우대금리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 핀다)창업 초기에는 시장에 대한 리서치, 인터뷰 등에 대한 노력을 많이 기울이는 편인데, 아무래도 스타트업을 하면서 수많은 업무와 이슈에 파묻혀 시장을 흐름과 사용자들의 변화하는 니즈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노력을 진짜 규모있는 혁신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시장의 흐름과 이에 따라 사용자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가치들이 어떻게 변할지 Wide Lens를 통해 시장을 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야 한다. 시장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니...#핀다 #스타트업창업 #창업가 #창업자 #철학 #마인드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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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zzvil Culture]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버즈빌의 2018 Walkathon

 가을이 다가온 지금, 버즈빌에서는 2018 Walkathon을 진행 중입니다. 덕분에 점심시간에 석촌호수를 걷는 버즈빌리언이 많아지고 있는데요. 버즈빌에서는 왜 이런 특별 이벤트를 개최했을까요?  버즈빌리언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사내문화 버즈빌의 사내문화는 Top-down형식이 아닌, 구성원들이 스스로 만들어갑니다. 각자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들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많구요. 점심시간 자율 스터디에서 사내 각종 동아리 활동 그리고 얼마 전 진행된 버즈월드컵 2018 대회가 예시가 되겠습니다.  이번 이색 이벤트는 버즈빌리언이 짧은 가을을 만끽하고 몸도 건강해질 수 있도록 기획됐습니다. 최근 석촌호수가 서서히 단풍에 문들고 있는데, 계절에 딱 맞는 이벤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본 행사는 10월 15일부터 31일까지 가장 많은 걸음을 달성한 3명의 버즈빌리언에게 선물을 줍니다. 선물이 무엇인지 아직 발표되지 않아서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승부욕하면 버즈빌리언!  매주 목요일이 되면 버즈빌리언들이 모여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데요. 참여자들의 생생한 리뷰를 들어보면 John을 포함하여 모두 승부욕이 대단하더라고요. 이번 걷기 대회 역시 버즈빌리언의 의지가 활활 타오르는 게 느껴집니다.  강력한 1등 후보인 Lucas(사진의 왼쪽)는 건대역 주변에 거주하고 있는데 석촌호수 근처에 위치한 버즈빌 사무실에서 집까지 걸어 다니거나 점심 간에 호수를 따라 걷는다고 합니다. 또 1등 하기 위해 Benjamin은 역삼역 근처에 위치한 집까지 걸어서 출퇴근한다는 후문입니다. 행사를 기획해준 Emma(사진의 오른쪽) 역시 주말에 등산을 하는 등 빠른 걸음으로 1등을 노리고 있습니다. 정말 모두 의지가 대단하죠?  이렇게 버즈빌은 다양한 이벤트와 동호회, 스터디 등을 스스로 만들어 버즈빌만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개인의 발전이라는 거창한 목적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러운 관심사 공유로 업무상 겹치지 않아 생소했던 멤버들과 조금 더 알아가게 되고 무엇보다 회사 생활에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을 더할 수 있단 점에서, 구성원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사내문화의 장점이 극대화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걷기대회는 31일까지 진행되며, 다음 날 11월 1일 열리는 버즈빌리언 체육대회에서 우승자가 발표됩니다. 체육대회에도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버즈빌의 채용공고(전문연구요원 포함)를 확인하고 싶으면 아래 버튼을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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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띠 #19. 자칭타칭 아띠 비주얼, 마린!

Story #19. 자칭타칭 아띠의 비주얼 담당하고 있는라이더 '마린'을 소개합니다 :)자기소개 부탁해전 마린이에요. 아띠의 비주얼을 담당하고 있죠!!(하하) 어떻게 아띠를 처음 들어오게 됐어?처음에 김난도 선생님의 <내 일>이라는 책을 보고 관심이 생겨서 인터넷에서 아띠를 찾아봤어. 아띠 블로그도 보고 페이스북 좋아요도 누르면서 찾아보는데, 신입 라이더 모집기간이 이미 끝났더라고. 그래서 엄청 아쉬워했었어!(웃음)  그때 내가 군인이어서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은 없어서 그냥 평상 생활을 하는데, 내가 어느새 맨날 아띠 이야기만 하고, 아띠만 찾아보고, 아띠에 대해서 애들한테 계속 설명을 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비록 내가 지금 군인이어서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이런 마음을 IJ한테 전달하고 싶었어. 그래서 IJ의 용기에 대해서 존경심을 표하고, 나도 기회가 되면 하고 싶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썼지. 한 달 동안 답장이 안오더라고!(웃음) IJ가 처음에 답장 안 하려고 했었는데, 권이 답장하라고 해서 한 달 만에 답장을 받았어. '편지 잘 받았고 전역하면 그때 보고, 건강하게 전역하라'고. 그리고 4월에 전역한다고 하니까 구글 지원서 주소를 보내줘서 작성하고, 합격 통지를 말년 휴가 때 받았어. 엄청 기뻤지. 그래서 나는 전역한다는 기쁨보다 아띠에서 일할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어. 그래서 전역하고 바로 서울로 올라 와서 첫 날 케빈이랑 면접 보고 찜질방에서 저녁 12시에 합격했다고 문자받고 너무 좋았지. 그러면서 점점 아띠에 미쳐갔지.(웃음)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어?음, 좋아진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그냥 정말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된 것 같아. 자연의 흐름이었어.(웃음) 내가 아띠인력거라는 게 있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에는 이걸 무시할 수가 없었어. 무조건 하고 싶었어. 그냥 내 속에서 그렇게 시킨 것 같아.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했던 일이 아니고, 가슴이 시키는 일이었어. 진짜 그랬어! 그때 IJ한테 편지 쓸 때가, 새벽에 잠을 자다가 인력거 타는 꿈을 꿔서 일어나서 편지를 쓴 거야!(웃음) 그 새벽에 일어나서 렌턴 키고, '지금 아띠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인력거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고 그렇게 편지를 썼어.  그리고 내가 처음 들어갔을 때가 영상을 많이 찍는 시즌이어서 비디오도 많이 찍고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지. 타이밍이 좋았어. 인력거를 타면 제일 좋은 점은?크게 보면 이 세상이고, 좁게 보면 북촌인 이 곳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나눌 이유가 없잖아. 그런데 내가 인력거를 탔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인력거를 타고서 나중에 내릴 때는 서로 친구가 되는 게 너무 재미있어! 그리고 나중에는 영어 투어의 맛을 알았지.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들이 느끼는 설레는 감정도 느껴지고, 그 사람들한테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기분 좋더라고.  처음 들어왔을 때는 어땠어?사실 처음에 많이 놀랐어. 제일 처음엔 케빈의 압박 면접에 놀랐어. 면접 볼 때 다른 사람이랑 같이 봤는데, 왜 아띠를 하려고 하나라는 질문에 나는 '23년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다. 내가 이렇게 하고 싶으니 좀 뽑아달라'고 말했었거든. 그런데 옆이 있는 친구는 그냥 단순히 돈을 벌려는 개념으로 왔던 거야. 그래서 그 친구는 케빈한테 많이 깨졌었지. 그때 조금 충격을 받았어. 다른 한 번은 생각보다 소통이 잘 안됐다는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어. 그때 내가 함께 하면서 아띠에 도움을 주고 싶었고, 안 좋은 점들은 고쳐나가고 싶다고 느꼈어. 그래서 주 5회로 고정하고 시작하게 됐지. 그래도 아띠만큼 좋은 사내 문화를 가지고 있는 곳은 없다고 생각해. 우리만의 규칙들이 있잖아. 그런 것들은 정말 좋고, 잘 가꿔나갈 필요성이 있는 것 같아. 그리고 아띠에는 경쟁이 없잖아. 어느 회사에 경쟁이 없겠어? 그런데 아띠는 누구 하나가 내가 매출을 적게 벌어왔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남이 나보다 매출을 많이 벌어왔다고 해서 스스로가 못났다라고 생각할 필요도 전혀 없다고 생각해. 다른 라이더들도 그냥 쟤가 운이 좋았구나 라고 생각하고 넘기니까 그런 경쟁이 없는 문화가 좋은 것 같아. 제일 힘들었을 때는?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이번에 추억 때 집에 내려가서 친척들이 모였을 때였어. 학교 잘 다니고 있냐는 질문에 휴학하고 아띠인력거 하고 있다고 대답하니까 다들 그냥 고개만 끄덕이는 분위기였어.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분위기였지.(웃음) 그때 정말 부모님한테 가장 미안하면서 힘들었어. 아띠 나오는 뉴스 보여드리니까 아버지가 그제서야 허락해주시고 응원해주셨었지만, 속으로는 많이 걱정하셨을 거야.  그리고 내가 추석 때 아띠에 예약이 너무 많아서 가족들이랑 끝까지 못 어울리고 일찍 올라왔거든. 아띠는 남들 쉴 때 일하는 서비스업이니까, 남들 쉴 때 못 쉬는 게 좀 힘들더라. 특히 추석 때 다른 가족들은 다같이 다니는 데, 우리 가족들은 부산에 다 있고 나는 부산에서 서울로 혼자 올라와서 있으니까 제일 힘들었지.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을 때는 무릎이 안 좋을 때인데, 정말 좋은 손님을 태웠을 때는 내가 무릎이 아픈지도, 땀이 나는지도 몰라. 라이딩을 마치고 들어오면 그때 알지. 그런데 조금 무례한 손님을 만나거나 내가 하는 이야기에 관심도 없고 왜 인력거를 타는지 모르겠는 느낌을 주는 손님을 만나면 체력적으로 정말 힘들어. 인력거가 앞으로 안 나가는 기분이야. 시간도 안가고. 그런데 좋은 손님들 만나면 1시간, 2시간 정말 금방 가. 어떤 손님이 제일 기억에 남아?어떤 노부부가 있었어. 할아버지께서 오랜 투병생활을 하셨는데, 병원에서 큰 희망이 없으니 할아버지한테 무리하게 치료는 그만하고 집에서 잘 쉬시다가 편히 보내드리자는 결정이 아띠를 타러 오기 하루 전에 났었대. 할아버지는 말씀도 잘 못하시고 거동도 힘드신데, 따님들이 인력거 예약해서 타신 거야. 1시간 동안 투어를 하고나서 할머니는 반응을 보여주셨었는데 할아버지는 말씀도 없으시고 표정 변화도 없으셔서 '재미없으셨나'생각했었거든. 그런데 인력거 투어가 끝나고 할아버지를 내려드리는데, 내 손을 딱 잡으시면서 딸들이 가자고 하시는데 안 가시는 거야. 그러면서 할머니 가방을 손으로 툭툭 치면서 나한테 용돈을 주라고 그러시는 거야. 이미 투어 비용은 지불하셨었는데도 계속 내 손을 안 놓으시면서 안 가시더라고. 그래서 결국 감사하게도 용돈을 조금 받았었어. 그리고 한 일주일 뒤에 그 따님한테서 문자가 왔었어. 할아버지가 편안하게 돌아가셨다고. 그때 나 정말 울었어.  할아버지께서는 오랜 투병생활에 지치셨는데 마지막으로 세상 구경을 나랑 함께 하신 거야. 그때 느낀 게, 우리가 인력거 타면서 정말 많은 손님들을 만나는 만큼 대부분 같은 투어루트를 돌면서 조금 지칠 때가 있어. 그런데 손님에게는 일생에 한번 뿐일 수도 있는 인력거를 타는 기회이고, 누구에게는 생에 마지막으로 세상을 구경하는 기회이고, 어떤 어린 아이에게는 처음 북촌을 구경하는 기회인 거잖아. 그래서 '그런 한 순간, 한 순간을 그 사람한테 정말 헛되이 돌려주면 안되겠구나'라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때 그 할아버지를 통해서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너무 좋아하셨고 만족하셨고 고맙다고 하는 문자를 받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 정말 잊혀지지 않을 손님이야.  그래서 나는 아띠를 버릴 수가 없어!(웃음) 난 지금 내가 아띠에 많이 스며들었다고 생각해. 내 욕심인데, 내가 없으니까 아띠가 안 굴러갔으면 좋겠어! 내가 없는 아띠를 생각하기도 싫어.(웃음) 아띠가 즐거운 순간에 내가 항상 있었으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사실 지금 아일랜드로 6개월간 가는 건데 겁이 안나. 왜냐면 내가 지금 아띠를 6개월 했는데 6개월 전에 처음 서울 올라왔을 때 나한테 아무것도 없었어.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무언가를 하자고 얘기 해주고 이제 잠시 떠난다고 하니까 같이 이런 슬픔을 공유해주는 좋은 가족들이 생긴거야. 딱 6개월이었어.그래서 나는 아일랜드에 가서도 똑같을 거라고 생각해. 어딘가에 던져졌을 때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아. 아무튼 지금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해주는게 아띠인 것처럼, 아띠는 나에게 너무 너무 소중해. 나 스스로도 자아가 성립되는 기간이었어. 나중에 되돌아보면 이렇게 즐겁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던 순간을 꼽으면 지금 요 근래 6개월일 거라고 생각해. 많이 생각날 꺼야, 아띠!자석에 이끌리는 것처럼, 상사병에 걸린 것처럼,아띠를 알게 된 순간부터 인력거와 사랑에 빠진 마린의 러브스토리였습니다!마린이 아띠를 많이 생각하듯, 아띠도 우리 간판 라이더 마린이 많이 생각나네요~ :)아일랜드에서도 마린답게 몸도 마음도 씩씩하게 잘 지내리라 믿습니다.건강히 돌아와 아띠와 다시 즐겁게 라이딩하길 바래봅니다!#아띠라이더스클럽 #팀원소개 #팀원인터뷰 #팀원자랑 #기업문화 #조직문화 #사내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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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아마 4단, 싱어송라이터…이색 신입사원을 만나다[上]

봄이다. 비록 미세먼지가 코끝을 괴롭히지만 완연히 따뜻해진 날씨와 남쪽부터 올라오는 개화 소식이 봄이 왔음을 알려준다. 계절의 시작이 봄이라면 회사원의 봄은 신입사원 때 아닐까? 푸릇푸릇한 새싹처럼 새로운 마음가짐도, 일하며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자 하는 열정도 가득했던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시절. 그래서 준비했다! 이제 입사한 지 반년에서 1년 남짓, 한창 일 배우며 눈망울 초롱초롱한 시기를 겪고 있는 신입 사원들의 이야기를. 첫 번째 편에선 입사 전 각자의 분야에서 열정을 불태워본 경험이 있는 두 사람을 소개한다. “돌 좀 놔드릴까요?”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흑돌과 백돌을 척척 배치하는 손길이 예사롭지 않다. 바둑 문외한의 눈에도 뭔가 규칙이 있는 듯 보였다. 예전 수를 복기하는지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 바둑에도 이른바 ‘교과서’가 있단다. 한국기원을 나선 지 10년이 흘렀지만 수없이 놓던 돌의 자리를 몸이 기억하는 모양이다. 열네 살에 아마 4단증까지 따낸 이수림(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실)씨다.▲해맑은 미소에 안심해선 안 된다. 자칭 ‘바둑 마니아’ 선배 둘을 다면기(多面棋, 바둑에서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상대로 동시에 대국하는 일)로 이기는 실력자이니!중학교 진학 대신 한국기원행(行)… 1년 만에 ‘컴백’“아휴, 부끄러워요. 같이 바둑 배운 동기 중엔 프로 선수가 된 언니∙오빠들도 있거든요.” 손사래를 치지만 아마 4단은 “프로 입단도 가능하다”고 평가 받는 실력이다. 그런 그가 바둑 대신 삼성전자를 택했다. 왜?▲어릴 적 수림씨에게 바둑은 재밌는 놀이였다. 위 오른쪽 사진은 그가 일곱 살 때 시(남양주) 바둑대회에서 받은 인증서“프로 입단을 준비할 생각은 없었어요. 어릴 때 바둑이 배우고 싶어 부모님을 졸라 바둑학원에 등록하고 이후 꾸준히 둬오긴 했지만 성격이 워낙 외향적이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 프로 선수가 맞을 것 같진 않았거든요. 바둑은 조용한 스포츠니까요. 그래도 바둑을 좋아하긴 해서 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고 한때 전문 해설가도 꿈꿨죠.” 바둑 방송에 나오는 캐스터나 해설가가 되려면 바둑을 잘 알아야, 아니 일단 잘 둬야 했다. 중학교 진학 대신 한국기원행(行)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학교 생활을 병행하며 바둑까지 잘 두긴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중학교 대신 기원에 다니기로 했죠. (아마 4단) 단증도 그때 땄고요.” 이후 여덟 달 동안 종일 기원에서 바둑만 뒀다. 처음엔 재밌었다. “꿈을 향해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죄다 절박한 맘으로 프로 기사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뿐이었다. “바둑 연구생은 대부분 프로 입단을 꿈꿔요. 근데 사실 그게 정말 어렵거든요. 입단 시험을 거쳐 프로가 되는 사람 자체가 너무 적고 심지어 나이 제한도 있어요. 그런 분들의 꿈과 제 꿈은 차이가 크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 성격상 조용히 바둑 두는 건 1년이 한계였던 것 같아요, 헤헤.”교환학생 시절 삼성 로고 보며 해외영업맨 꿈 키워그렇게 다시 학교로 돌아왔고, 또래보다 1년 먼저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성적은 중학교 교과 과정 3년을 이수한 동급생에 비해 당연히 뒤처졌다. 전교생이 500명인 학교에서 석차가 300등 밖으로 밀려났다. “바둑 세계를 떠나며 ‘내가 정말 바둑 해설가가 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어릴 때부터 좋아한 일이었는데 중도에 방향을 틀어버린 것도 맘에 걸렸고요.” 목표가 사라지자 의욕도 붕 떴다. 그러던 중 새로운 기회가 왔다. 미국 국립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것.▲수림씨는 1년간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며 잃었던 목표를 다시 찾았다. 위 사진은 당시 친구들과 떠난 여행 도중 호스슈밴드(Horseshoe Band)에서 찍은 것. 아랫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수림씨다“솔직히 공부가 너무 하기 싫었어요(웃음). 교과 과정을 따라잡기가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 와중에 교환학생 기회가 와 덜컥 잡았죠. 미국에서 지내며 예전엔 별 생각 없이 지나쳤던 한국 제품이 너무 사랑스럽게 다가왔어요. 한국 글로벌 기업 제품을 보며 ‘우리나라 것’이라고 말할 때의 뿌듯함이란!” 당시 그의 눈에 제일 자주 들어온 게 ‘삼성’이었다. “정말 그땐 삼성 로고만 봐도 뭉클했어요. ‘제품 하나로도 저렇게 우리나라를 해외에 알릴 수 있구나’ 싶더라고요. 하루는 뉴욕을 방문했는데 타임스퀘어 전면에 삼성 광고가 떡하니 박혀 있는 거예요.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저 회사에서 꼭 일하고 싶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의 일원이 되고야 말겠다!’ 그런 생각을 그때 처음 했던 것 같아요. 교환학생으로 지내는 내내 그 목표를 잊지 않고 있다 귀국했죠.”‘글로벌 기업 입사’란 목표를 세운 수림씨는 무섭게 공부에 집중했다. “고 1 때 성적으론 글로벌 기업에 절대 갈 수 없잖아요(웃음). 정말 그때만큼 열심히 공부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국에 밥 말아 책상으로 가져갔을 정도니까요. 지금 다시 그렇게 하라면 절대 못할 거예요.” 노력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300등 언저리였던 성적은 고 2∙3 때 전교 1등으로 뛰어올랐다. 덕분에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해외 영업 전문가를 꿈꾸며 불어불문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꿈이 이뤄졌다. 삼성전자의 일원이 된 것이다.“삼성전자 제품은 일상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돼 있잖아요. 스마트폰만 해도 눈뜰 때부터 잠들기 전까지 늘 곁에 두고 쓰니까요. 그래서 길 가다 갤럭시 스마트폰 쓰는 사람들만 봐도 뿌듯해요. 특히 해외 출장 가서 접하면 더 벅차죠. ‘오래 꿈꿔온 일을 진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바둑에 대한 미련은 없을까?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아쉽진 않아요. 물론 바둑은 지금도 좋아하죠. 그래도 열정으로 치면 바둑에 매진했던 1년보다 글로벌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했던 고교 시절이 훨씬 컸습니다.”“바둑으로 익힌 역량, 삼성에서 발휘해보고 싶어요”수림씨는 요즘 마음이 분주하다. “배워야 할 게 많아 바쁘긴 하지만 앞으로의 회사 생활이 너무 기대돼요. 지금은 여기저기서 도움을 받기만 하는데 얼른 업무 역량을 쌓아 선배들을 도울 수 있는 후배가 되고 싶어요.” 그의 ‘바둑 사랑’이 끝난 건 물론 아니다. “이래저래 바둑 덕을 많이 봤어요. 회사 선배들과도 바둑 덕에 빨리 친해질 수 있었죠. 바둑은 주어진 상황에서 상대의 수를 예측한 후 그에 맞춰 최선의 수를 두는 게임이에요. 생각해보면 그런 방식은 어떤 일에나 도움이 돼요. 영업 전략도 경쟁사의 수를 보고 ‘우린 어떤 수를 둬야 최선일까?’ 궁리하는 거잖아요. 바둑을 배우며 익힌 제 역량을 잘 살려 언젠가 삼성전자 해외 영업 전략을 세워보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차분하고 따뜻한 음성에 귀가 번쩍 뜨였다. 김대능(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개발실)씨는 그 목소리를 십분 활용,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능라이터’란 이름으로 실제 음반도 냈다. 기타 선율과 잘 어우러지는 그의 노래 ‘너가 지나간 나’는 귀에 쏙쏙 박히는 가사가 일품이다. 경험담이냐고 슬쩍 물어봤더니 웃으며 비밀이란다, 알고 들으면 재미없지 않겠냐며.곡의 영감은 여러 곳에서 얻지만 주로 가사부터 쓴 후 그에 맞춰 곡을 붙인다. “제 삶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간접적으로나마 여러 감정을 느껴보려 노력해요. 드라마나 영화, 책을 보다가 와 닿는 글이나 대사를 발견하면 그에 대한 제 생각이나 느낌을 다시 글로 정리해 ‘삼성 노트’ 애플리케이션에 저장해두곤 하죠.”8년간 독학으로 작곡 공부… ‘능라이터’로 음반 발매곡 소재에 꼭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최근 발표한 ‘starryNstellar’엔 “별이 빛나는 밤에 보고 싶은 너를 생각해”란 가사가 등장한다. 서양미술사를 공부하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1889)에서 영감을 얻어 쓴 곡이다. “그림이 마음에 들어 한참을 보다 고흐가 어떤 기분으로 이걸 그렸을지 궁금해졌어요. 당시 즐겨 보던 드라마 ‘도깨비’(tvN) 여주인공 ‘지은탁’ 대사와 그 질문을 연결시켜 노랫말을 썼죠.” 인상파 화가의 그림과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 전혀 무관해 보이는 둘을 절묘하게 연결시켜 멋진 곡으로 탄생시킨 것이다.▲‘starryNstellar’ 앨범 재킷 사진. 작곡에 영감을 준 고흐 작품 ‘별이 빛나는 밤’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이 인상적이다▲피아노를 좋아하던 소년은 어느덧 전문 작업실에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했다대능씨는 어릴 때부터 음악에 소질을 보였다. 특히 피아노를 좋아해 남들 앞에서도 곧잘 연주했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예술중학교에 가볼까, 고민한 적도 있어요. 결국 일반 중학교를 거쳐 대학에선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음악은 계속하고 싶었죠. 본격적으로 작곡을 해봐야겠다고 결심한 건 스무 살 때부터였을 거예요.”그는 밴드 활동을 한 적도, 음악 동아리에 가입한 적도 없다. 그저 음악이 좋아 8년간 독학으로 공부하고 노래를 만들었다. “그렇게 몇 년 지내다 문득 생각했어요. ‘나도 음반 낼 수 있겠는데?’ 대형 기획사를 거쳐야 음반을 낼 수 있던 시절은 지났으니까요. 사람들에게 제 음악을 들려주고 싶단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만들어둔 곡으로 작업을 시작했지만 편곡부터 믹싱까지 다양한 준비가 필요했다. 꼬박 1년간 준비한 끝에 첫 앨범을 품에 안았다. “결과물 자체는 엄청 뿌듯했지만 막상 발매 시점엔 이미 수백 번씩 부르고 들으며 녹음한 곡이라 그런지 별 감흥이 없더라고요. ‘좀 더 잘 부를 수 있었는데’ 싶은 부분이 들리면 후회도 되고.”(웃음)“카페서 내 노래 들리면 뿌듯… 일도 음악만큼 소중”앨범 발매는 그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겼다. “강남 쪽에서 친구들과 모임이 있었어요. 어디선가 귀에 익은 멜로디가 흘러나오더라고요. 제 노래였죠.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곡 만드는 일은 오래전부터 해와서 그런지 신기하거나 대단하다고 느껴본 적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앨범을 발표한 후 카페나 가게에서 제 노래가 나오고 회사에 들어온 후엔 주변 분들도 좋아해주시니 괜히 뿌듯하고 그랬어요. 특히 제가 모르는 사람이 제 노래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하죠.”▲대능씨는 “음악 작업은 대체로 혼자 조용히 했었는데 회사원이 된 후 무대에 서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고 말했다. 사진은 삼성전자 신입사원 연수 당시 공연 무대에 올랐던 모습앨범까지 낸 그가 가수의 길을 걷는 대신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유는 뭘까? 대능씨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음악을 포기하고 회사를 선택한 게 아니니까요.” 그도 한때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하거나 기획사를 기웃거렸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전공 공부가 적성에 안 맞는 것도 아니고 지금껏 전공과 음악 둘 다 잘해왔잖아.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좋아하는 음악도 병행할 수 있지 않을까?’대능씨가 삼성전자에 입사한 건 지난해. 하지만 1년가량 태스크포스(TF)에서 근무한 탓에 지금 부서에 배치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실무 능력으로만 따지면 말 그대로 ‘신입’이에요. 다행히 선배님들께서 업무를 잘 알려주셔서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엔지니어가 정말 많거든요. 일을 배우는 입장에선 정말 감사한 일이죠.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모인 곳에서 일하고 있단 게 자랑스러워요. 취업을 준비 중인 후배들에게도 ‘꼭 열심히 해서 우리 회사 오라’고 추천 많이 합니다.”“혼자서 차근차근 음반 냈듯 일에서도 답 찾아갈 것”대능씨에 따르면 음악과 일은 다른 듯 닮았다. “제가 작곡을 독학했잖아요. 아무리 악기를 다룰 줄 안다 해도 컴퓨터로 곡 작업을 하는 건 또 전혀 다른 차원이거든요. 기껏 만들어놔도 막상 들어보면 생각한 것과 너무 달라 좌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회사 일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모르는 게 많아 막막하죠. 주변에서 많이들 도와주시지만 결국 잘해내려면 저 스스로 어떻게든 부딪쳐봐야 하니까요. 막막함을 이겨내고 음반 내는 데 성공했던 것처럼 일에서도 하나씩 답을 찾아가보려 합니다.”#삼성 #삼성전자 #구성원인터뷰 #기업문화 #사내문화 #조직문화 #신입사원 #임직원 #이색신입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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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함께 고민하는 것일 뿐

요즘 어쩌다 보니 다양한 배경의 분들에게 조언을 해야 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지인을 통해 창업에 관한 아이디어가 있는데 가능할만한 아이템인지 조언을 부탁한다고 메일을 보내주셨고요. 고등학교에 스트레스 특강을 갔는데 졸업생인 친구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전공이 맞지 않아 고민이라며 제 얘기를 듣고 싶다고 찾아왔었어요. 오랜만에 만난 대표님께서는 지금 하는 일을 어떻게 더 잘 지속할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으셨고, 다른 대표님은 지금 하는 일과 다른 일을 새롭게 시작해보려는데 의견을 듣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배경도 내용도 다르지만 깊이는 경중을 따질 수 없는 각각의 고민들을 들으며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해야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고민 1. 창업 아이디어본인이 생각한 아이디어가 과연 전망이 있을지를 가장 궁금해하셨는데요. 제 사업의 첫 시작이었던 분노캔들 펀딩 할 때로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보니 저도 같은 두려움 속에서 펀딩 오픈 날짜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이게 과연 팔릴까?나만 좋아하는 걸 만든 건 아니겠지...?만드는 것까지는 신나서 했는데, 막상 세상에 내놓으려고 하니 겁이 났습니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고민을 하며 끙끙대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오픈을 하게 되었고, 그 시작이 지금의 스트레스컴퍼니를 만들게 해 주었습니다. 2013년에 진행했었던 분노캔들 펀딩 성공! 고맙습니다. 후원자 여러분,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사실 상품이 시장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시장에 내놓아야만 알 수 있습니다. 모두가 안될 거라고 하는 상품도 히트할 수 있고, 모두가 될 거라고 장담하던 상품도 망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많은 사례들을 듣고 보아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창업을 시작할 때나 상품을 만들고 싶을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부분은 시장성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바로...자신이 그 아이템에얼마나 애정을 갖고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사람들은 원래 찬성보다 반대를 더 많이 합니다. 제가 분노캔들을 만들 때도 그랬습니다. 손으로 만들어서 어떻게 돈을 버냐며 공장에서 찍어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많은 반대에 부딪혔었지요... 또르르.. 그래서 시장성만 가지고 아이템에 접근하게 되면 반대에 부딪혔을 때 “아.. 이건 안 되는 거 구나.” 하고 포기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 아이템에 애정이 있고 확신이 있다면, 그 아이템이 어떻게든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그래서 그 아이템이 정말로 필요하다고 믿는다면, 그 아이템이 전망이 있느냐보다 나는 그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그리고 끈기 있게 꾸준히 만들 수 있을지를 더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가능한 방향으로 계속해서 바꿔나가면서 될 때까지 하게 될 테니까요.저 또한 분노캔들이 지금처럼 교육용으로 활용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분노캔들을 보고 재밌다고는 하지만 정작 사지는 않고, 전부 다 혼자서 손으로 만들다 보니 힘에 부치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절망했지만 그 아이템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내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고,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찾은 돌파구는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니, 사람들이 그렇게 반대한 이유였던 손으로 제작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사람들과 분노캔들을 함께 만드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완제품 분노캔들은 DIY 상품으로 진화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분들의 스트레스를 태워주는 도구로 학교, 기업, 단체 등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제가 그때 사람들의 반대에 굴복했다면, 지금과 같은 미래는 없었겠지요. 그러니 사람들이 반대한다고 해도, 반응이 없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아이템을 성장시킬 기회로 만들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자신의 분노를 담아 직접 만드는 분노캔들 DIY KIT그리고 혹시나 아이템을 생각만 해봤지 실제로 제작해본 경험이 없다면, 첫 시작은 저처럼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제작해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생각만 하는 것과 실제로 만드는 것은 정.말.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이디어가 정말 실현될 수 있는 것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그렇게 프로토타입을 제작해본 후, 자신의 타겟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많은 피드백을 받으세요. 그것이 가장 정확한 조언이 될 것입니다.고민 2. 하고 싶은 것과 맞지 않는 전공 미대생인 이 친구는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학교에서 디자인 전공을 하고 있었으나, 정작 자신이 원하는 일은 다른 분야라서 그것을 위해 전과를 하거나 다른 학교를 편입하는 것까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20대 초반의 나이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았다는 것은 정말 행운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향해 남들보다 더 빨리 걸어갈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빨리 결정한 만큼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꼭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지금 관심이 없는 것이라고 해서 무시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꿈이 바뀌어버리면, 그때 배워둘걸 하고 땅을 치고 후회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꿈은 그렇게 쉽게 바뀔 수도 있습니다. 저는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혼자서 회사를 만들고 모든 상품들을 직접 디자인하며 지금까지 이끌어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만들고 싶은 것을 직접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대학생들을 만나면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이 잘하는 것으로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데요. 특히나 디자인 전공은 학교에서 다양한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지금 하고 싶은 것과는 다르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배워두면,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정말 알차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예를 들어, 나는 퍼스널 컬러에 관심이 있고 사람들을 변화시켜주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면, 타이포그래피나 광고디자인은 나와 관련이 없는 내용 같아서 쓸데없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수업보다는 조금이라도 내 관심사와 연결되어 있는 색채학이나 패션 관련 수업을 더 듣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더 맞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이포그래피나 광고 디자인은 디자인의 기본이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던 자신을 제대로 소개할 명함과 리플릿을 만드는 것은 필수입니다. 그럴 때 타이포그래피와 광고디자인을 배워둔 것은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눈앞에 닥쳐있는 상황만 보이겠지만, 5년 뒤, 10년 뒤에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며 더 길게 그리고 천천히 준비하시면 좋겠습니다.네, 이것 모두 다 제가 디자인했습니다. 헤헷그리고 어떤 일을 하던 실력을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요. 하고 싶은 일을 찾았으나 경험이 짧다 보니 내 생각이 맞는 것인지 확인도 하고 싶고 그러나 돈을 받고 할 수 있는 실력은 아닌 것 같아서 시도하는 것이 두렵게 느껴진다면, 지인들 대상으로 테스트를 해본 뒤에 자신의 상황을 오픈하고 무료로 받을 사람들을 모집해서 그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편한 SNS를 골라서 그 과정을 꾸준히 기록하세요. 무엇이든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게 쌓인 기록들은 자신의 일을 만들어가는 데 가장 큰 자산이 되어줄 것입니다.저는그저 함께 고민하는 것일 뿐사람은 결국 자기가 경험한 만큼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 이야기에는 모두 “저의 경험에 비추어보면”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제가 많이 경험해봤다한들 그것은 저의 경우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상황이 펼쳐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저 함께 고민하는 것일 뿐, 정답은 당신만이 알고 있습니다. 누가 뭐라 하던 당신 마음속에서 들리는 소리를 따라가시길 바랍니다. :-) 작게나마 저의 시간을 들여 고민을 함께 나눴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기를 바라며, 다음 두 가지 고민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겠습니다.혹시나 당신에 고민에 대한 저의 생각을 듣고 싶으시다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브런치 글을 통해 답장을 보내드리겠습니다. my@stresscompany.net스트레스컴퍼니는 당신과 나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당신이 스트레스에 굴복하지 않고, 즐겁게 극복할 수 있도록 세상에 없던 상품을 만들고활용해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9월 모임 일정 안내 링크 www.stresscompany.net 스트레스컴퍼니의 모든 상품은 스트레스컴퍼니샵에서 구매 가능합니다.ⓒ스트레스컴퍼니 -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스트레스컴퍼니 #심리스타트업 #스트레스관리 #서비스소개 #제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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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1

창업자 인터뷰 – 첫 창업설 연휴가 끝난 2월의 어느 날, 옐로모바일 사무실 내 까페인 '클럽옐로'의 한 미팅 룸에서 이상혁 대표를 마주했습니다. “나는 수줍은 사람입니다”라는 오프닝으로 시작된 옐로모바일의 공식 블로그. 그 첫 컨텐츠로 이 회사의 창업자인 이상혁 대표의 인터뷰를 싣기 위해서였습니다. 2시간여 동안 진행된 대담은 생각보다 흥미진진했습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이어진 대화였지만, 높고 낮은 굴곡이 있었고, 좌절과 희망이 보였습니다. 긴 대화를 마치고 나자 바로 떠오른 제목이 바로 “나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였습니다.완벽하기는커녕,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이 대표의 실패와 시행착오로 가득 찬 인생 이야기를 지금 여러분께 전해드리고자 합니다.바쁜 여러분을 위한 Y의 다섯 문장 요약!!1. 창업은 상상도 못했던 대학생, 교수가 되고자 대학원에 갔으나 세미나 발표를 잘 못한다고 교수님이 세미나 중에 나가버리셨다?2. 석사 졸업하고 처음 시작한 직장 생활, 일을 못 해 첫 인사고과 'D'의 충격3.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 첫 창업, 처음엔 잘 나가는 듯 했으나 수년 뒤 회사 존폐 위기4. 7년 만의 피벗 (Pivot) 결정, 통장 잔고 200만원의 순간 수십억 원대 투자 유치5. 2년 후 마침내 이룬 흑자 전환, 그러나 근심 걱정은 이어지고대표님 안녕하세요, 사내기자 Y입니다.반갑습니다. Y라니, 뭔가 007 영화의 코드네임 같네요.하하 그런가요? 실은 옐로모바일 (Yello Mobile)의 앞 글자이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왜(Why)”를 묻고 의미를 찾아보잔 뜻에서 지어본 이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인간 이상혁이 왜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되었는지를 파헤쳐보려고 합니다.파헤치실 것 까지야… 조금 긴장되네요ㅎ해치지 않습니다  그럼 과거로 돌아가서 시작을 해볼까 해요. 옐로모바일이 두 번째 창업으로 알고 있는데요, 학생 때부터 창업을 계획하셨나요?전혀요. 전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며 나름 학점도 잘 받고 했지만,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감을 잡기 어려웠어요. 깊은 고민 끝에 내렸던 결론은, ‘어떤 것을 정리해서 남에게 설명하는 것에는 조금 자신이 있다, 하지만 큰 무리 앞에 나서는 것은 자신 없다, 그러니 교수가 되는 것에 도전해보자’ 였습니다.교수요? 묘하게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한데요?그런가요?그 당시를 회고해보면, 인터넷이 처음 생기고 한창 홈페이지라는 것이 유행하던 때 였어요. 이 때 창업해서 인터넷과 게임 사업을 했던 동기들이 오늘날 대한민국 대표 IT 기업들을 이끌게 되었죠. 하지만 전 스스로가 창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오죽했으면 오프닝 에서 보셨듯이 제 이모님께서 기사를 보시고 “이 상혁이가 우리 상혁이냐”는 말씀을 하셨겠어요ㅎㅎ 아무튼, 교수가 되기 위해선 학위가 필요했고, 그래서 대학원에 가 마케팅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주마다 논문을 읽고, 교수님과 선배들 앞에서 세미나 발표를 하는 것이 진짜 고역이었어요. 스스로 발표를 못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매 번의 세미나는 제게 공포의 순간으로 다가왔죠. 심지어 제가 발표를 너무 못한다며 교수님께서 중간에 나가버리신 적도 있었어요. 그렇게 2년이 지나자 그래도 어딜 가서 발표 못한다는 얘기는 더 이상 듣지 않게 된 것 같아요.당시 교수님께서도 지금의 대표님을 보시면 꽤나 놀라시겠어요ㅎㅎ 계속해서 박사 공부는 안 하셨나요?당연히 박사 학위가 필요했고, 이왕 하는 것 미국 아이비리그에 도전해보고 싶단 생각이 있었어요. 하지만 미국 학교는 학비가 훨씬 비쌌고,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재정적으로 손을 벌릴 곳도 없었기 때문에, 학비 마련을 위해 직장 생활을 시작해야 했어요. 군 문제도 해결해야 했고요. 그래서 석사 졸업 후 삼성SDS 정보기술 연구소에서 3년간 근무하게 되었어요. 무려 개발 직군으로요.개발이요? 경영학과에 마케팅 석사셨는데요?그래서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어요. 물론 기본적인 개발은 배운 적이 있었지만, 서울대나 카이스트 전산과 출신 친구들 틈바구니에서 IT 개발 업무를 할 때의 자괴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죠. 처음 몇 달을 떠올리면 네 글자가 떠올라요. 월.급.루.팡.월급루팡이라니... 웃프네요ㅜㅠ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첫 인사평가에서 D를 받았어요. D를 두 번 받으면 나가라는 소리라고 하더라고요. 큰 충격을 받고 ‘살아남아야 한다’라는 일념 하에 선배, 동기들을 괴롭혀가며 밤새 개발 공부에 매달렸어요. 그렇게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여전히 동기들보다는 못 했지만 그래도 월급루팡 신세는 모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음 고과에서 B를 받았거든요. :)진땀 나는 6개월이었겠어요정말 그랬죠. 실은 살면서 학업 등에 있어 한 번도 실패를 맛보거나 뒤쳐진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제 부족함을 마주했을 때의 충격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그 충격 가운데서 얻은 중요한 깨달음이 몇 가지 있었어요. 하나는, ‘내가 남보다 못할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내가 경험하지 못한 영역의 선배들, 능력자들과 경쟁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요. 거기서 이어진 두 번째 교훈은 ’이 세상에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 수많은 분들께 도움을 받으면서 그 동안 내 공부, 내 일만 신경 썼던 스스로가 많이 창피했어요. 세상은 서로 도우면서 성장하는 곳이라는 것을 체감하면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시기였죠.지금 이 자리를 빌어 그 당시 사수였던 류대선 선배님과 동기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네요ㅎㅎ영상메시지라도…?그런 건 부끄러워서 싫어요….ㅠㅠ네 알겠습니다ㅋㅋ 그럼 그 이후 박사 진학을 하셨나요?아니에요. IT 회사에서 팀원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새로운 재미를 느끼기도 했고, 당시 한메일, 네이버 같은 국민 서비스들을 보면서 새로운 도전에 눈을 뜨게 되었어요. 나도 창업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인터넷 경매 서비스 사업 계획서를 만들어 조언을 구하고자 KAIST 교수님을 찾아 뵈었다가 연구실 선배를 만났고, 그 때 함께 창업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믿고 신뢰하던 선배들과 창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떴고, 1998년 9월, 5명의 창업멤버 중 막내로 시작했던 회사가 디엠에스랩이었죠.교수에서 창업가라, 뭔가 급선회한 느낌인데요, 사업 아이템이 무엇이었나요? 게임? 인터넷 서비스?동기들이 인터넷이나 게임 관련 사업을 했을 때, 저희가 택했던 것은 SI (System Integration) 컨설팅이었어요. CRM 전략 컨설팅 및 관련 시스템 구축업무가 핵심이었죠. 명백히 보이는 시장을 공략하고자 했던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컨설팅이라… 그럼 주로 어떤 업무를 하셨나요? 개발? 영업?작은 벤처에 제대로 된 업무 정의가 어디 있겠어요. 제안서를 쓰고, 선배들 따라다니며 제안 발표를 하고, 영업을 통해 프로젝트가 수주되면 프로젝트 관리를 하고, 산출물을 만들어 결과 발표도 하고… 필요한 모든 업무에 함께했죠.지금까지의 경험과는 또 다른 종류의 일들이었을 것 같은데요?그렇긴 했지만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 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 함정이지만요. 막상 부딪혀 보니,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외람된 말씀이지만, 능력자 이미지와는 거리가 조금 멀었네요…하하하 맞아요. 선배들이 옆에 앉아 불러주는 것들을 파워포인트로 정리하며 제안서를 썼어요. 그리고 대기업 경영진 앞에서 발표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발표는 조금 한다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죠. 수준 자체가 달랐어요. 그렇게 발표를 잘 했다고 수주가 되는 것은 또 아니었어요. 계약을 성사시키기까지 고객사 실무자, 팀장, 경영진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며 확신을 주는 과정도 결코 만만치 않았죠. 프로젝트가 시작돼도 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늘어가는 새치에 한숨도 많이 쉬었던 것 같아요ㅎㅎ 이 과정을 7년 동안 계속했어요.7년씩이나요?네. 실은 그렇게 오래 할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많이 힘들기도 했고요. 그래도 제게는 엄청난 배움의 시간들이었어요. 생각하는 것을 말로 잘 풀어내고, 이를 다시 글로 잘 정리하는 것을 배웠고, 사람의 마음을 사는 영업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프로젝트 관리를 하면서 발생하는 수많은 이슈들을 어떻게 하면 잘 해결할 수 있는지 등등.그 정도 시간이면 사업이 많이 성장했겠어요.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그렇게 될 줄 알았어요. 근데 실상은 그렇지 못 했죠. 초기에는 연간 몇 억 원의 흑자가 났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경쟁이 치열해지고, 저가 수주 때문에 수익성이 떨어졌어요. 더 시간이 흐르니 고객사의 수요가 줄고, 심지어 우리 직원들이 고객사로 이직하면서 우리는 단순한 외주업체로 전락하게 되는 과정을 보았죠.엄청 심각한 상황으로 들리는데요?맞아요. 이 때 깨달은 것이, 명함과 회사 홈페이지를 만들고 힘차게 시작한 사업을 유지하는 것이 정말 힘들다는 것이었어요. 사업을 통해 흑자를 내는 것도 힘들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더 힘들구나. 이래서 많은 비즈니스의 라이프사이클이 길지 않구나. 경쟁환경, 시장환경이 변하니 많은 회사들이 망하는구나…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답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피벗 (Pivot)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다른 기업을 위해 컨설팅 하는 것은 그만하고, 우리 사업을 하자고 말이에요.7년 차에 피벗이요? 절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정말이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낮에는 기존 사업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돈을 벌고, 밤에는 신규 사업을 계획했어요. 하지만 신규 사업이라는 것이 밤에 짬을 내어 고민하고 준비한다고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결국 어느 날 기존 사업의 프로젝트 수주를 중단했어요. 회사 자금도 거의 바닥난 상태에서 말이죠. 당시 대표이사였던 현진석 대표님이 급여 만드느라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고생해주신 덕분에 저희는 신규 사업을 만들어가는데 집중할 수 있었어요.엄청난 결단이었네요. 그렇게 해서 신규 사업은 무사히 시작할 수 있었나요?결국 시작한 사업이 마이원카드라고, 지갑에 다수의 포인트카드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손쉽게 포인트를 적립해 주는 서비스였어요. 지금의 시럽과 유사한.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수십억 원의 투자 유치를 받아 회사가 기사회생할 수 있었죠. 투자 유치 직전 통장 잔고가 200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해요.드라마가 따로 없네요. 그래도 덕분에 새로운 도전의 장을 열 수 있었겠어요.그랬죠. 투자 유치 과정에서 대주주가 외부 주주로 바뀌었고, 어떻게 하다 보니 창업 멤버 막내였던 제가 대표이사가 되어 있었어요. 이 때 처음으로 ‘대표’라는 자리의 막중함을 깨달았던 것 같아요. 지분 3~4%의 대표이사였고, 중간 중간 좋은 이직 제안들도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고 더욱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죠. 제게는 젊음을 바친 사업이었고, 제 분신과도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2년 간의 적자가 이어지고 투자금을 거의 소진해갈 무렵, 마침내 흑자 전환에 성공할 수 있었어요.거의 10년 가까이 첫 사업을 하시면서 우여곡절이 많으셨을 텐데, 가장 크게 느낀 점이 있다면?하나를 꼽긴 어렵지만, 그래도 가장 크게 고생하고 깨달은 것이 있다면 바로 ‘사람’.이룬 것이 많지 않은 작은 회사가 직원을 뽑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지금도 많은 중소 기업 대표님들께서 갖고 계신 고민이겠지만, 마치 제가 인터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를 당하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하나 하나 공들여 채용한 직원들이 어느 날 불쑥 찾아와 “우리 회사는 비전이 뭐에요?”라고 따지면서 묻거나, 회식 자리에서 불만을 토로하며 하소연할 때, 대표이사로서 대답이 참 궁색해서 정말 많이 미안했죠. 하지만 더 힘들었던 것은 정들었던 직원들이 하나 둘 대기업이나 다른 회사로 떠나가는 일이었어요. 축하할 일이었지만 한 편으로는 상처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서운함 보다는 그 친구들을 붙잡을 수 없는 회사라는 자괴감이 더 컸어요. 결혼하고 가정이 생긴 친구들에게 월급도 많이 올려주지 못했고, 복리후생도 변변치 못했으니까요.이 때 배운 정말로 소중한 것은, 창업자는 멋진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비전이 비전으로만 끝나서는 절대 안되고, 무조건 사업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해야 함께 해준 소중한 직원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생기니까요. 시장 환경, 경쟁 환경을 탓할 수 있을 만큼 창업자의 책임은 가볍지 않더라고요.어수룩했던 창업의 준비기부터 치열했던 10년간의 첫 창업 속 좌절과 성공까지, 이상혁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 Y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지만, 분량 조절을 위하여 이 이후 이어진 첫 사업의 매각, 인수 회사에서의 새로운 도전, 그리고 옐로모바일의 창업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짧지 않은 첫 이야기, 재미있게 읽히셨기를 바라며, 저는 다음 이야기로 찾아 뵙겠습니다. Y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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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CUT의 탄생, 그 모든 이야기

기술의 시대입니다. 우리의 몸과 생각이 닿는 모든 곳들에 기술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작은 것들에도 기술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금융도 마찬가지입니다. 핀테크라 부르는 금융의 새로운 시류는 금융의 판을 바꾸고 다양한 산업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저희 비욘드플랫폼 또한 핀테크의 흐름을 타고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전통적인 금융 구조에서 거대 기업과 시스템이 흡수하던 금융의 열매를 사람에게 나눠주고자 합니다. 다양한 방식으로요. 금융의 판을 새로 짜고자 합니다. 그래서 기존의 플랫폼을 넘어서는 새로운 플랫폼이라는 의미로 기업명을 '비욘드플랫폼(Beyond the platform)'이라고 지었습니다. 자, 이제부터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할 기회를 갖고, 또 조금이라도 우리를 궁금해하는 어떤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의 첫 서비스, 30CUT한글로 써티컷이라고 읽는 30CUT은 P2P(Peer to Peer) 금융 플랫폼입니다. 비욘드플랫폼의 첫 프로젝트이자 첫 서비스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금융이라는 뜻의 P2P 금융은 말 그대로 돈이 필요한 사람과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을 연결해 상호 간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빌리는 사람은 더 적은 이자를 내고 빌려주는 사람은 더 많은 투자 수익을 받음으로써 시장 참여자의 이익을 최대화합니다. 써티컷은 이들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써 양 쪽이 원활하고 안전한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중간자 역할을 하고요. Peer가 꼭 개인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관이 될 수도 있습니다. P2P의 핵심은 Peer의 주체가 아니라 '어떻게 시장 참여자의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느냐'이거든요. 대출자의 이자가 줄어드는 동시에 투자자의 수익이 늘어날 수 있다면 P2P의 정신을 실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써티컷은 이러한 P2P의 정신을 철저히 고수하면서 더 안전하고 더 효율적으로 이익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아왔습니다. 힘이 듭니다, 그래도 대충 갈 순 없습니다사실 써티컷은 아직도 론칭을 못했습니다. 작년 10월에 회사를 설립했으니 첫 서비스를 론칭하는데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아니, 10월에는 론칭된다는 가정 하에 1년입니다. 더 걸릴 수도 있겠죠. 사실 쉬운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여느 P2P 기업들처럼 대부업 자회사를 설립하고 개인투자자들을 받으면 당장이라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금융 당국과 얼굴을 붉힐 일도, 사기가 아니냐는 고개들의 항의를 받을 일도, 그리고 직원들이 이렇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일도 없었겠지요. 하지만 종착점을 잃으면 우리의 정체성도 사라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비욘드플랫폼의 목적은 '기존의 금융을 넘어선 새로운 금융'이고 써티컷의 모토는 '빚의 악순환을 끊다'입니다. P2P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래 걸려도 뚝심 있게 하나하나 말뚝을 박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비바람에도 날아가지 않을 집이 완성되겠죠.  카드이자 30% 인하 프로젝트: 4가지 포인트그렇게 하나하나 박은 말뚝은 모두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입니다. 신용카드 대출이자를 30% 낮춰준다그리고 이 목표는 다음 네 가지 중요한 특징을 기반으로 달성될 것입니다. 첫째, 써티컷은 은행제휴 P2P입니다. 지난 2월 NH농협은행과 제휴를 맺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은행제휴 P2P이고 시중은행 중에는 첫 번째입니다. 은행이 투자금을 관리하고 대출을 내보내기 때문에 써티컷 대출은 은행 대출로 분류됩니다. 기존의 P2P 대출이 대부업 자회사를 통해서 대출과 투자를 집행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은행제휴는 엄청난 플러스 요인입니다. 기존에 카드론 같은 제2금융권 대출을 쓰던 분들이 제1금융권 대출인 써티컷으로 갈아타면 신용등급이 상승될 수 있거든요. 신용등급이 올라가면 금융생활의 장벽이 낮아집니다. 높은 금리의 제2금융권 대출을 이용하지 않고 보다 좋은 조건의 제1금융권 사용이 가능해지게 되니까요. 안정적인 금융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둘째, 대환대출만을 합니다. 신규대출은 취급하지 않습니다. 앞서 써티컷의 모토가 '빚의 악순환을 끊다'라고 말씀드렸죠. 가계부채 1400조 시대, 대출 광고가 넘쳐나는 '빚 권하는 사회'가 되고 있지만 저희의 신념은 변하지 않습니다. 써티컷은 빚의 증가가 아니라 감소를 추구하기 때문에 또 다른 대출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셋째, 신용카드대출에 집중합니다. 써티컷의 대환대출 대상자는 신용카드대출(현금서비스, 카드론, 리볼빙)을 사용하시는 분들에 제한됩니다. 이 부분은 비욘드플랫폼의 탄생 스토리와도 깊게 연관되는데요. 오랜 기간 회계법인에서 서민금융을 담당했던 서준섭 대표님은 빚에 허덕이는 수많은 분들을 보셨다고 해요. 그런데 빚이 많아 부채탕감을 위한 국가 프로그램까지 오신 분들의 대부분은 카드론에서 빚의 악순환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카드론을 갚지 못해 캐피털에 손을 대고 대부업 대출까지 이용하신 분들 중 많은 분들이 파산신청을 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대표님은 카드론에서 그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답니다.물론 언제까지나 신용카드대출만 대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추후에 저축은행/캐피털, 대부업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고자 준비 중입니다.넷째, 기관투자자가 참여합니다. 저희가 론칭을 못하고 난항을 겪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개인들이 투자를 하는 다른 P2P 금융 플랫폼과는 다르게 저희는 기관이 투자합니다. 이는 써티컷이 대부업 기반이 아니라 은행을 여신 기관으로 두고 있기에 가능합니다. 왜 기관투자자 모델을 추구하는지에 대해서는 하나의 단독 브런치로 게재할 예정입니다만, 간단히 말씀을 드리자면 '첫째, 전문적인 투자 리스크 관리가 어려운 개인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둘째, P2P 시장의 보다 안정적이고 건실한 성장을 위해서'입니다. 긴 이야기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할 이야기가 많은데, 한 페이지로 풀어내려니 쉽지 않습니다. 써티컷이 만들어 갈 한 권의 책에 대한 프롤로그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앞으로 비욘드플랫폼의 철학, 써티컷의 비즈니스, 업계 인사이트, 그리고 비욘드플랫폼을 만드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응원해 주세요. #비욘드플랫폼서비스 #써티컷 #30CUT #서비스소개 #인사이트 #경험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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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몽팀 대학에 가다!] 재능마켓 크몽의 대학홍보활동기 :)

안녕하세요 :)크몽의 김말이입니다.즐거운 설 명절을 보내셨나요? 크몽팀 역시 즐거운 설 명절을 보내고 삼실로 돌아와 업무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이번 설 명절을 앞두고 크몽팀이 가장 박차를 가했던 프로모션은 역시대학교를 방문해 포스터를 붙이고 학교 내에 있는 창업보육센터에 손수 만든 브로셔를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크몽팀이 손수 만든 브로셔, 포스터는 봄을 맞아 화사하고 발랄하게! 그리고 크몽의 색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노란색으로 정해졌어요.무엇보다 판매자들과 구매자들의 구미를 당길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해서한 눈에 확 들어올 수 있도록 명도 조절을 했답니다.거침없는 카피와 재능마켓이라는 언밸런스한 조화때문인지학교에 계신 관계자 분들과 학생분들이 주의깊게 봐주셨어요. :) 다양한 시도를 하는 크몽팀의 이야기를 들어보실까요! *3일동안의 스토리가 섞여있을 수 있습니다. 동에번쩍서에번쩍 주의*▒▒▒▒▒▒▒▒▒▒▒▒▒▒▒▒▒▒▒▒▒▒▒▒▒▒▒▒▒▒▒▒▒▒★처음엔 숙명여자대학교로 출발~★ 먼저 숙대를 방문했었습니다. 각선미를 자랑하고 계시는 김낙수(Lux Kim)님께서 의기양양한 표정입니다.유달리 추웠던 프로모션 기간동안 압구정 패션을 고수하며유유히 포스터를 붙이던 그녀가 존경스럽네요.2000장의 포스터 중 프로모션 기간 4일동안 붙였던 포스터는 무려 200장!각 대학의 곳곳에 크몽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으면서 많은 분들의 시선을 끌었어요.크몽팀은 각 학교 내의 창업보육센터와 학사협력처 등을 돌면서 포스터와 브로셔를 배치해도 된다는 허가를 받은 후 정식으로 돌리기 시작했답니다.절대로 절대로 불법난입  해서 마구 붙인게 아니니 오해는 NO NO~ 창업보육센터 게시판, 동아리 외벽, 담장 외벽, 복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학교 동아리의 포스터들이 붙은 곳이면 옆에 살포시 붙이면서묻어가기 신공! 데헷 한국어 교원 양성과정 포스터 바로 옆에슥 붙여줍니다. 엘리베이터 옆이어서 잘 보여요~  역시 학교 게시판에는 다양한 형태의 포스터가 많이 붙는데요.글이 많은 정보성 포스터 사이에 그림이 딱!!!!!!! 강조된 크몽의 포스터가 붙으니눈에 잘 띄고 좋아요 :)  숙명여대 미술대학 앞 별관으로 가는 길에도 챡!! 오전 내내 바람을 뚫고 포스터와 브로셔를 돌린 자들에게주어지는 상장은 맛난 점심을!!!!!!!  .........어?아무튼, 후룩후룩 점심을 드시고 다시! ▒▒▒▒▒▒▒▒▒▒▒▒▒▒▒▒▒▒▒▒▒▒▒▒▒▒▒▒▒▒▒▒▒▒★이번엔 동국대로 출발~★동국대는 크몽팀에 졸업하신 분이 있어서 신나게 돌아다니신 R님 간만에 스님들도 많이 보고 좋았다고 합니다. 수...숭정전.....경희궁.....멋있다... 대학교의 위엄이란...! 동국대학교 역시 창업보육센터를 먼저 들러서도장과 허가를 받은 후 포스터를 붙이기 시작했어요. 쿵! 슥삭슥삭   동국대 창업보육센터 벽면은 어쩐지 썰렁한 듯 하지만 나름 벽면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방학기간인지라 소량의 포스터만 붙어있어서 조금 아쉬웠다는 점이 흠! 3월에 재 프로모션을 진행할 때는 보다 활발하고 액티브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 아무도...아무도 없어요?Anybody here?hellllllllooo~~~~하지만 굴하지 않고, 다음 장소로 출발! 동국대 후문입니다.방학기간에는 포스터들의 기간이 모두 끝나 경비아저씨나 게시판 담당자께서포스터를 모두 수거해가시는 듯 싶었어요. :0.....때문에 덩그러니...크몽이...!어...어쩌면 크몽이 확 눈에 띌 수 있는 기회인지 몰라!  (초긍정)▒▒▒▒▒▒▒▒▒▒▒▒▒▒▒▒▒▒▒▒▒▒▒▒▒▒▒▒▒▒▒▒▒▒★세번째엔 경희대로 출발~★경희대는 졸업식! 우앙 졸업을 축하드려염 포스터 하나씩 받아가시고학사합력처와 창업보육센터를 지나 슥삭슥삭 붙이고!베일님이 신나했다고 합니다. 왕 우리학교당 우리학교 ㅋㅋㅋㅋ 그리고 정문을 지나자 점점 인적이 없어지네요.하지만 우리는 포스터를 포기할 순 없어요. 누구 없어요?누군가는 보겠지 싶어서 붙여놓은 포스터.허락을 구하면서도 크몽팀을 오히려 응원해준 경희대 창업보육센터 직원분들 감사합니다.  3월 개강까지 쭉 붙여주세요!!! 붙이고 후다닭 테이프보다는 압정방식을 선호하시는 내부 게시판압정을 모두 소진하는 기량을 보이는 로빈님과 루나님 바깥에는 붙였다 떼기쉽도록 테이프를 사용했어요. 경희대학교도 완료! 여기저기 붙이면서 사람들과 인사하고 즐거워한 크몽팀 우리를 알아봐주세요!!!  ▒▒▒▒▒▒▒▒▒▒▒▒▒▒▒▒▒▒▒▒▒▒▒▒▒▒▒▒▒▒▒▒▒▒★고려대학교로 출발~★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의 크기에 놀란 크몽팀  헐 한번 돌면 다리에 힘 풀릴지도.....하지만 해봅니다....도전....햇살이 따숩네염 아무도 없는 고려대학교 교정 흑흡 하지만 3월에 올 학생들을 위해 붙여주는 센스  고려대학교 학사지원부의 허가를 통해 찰싹찰싹 붙인 포스터!   그리고 고려대학교 팜플렛에 크몽의 브로셔를 끼워두었어요.   고려대를 간 날은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어서오프라인 마케팅 팀이 매우 고생고생 하심 그래두 안암캠퍼스 잘 구경하고 꼼꼼히 일하고 돌아왔으니 다행이에요! ▒▒▒▒▒▒▒▒▒▒▒▒▒▒▒▒▒▒▒▒▒▒▒▒▒▒▒▒▒▒▒▒▒▒★이화여자대학교도 출발~★ 우오오 이곳은 이화여자대학교 창업보육센터 영롱하다 영롱해이화여대는 깔끔하고 깨끗한 이미지가 강한 학교였어요.여대여서 그런지 굉장히 정갈한 게시판과 교내 때문에 모두들 감동받았다능 심지어 창업보육센터가 매우 광활한(!)평수를 자랑하는 자리여서강남의 사무실을 버리고 신촌으로 이사를 가고 싶었을 정도였습니다 깔끔하고 깨끗한 이화여대의 게시판자석으로 챡챡 붙이게 되어있어서 간편하게 포스터를 붙이고 돌아올 수 있었답니다. 좋아! 이화여대도 완성! :) 여담이지만,  이대 창업보육센터팀에서는 크몽팀을 알고 있었더라구요. 크몽이 하는 일과 크몽의 포스터를 보시더니 응원을 잔뜩 해주셨습니다!!!! ▒▒▒▒▒▒▒▒▒▒▒▒▒▒▒▒▒▒▒▒▒▒▒▒▒▒▒▒▒▒▒▒▒▒★연세대학교로 출발~★연세대학교의 산학협력단을 지나~내부 게시판에 붙이고자 허가를 받아낸 후연대 산학협력단에서는 '내부보다는 외부 게시판을 활용하는 편이 좋다' 라는 팁을 얻어냈습니다!좋아! 내부 모두 붙이고 외부로 가자! 외부는 공사중이었지만 공사가림막 전체를 게시판으로 사용하고 있었어요. 꽤 오랫동안 세워놓을 예정이라 학교측에서 마련한 장소같아보였네요. 이미 크몽팀이 아니더라도 많은 동아리와 협회에서 이 곳을 게시판으로 사용하고 있었어요.  장소도 넓고 제한도 없겠다! 크몽팀은 열심히 연달아 쿵쿵쿵쿵 붙입니다.  ▒▒▒▒▒▒▒▒▒▒▒▒▒▒▒▒▒▒▒▒▒▒▒▒▒▒▒▒▒▒▒▒▒▒★라 스 트 홍익대학교로 출발~★   홍익대학교 :) 어쩐지 정이 많이 가는 대학교에용 오호호 홍익대학교도 여느 대학과 다름없이 게시판에 허가를 얻고 챡 붙여줍니다.  잘 보이죵? :)  ▒▒▒▒▒▒▒▒▒▒▒▒▒▒▒▒▒▒▒▒▒▒▒▒▒▒▒▒▒▒▒▒▒▒★대학탐방기 성공★크몽팀에서 내누어드린 1차 프로모션 자료인 포스터와 브로셔가 궁금하시다면아래에서 확인하세요. :)  크몽팀 브로셔 2015 #크몽 #재능마켓 #서비스소개 #대학활동 #인사이트 #경험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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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착각

긴 어리석음거창한 빅 픽쳐는 수려한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행동과 실천이 쌓였을 때 비로소 느껴지는 것이다. 그것을 머리로만 말하고, 마음으로는 깨닫지 못했다.어설픔은 유창한 언변으로 가리려하고, 진정성은 작은 제스쳐 하나에서도 방 안을 가득하게 한다는 것을 글로만 이해하고, 정작 몸짓에는 변화가 없었다.대단한 것을 정해놓고 그것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마주하는 모든 것을 진심으로 대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어제 긴 토론이 끝난 한참 후에야 문득 깨닫게 되었다.그동안 거성 뒤에 숨어 편히 화살을 피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벽돌 한장 한장을 몸소 쌓아야 작은 그림자라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환상 탈피, 현실 직시길었던 착각을 빨리 몸으로 떨쳐야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사랑받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이유가 있다. 조금씩 실천하고, 묵묵히 진심으로 대한 결과다.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고, 그 과정은 아름답기만 할 리 없다.묵은 정신과 허세는 내려놓고, 허리 굽혀 벽돌 한장씩 옮겨 쌓아야 할 시기다. 거창한 전략이 아니라 진심 담긴 행동이 상황을 바꿀 수 있다.내가 말하면 누군가 움직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고 내가 움직여야 한다. 생각을 깔끔하게 정리하는게 우선이 아니라, 실행을 통해 생각을 증명해야 한다.숨막히는 무더위가 지나갔다. 이젠 아침 저녁으로 제법 시원한 바람이 냉기를 조금씩 키워가는 느낌이다. 곧 살벌한 추위가 다가올테고, 시린 손으로 벽돌을 한장씩 옮기며 뜨겁던 열기를 그리워할 시절도 올 것이다.그 과정을 거쳐야 힘겹게 쌓은 담벼락 위에 그림이라도 한장 걸 수 있을 것 같다.그것이 빅 픽쳐든, 찌라시 광고든....벽돌 구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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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회사에 가기 싫은가

 어느 날, 저의 친구가 그러더군요.회사는 나의 노동력(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곳이다 언뜻 듣기에는 맞는 말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고개를 끄덕였지요. 저는 사회적, 논리적으로는 친구의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저는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더 편하게 즐겁게 회사를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회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짧은 글로나마 두리뭉실하게 끄적여볼까 합니다. 저에게 회사란 "가정과 다른 의미에서 나의 또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곳"입니다. 저에게 있어 회사란 "나의 고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곳"입니다. 저는 회사에서 주는 월급을 사용하여 생계를 꾸려나갑니다. 그 말이 그 말 같고 그 친구 말이나 제말이나 비슷하지 않나요? 네, 맞습니다. 그러나 저와 그 친구는 생각하는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회사에 들어간 반면에 그 친구는 돈을 벌기 위해서 회사에 들어갔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냥 돈을 벌러 가니까 월요일 회사 갈 생각에 이불속에서 나오기 싫어지죠.(물론 이렇게 추운 날에는 그냥 가기 싫을 때도 있지만요) 그렇다면 만약 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회사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요? 답은 단순합니다.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되죠.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면요. 하지만 저의 입장에서는 회사를 다니는 편이 좋은 게, 돈도 주고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재밌어서 회사를 다니는 편이 이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제가 한 말을 다르게 이야기하면 나는 왜 회사에 가고 싶은가? 나는 과연 회사를 이용하여 무엇을 달성하고 싶은가?로 치환이 가능하지요.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회사에 다니지 않더라도, 우주 한복판에 떨궈놓더라도, 하루하루 자신의 목표를 이루며 즐겁게 살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웹서핑을 하다가 찾은 좋은 글귀가 있어 공유합니다. 저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아래의 글귀를 읽고 고귀한 목표를 달성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온한 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인간은 결국 자신이 목표로 한 것만을 달성한다. 그러니 비록 당장은 실패하더라도 더 고귀한 목표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Walden) 중에서...더 생각해볼 문제-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온 이유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야-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또는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을 아직 찾지 못했어- 학자금 대출을 갚으려면, 나의 생활을 유지하려면 이 직장에서 주는 수준의 월급이 필요해#비주얼캠프 #인사이트 #경험공유 #조언

기업문화 엿볼 때, 더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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